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커피도시다] 가비방·마리포사… 국내 첫 커피 전문 체인점 시대 열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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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커피도시다] ③ 대학가‧서면 시대

부산 하단 동아대 앞에 문을 연 가비방 2호점에서 정동웅 씨가 일하고 있는 모습. 정동웅 씨 제공 부산 하단 동아대 앞에 문을 연 가비방 2호점에서 정동웅 씨가 일하고 있는 모습. 정동웅 씨 제공

정동웅 씨가 1982년 부산 중앙동에 처음 만든 일본 커피 UCC 전문점. 정동웅 씨 제공 정동웅 씨가 1982년 부산 중앙동에 처음 만든 일본 커피 UCC 전문점. 정동웅 씨 제공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전까지, 확실히 부산은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서울보다 ‘앞서가는’ 도시였다. 항구를 끼고 있고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웠던 영향으로, 새로운 문화를 빨리 흡수했고 도시 크기는 그런 문화가 널리 퍼지기에 적합했다. 커피도 그랬다. 다방과는 차원이 달랐던 새로운 개념의 커피 전문점, 가비방이 1980~1990년대 부산에서만 47호점까지 생겨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1984년 생긴 마리포사는 그 시절 고급 커피숍의 표본이 됐고, 전국 최초의 커피 학원도 부산에서 문을 열었다.


서면 마리포사, 고급 커피숍 표본

서울 이대 앞에 2호점 내기도

부산 대학가 47호점까지 낸 가비방

커피 관련 강의·세미나 개최

YWCA ‘신부 수업’ 내용 포함

로스팅 달리 한 블렌딩 원조


1983년 YWCA 규수학당에서 커피 강의를 하던 정동웅 씨. 정동웅 씨 제공 1983년 YWCA 규수학당에서 커피 강의를 하던 정동웅 씨. 정동웅 씨 제공
1980년대 커피 공부와 메뉴 개발에 몰두하던 정동웅 씨. 정동웅 씨 제공 1980년대 커피 공부와 메뉴 개발에 몰두하던 정동웅 씨. 정동웅 씨 제공

■부산 최고 핫플 ‘마리포사’

20년간 부산 서구 서대신동에서 ‘휴고(HUGO) 커피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김호영 대표는 “1980년대에는 패션이든 뭐든 부산이 가장 앞서갔고 커피도 마찬가지였다”면서 “당시 부산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마리포사가 유행을 이끌었는데 약속을 하면 다 마리포사에서 한다고 할 정도였다. 요즘 말로 핫플이었다”고 회고했다. 1980년대 부산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서울 이대 앞에 2호점을 내기도 했던 마리포사는 부산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만 100명이 넘을 정도로 잘됐다. 당시 손님이 화장실을 쓰고 나면 곧바로 들어가 청소하는 화장실 담당자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이호상 커피디스커버리 대표는 “마리포사가 서면 1번가에 생기면서 서면 상권의 중심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고, 마리포사 이후로는 마리포사 류의 카페들이 많이 생겨나 당시 카페 문화를 선도했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83년 YWCA ‘규수학당’에서는 커피 수업이 소위 ‘신부 수업’의 일환으로 구성되기도 했다. 당시 수업을 했던 정동웅 씨는 “당시 모카포트도 가져가 수업을 했던 기억이 난다”면서 “이 때 수업을 해보면서 강의에 자신감을 얻게 돼 한국 최초로 부산에 커피 학원을 만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1991년 부산대 앞에 한국커피조리학원이 전국 최초로 문을 열었다.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마리포사 메뉴판. 정동웅 씨 제공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마리포사 메뉴판. 정동웅 씨 제공


■새로운 커피숍 문화 만든 ‘가비방’

1982년 시작된 가비방은 1990년대까지 부산에서만 47호점을 냈지만 그 영향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기존 다방에서 한층 업그레이드 된, 커피숍이라는 개념을 탄생시킨 게 바로 가비방이었다.

