“우리나라 상징하는 황토색 내는 것으로 작품 끝 맺고 싶었죠”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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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 경성대 명예교수

이기주 명예교수는 부산 기장군 일광면에 위치한 이기주미술관에서 지난 15년간 제작한 테라코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오금아 기자 이기주 명예교수는 부산 기장군 일광면에 위치한 이기주미술관에서 지난 15년간 제작한 테라코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오금아 기자

“황토는 우리나라 지질의 상징적 흙입니다. 황토색을 내는 것으로 내 작품의 끝을 맺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청사 이기주의 개인전 ‘이기주 테라코타전’이 부산 기장과 해운대에서 열리고 있다. 기장군 일광면 이기주미술관과 해운대구 좌동 산목미술관 두 곳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10월 3일까지 이어진다. 이기주 경성대 명예교수가 2005년 정년퇴임 이후 15년간 제작한 100여 점의 신작 테라코타와 회화를 만날 수 있다.



내달 3일까지 ‘이기주 테라코타전’

조각적 양식 도예작품으로 명성

15년간 제작 100여 점 신작 전시

절제된 포즈 ‘승무’ 시리즈 눈길



부산 1세대 현대도예가인 이 명예교수는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했다. 조소 전공자가 도예의 길을 걷게 된 사연을 들어보면 우연 같은 필연이다. “모윤숙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의 영향으로 학군단에 입단해 육군소위로 임관됐어요. 전역 후 몇 달을 쉬다가 막연히 취직하겠다는 생각에 모교를 찾았는데, 정문에서 조각가 김세중 선생을 마주친 겁니다.”

은사의 소개로 1966년 경남공고 요업 담당 미술교사 이기주가 됐다. “교과서로 도자기 공부를 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쳤죠. 나름 열심히 했더니 1년 후에 요업과 학과장을 시키더군요.” 학생들과 훈민정음을 백자에 새긴 작품을 선보여 주목을 받은 이 명예교수는 1973년 신설된 동아대 민속공예과 교수가 됐다. 이듬해 경성대 공예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이 명예교수는 조각적 양식의 도예작품을 선보이며 지역 공예 디자인계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다. 구상적으로 인체를 표현한 작품이나 해변의 바위 같은 비구상 시리즈, 도자기에 유약으로 그린 풍경화 등 다양한 작업을 보여줬다. “마음이 가는 대로 작업을 해왔어요. 나이가 드니 도예가 이기주는 무엇을 만든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이 명예교수는 대학생 시절 자신을 떠올렸다고 했다.

“4학년 봄 조선일보 현대작가 초대공모전 당시 권진규 선생의 말머리 형상 테라코타 작품을 봤어요. 신라시대 토기 같은 느낌을 접하고 나중에 나도 저런 것을 해야겠다 생각했죠.” 거짓말 같이 잊고 있었던 ‘한국적 테라코타 만들기’. 황토 언덕에서 놀던 유년 시절의 기억까지 이 명예교수는 본질적으로 황토를 좋아했다.

이기주 '승무-봄'. 이기주미술관 제공 이기주 '승무-봄'. 이기주미술관 제공
이기주 '승무-여름'. 이기주미술관 제공 이기주 '승무-여름'. 이기주미술관 제공
이기주 '승무-가을'. 이기주미술관 제공 이기주 '승무-가을'. 이기주미술관 제공
이기주 '승무-겨울'. 이기주미술관 제공 이기주 '승무-겨울'. 이기주미술관 제공

산목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여인’은 자신의 대학생 시절 작품을 다시 만든 것이다. “칭찬을 많이 들었던 작품인데 내가 가지고 있지 않아서 섭섭한 마음이 들어 대학 때 느낌 그대로 되살려냈어요.” 이 명예교수 작품은 곳곳에서 사람이 묻어난다. “대학 4년간 사람만 만들어서 인이 박여 있어요. 그래서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많아요.”

구상, 반추상, 추상을 넘나들며 사람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들 중 최근작 ‘승무’ 시리즈가 눈길을 끈다. 이 명예교수는 “조지훈의 시처럼 한국이 아니면 안되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흙이 안 말라야 작업하기 좋은데, 지난해 여름 비가 많이 왔잖아요. 작품에 집중하라는 자연의 뜻으로 생각했어요.” 그 결과 추상적 조형미가 두드러진 작품이 나왔다. 도자기를 굽던 실력으로 기존 테라코타보다 고온으로 작업해서 자연 속 황토의 붉은 색상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조형예술학 박사인 정혜주 경성대 겸임교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부제가 달린 승무 시리즈에 대해 “군더더기 없이 절제되어 간명하지만 함축된 승무의 간결한 포즈에 묻어나는 ‘오동잎 잎새마다 지는 달’의 문학적 추상개념을 형상의 시로 응축시킨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기주 테라코타전’=10월 3일까지 이기주미술관(휴관 월, 화)·산목미술관(휴관 일, 월). 051-747-0970.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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