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배니싱’ 데르쿠르 감독 “유연석 캐스팅 이유는 오로지 연기력”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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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올 로케, 20일 만에 촬영 완료”

8일 영화의전당 비프힐 2층 강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영화 '배니싱'의 감독 드니 데르쿠르가 발언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8일 영화의전당 비프힐 2층 강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영화 '배니싱'의 감독 드니 데르쿠르가 발언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할리우드 배우 올가 쿠릴렌코와 유연석이 호흡을 맞춰 화제를 모은 영화 '배니싱'의 드니 데르쿠르 감독이 8년 만에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다시 찾아 감격스럽다는 소감을 밝혔다.

데르쿠르 감독은 8일 오후 2시 30분 영화의전당 비프힐 2층 강의실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프랑스 사람으로서 BIFF 월드 프리미어 부문에 초청된 것은 정말 감동스럽고 영광"이라고 말했다.

2013년 영화 '약속'으로 BIFF를 찾았던 데르쿠르는 한국에서 올 로케이션한 로맨스 스릴러 '배니싱'으로 돌아왔다. '007 퀀텀 오브 솔러스' 등으로 유명한 올가 쿠릴렌코와 유연석이 각각 전직 외과의사와 형사 역으로 호흡을 맞췄고, 예지원이 통역사를 연기하며 뛰어난 프랑스어 실력을 선보였다.


"유연석 유명세 전혀 몰라…쿠릴렌코와 호흡 좋았다"

데르쿠르는 유연석을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첫 번째 이유는 훌륭한 배우라서"라며 "작업을 위해 많은 배우를 만나봤는데, 정말 연기를 잘했다. 잘생긴 것도 있었지만 그건 주요한 이유는 아니었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사실 처음에는 유연석이 그렇게 유명한 배우인지 전혀 몰랐다"며 "그 작업을 유연석과 한다고 할 때마다 주변에서 놀라는 것을 보고 뒤늦게 알게 됐다. 유연석은 수줍음이 많아 스스로 유명세를 말한 적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섭외 배경에 대해선 "유연석이 뮤지컬 공연에 올가와 저를 초대한 적이 있다. 노래 실력이 정말 좋았다"며 "유연석도 유럽에서 영화 작업을 하는 방식에 대해 흥미가 있었고, 저도 한국에서 어떻게 영화를 촬영하는지 관심이 있었다"고 부연했다.

올가 쿠릴렌코와 유연석의 호흡에 대한 질문에는 "케미스트리가 아주 좋았다. 올가는 여러 나라에서 작업을 한 경험이 있어서 적응을 쉽게 했고, 한국에 들어온 뒤 2주간 자가격리를 하면서 연기 준비를 많이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유연석이 올가를 멋지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또 "올가는 유연석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를 보자마자 '아주 좋은 배우'라고 말했다. 하지만 올가도 유연석이 한국에서 그렇게 유명한지는 몰랐다"며 "감독으로서는 영화에서 배우들이 지나치게 잘생기거나 예쁘게 나오지 않길 바랐고, 배우들도 그걸 이해했다"고 덧붙였다.


영화 '배니싱' 스틸컷 영화 '배니싱' 스틸컷

음대교수 출신 감독…"스릴러 각본도 작곡처럼"

음악을 전공해 오케스트라 수석 비올리스트·음대 교수 등으로 일했던 그는 영화도 음악처럼 만든다고 한다. 데르쿠르는 "스릴러 영화 각본 작업은 음악적이라 생각한다. 긴장이 고조되고 해소되는 부분, 긴장이 어느정도 해소될 때 새로운 긴장이 시작되는 것 등이 작곡을 할 때도 쓰인다"고 설명했다.

또 "저는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심리 상태까지 디렉팅하지는 않고,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 신경 쓴다. 이를 테면 연기의 속도나 목소리 톤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며 "하지만 배우들 입장에선 그런 디렉팅이 결국 심리적인 부분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한국어를 모르는 상황에서도 디렉팅을 할 수 있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제가 모르는 언어로 연기를 하는 것을 봐도 상황이 잘 흘러가는지 여부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며 "스릴러 영화에선 리듬이 상당히 중요한데, 음악가로서 리듬에도 중점을 많이 뒀다"고 밝혔다.