부산대 앞 가비방 1호점을 기억하는 박찬수(58) 씨는 “당시 부산대 앞에 있던 다방이 없어지고 가비방이 들어섰는데, 거기 가면 못 보던 커피 기구들이 놓여있었고 커피 관련 강의도 들을 수 있어 아주 신선했다”고 되새겼다. 당시 가비방에서는 커피 관련 세미나가 자주 열렸다. 후배와 함께 가비방을 만들었던 정동웅 씨는 “알아야 즐길 수 있지 않느냐. 사람들에게 커피의 진수를 알게 해주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오늘날 부산의 커피 저변 확대에 정 씨의 이 같은 노력이 밀알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비방은 부산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정 씨는 “가비방이 확장되던 시기, 전문대 이상 졸업자 채용을 위해 부산일보에 가비방 공채 1기 광고를 냈었는데 이력서만 150장이 들어왔었다”면서 “그 중 20명을 면접했고 몇 명을 뽑았지만 고학력자가 다방 주방장을 할 수 없다며 다 도망가고 박영승 현 부산과학기술대 바리스타과 교수만 남았다”고 회고했다.

가비방은 90년대에도 인기를 끌어 당시 일본 커피 프랜차이즈였던 도토루가 가비방 때문에 힘을 못 쓴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이호상 대표는 “커피점마다 장인정신 같은 게 있어 프랜차이즈가 잘 되지 않았는데, 당시 가비방이 널리 퍼질 수 있었던 데는 정동웅 대표의 철저한 ‘교육’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재인 블렌드의 출처가 가비방?

몇 년 전 문재인 대통령의 블렌드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문 대통령이 단골 커피숍이었던 서울 ‘클럽에스프레소’에 가면 매주 1~2회 콜롬비아:브라질:에티오피아:과테말라 원두를 4:3:2:1 비율로 블렌딩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클럽에스프레소 마은식 전 한국스페셜티커피협회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80~1990년대 부산대 앞 가비방이라는 커피숍이 국내 커피업계에서 매우 유명했는데, 문 대통령이 즐긴 블렌딩 비율이 유명 커피숍이나 내로라하는 전문가만 아는 비밀이었던 만큼 가비방, 마리포사 등을 통해 안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씨는 “당시 사람들이 블렌딩은 잘 모르고 나오는 원두 그대로 썼는데, 우리는 우리만의 맛을 팔아야 한다고 해서 블렌딩을 시작했다. 블렌딩은 원두 배합으로도 했지만 균형감을 위해 로스팅을 달리 하면서도 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도 당시 마리포사에 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지만 출처가 우리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삐삐 시절, 테이블마다 전화기가

90년대 중반 들면서 커피숍 문화가 또 한 번 바뀌기 시작했다. 삐삐가 젊은이들 문화를 강타하면서 공중전화마다 긴 줄이 늘어서 있기 일쑤였는데 커피숍들이 재빨리 ‘연락망’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면서다. 상당수 젊은이들이 공중전화에 줄을 서기보다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전화를 기다리는 쪽을 택했고, 커피숍 테이블마다에는 전화기가 놓이기 시작했다. 커피숍은 걸려오는 전화를 몇 번 테이블로 연결해주는 식이었다. 이 때 커피숍들에는 공간을 개별화하는 칸막이와 커튼이 유행이었다.

이 때 에스프레소도 한창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빨리 추출해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에서도 많이 팔았다. 이호상 대표는 “당시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면 요즘 같으면 아메리카노, 즉 에스프레소에 물을 탄 연한 커피가 나왔다. 당시 사람들은 그게 에스프레소인 줄 알았다”면서 “나중에 스타벅스가 들어와 진짜 에스프레소를 팔게 되면서, 초창기 스타벅스 매장에서는 진짜 에스프레소에 대해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스타벅스가 한국에 들어온 게 1999년, 커비빈이 한국에 진출한 게 2001년이었다. 그 뒤로는 ‘콩다방, 별다방’의 전성기로 접어들었다. 이 때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에서는 에스프레소 문화와 드립 문화가 공존했는데, 2007년 드라마 ‘커피프린스’의 인기에 힘입어 ‘카페 문화’가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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