배니싱은 중국을 배경으로 설정한 피터 메이의 베스트셀러 '더 킬링'을 모티브로 했지만, 실제 촬영은 한국에서 진행됐다. 이에 대해 데르쿠르는 "프로젝트를 제안받았을 때 제작자가 이미 장소를 한국으로 정한 상태였다"며 "원작은 미국 여성과 중국 남성 경찰관의 러브 스토리인데, 중국에서 검열 때문에 찰영을 거절했다"고 전했다.

이후 제작자는 배경을 한국으로 바꾼 뒤 유명한 국내 감독을 물색했지만, 선뜻 응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이에 제작자는 함께 작업했던 지인 데르쿠르에게 "왜 한국 감독들이 작업을 하지 않으려 하는지 알려달라"고 했고, 데르쿠르는 "각본이 너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처음 각본은 너무 남성 중심적이었다. 원작에선 여성 캐릭터의 내적 갈등이 중요한데, 그런 부분이 결여돼 있어 감독들이 매력을 못 느꼈을 것"이라며 "부탁을 받고 각본 작업을 다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프랑스 자금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어보다 프랑스어가 많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며 "그래서 예지원 씨가 맡은 통역사 역할을 추가했다"고 밝혔다.


8일 오후 영화의전당 비프힐 2층 강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영화 '배니싱'의 감독 드니 데르쿠르가 활짝 웃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8일 오후 영화의전당 비프힐 2층 강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영화 '배니싱'의 감독 드니 데르쿠르가 활짝 웃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한류 열풍, 재능과 성실의 합작품"

한국에서 작업을 진행한 소감에 대해 데르쿠르는 "좋은 면만 있었다. 한국엔 오래된 영화 산업과 문화가 있다"며 "특히 처음 BIFF에 왔을 때 놀랐던 것이 관객들의 높은 수준이다. 특히 젊은 시네필들이 영화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있었다. 영화 때문에 많은 국가를 다녀봤지만 한국 같은 곳은 찾을 수 없었다"고 감탄했다.

또 "한국 사람들은 근면성실한데, 감독 입장에선 그런 사람과 함께 일하는게 큰 도움이 된다. 조연출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제발 잠 좀 자자', '지금 새벽이야' 같은 것이었다"면서 "덕분에 제가 지금까지 했던 영화 중 가장 철저히 준비할 수 있었다. 심지어 저는 준비를 잘했다고 느꼈는데, 한국 팀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면서 패닉에 빠지곤 했다"고 웃었다.

다만 "유일하게 어려웠던 점을 꼽자면 한국에서는 감독이 모든 걸 총괄해야 한다고 하던데, 사실 유럽에선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는다"며 "코로나로 격리된 기간에 충분히 소통하고 조율한 덕에 작업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 시작된 촬영은 20일 만에 끝났다. 데르쿠르는 "촬영기간은 20일이었다"며 "유연석이 장편 영화를 20일 만에 촬영한 적이 없다고 제게 말하더라. 그래서 제가 배우들에게 '서로를 믿어야 한다. 배우는 감독을, 감독은 배우를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데르쿠르는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의 열정이 한류 열풍의 원인이라고도 분석했다. 그는 "한국에 살고 있다면 잘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한류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나다. 그건 예술적 재능을 갖춘 데 더해서 정말 열심히 작업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전날 관객과의 만남(GV)을 했는데, 이 영화가 프랑스 영화가 아니라 한국 영화라고 생각하는 관객이 더 많았다. 제게 그건 큰 칭찬이었다"며 "제 영화로 그 한류라는 마법 같은 일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영광"이라고 했다.

한국 영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드러냈다. 데르쿠르는 "저는 한류가 세계로 퍼지기 이전에 음대 교수로 일하면서 한국 유학생들을 통해 한국을 알고 있었다"며 "그렇게 알게 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는 음악가로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감독으로서도 제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임 감독을 개막식에서 실제로 볼 수 있어서 기뻤다"고 말했다.

또한 "배니싱 각본 작업을 할 때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보고 경찰서 모습 등에 참고를 많이 했다. '추격자'도 도움이 됐다"며 "영화 준비 단계에선 스태프들에게 제가 팬이기도 한 이창동 감독의 '버닝'을 보여주고 분위기를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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