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균의 세상 터치] 해양에 대한 인식 부족과 홀대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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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됐다는 뜻으로, 세상이 몰라볼 만큼 크게 변했다는 걸 비유한다. ‘수적성해(水滴成海)’는 물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는 의미다. ‘바다 해(海)’ 자가 들어간 말을 꺼낸 이유는 한국경제의 급성장 과정을 대변할 수 있는 두 성어를 앞세워 해양의 역할과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는 국토를 폐허로 만든 한국전쟁 직후 국제사회 원조를 받는 세계 최빈국이었다. 올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는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했다. 한국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1조 5868억 달러로,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도약했다. 수출 세계 6위, 수입 9위의 무역강국이기도 하다. 지난해까지 4년째 국민소득 3만 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 모두는 세계가 한국을 부유한 선진국으로 정의하는 지표다. 상전벽해란 표현에 딱 들어맞는 비약적인 발전상이다.


해양수산 종사자 경제 성장에 기여

국가 발전 헌신한 노력 평가 못 받아

정부·국민 해양 중요성 잘 모르는 탓


진취적 도전적 해양 의식 고취 필요

대선 후보 해양산업 육성 공약 절실

바다에서 성장 동력·먹거리 찾아야


이 같은 번영은 온 국민이 잘살아 보려는 일념으로 인고의 세월을 근면성실하게 달려온 결과다. 개개인의 노력이 뭉쳐져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단기간에 고도의 산업화를 이뤘다.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문, 수적성해의 대표적인 사례일 테다. 여기에 독일로 파견돼 힘든 노동을 하면서 고국 발전에 필요한 종잣돈을 마련하느라 청춘을 바친 광부와 간호사들이 큰 힘이 됐다. 베트남전쟁 참전 용사들의 희생 역시 경제 성장의 기틀을 다지는 데 한몫했다.

익히 알려진 이들의 기여도와 달리, 원양어선과 외항선 선원들이 막대한 외화 획득을 통해 경제 발전을 견인한 노고를 잘 알고 있는 국민은 많지 않아 안타깝다. 선원들은 몹시 가난했던 1950년대 후반부터 가족과 떨어져 먼바다에서 거친 파도와 싸우고 목숨을 잃어 가며 외화를 벌어들였다. 우리가 선원들의 헌신에 대해 고마움을 모른 채 살아가는 건 해양에 대한 무관심이나 이해 부족 때문이다.

해양수산업은 무역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을 먹여 살린 기간산업이다. 특히 해운·항만업은 북한과 대치한 북쪽을 제외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다. 해상 운송이 수출입 물동량의 99%를 책임지며 국가 경제와 산업 전반을 떠받치고 있어서다. 해운업이 아니었다면, 지금 누리는 풍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수산업의 경우 각종 해산물 생산으로 식량자원의 한 축을 이룬다. 국내 식량자급률과 곡물자급률이 각각 48.9%, 23.4%에 불과한 상황에서 해운·수산업이 원활하지 않으면 국가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국민들이 해양의 가치와 소중함을 간과하고 홀대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2017년 세계 7위 선사 한진해운의 파산을 방치한 건 단적인 예다. 이 회사가 수십 년간 공들여 구축한 바닷길을 우리 스스로 헌신짝처럼 내버려 외국 선사들만 좋아졌다. 국적 선사가 보유한 국제 항로는 해양영토라는 인식이 결여된 탓이다. 국내 기업들은 외국 선사의 갑질 횡포와 운임 인상에 시달리며 물류비 부담이 가중되는 등 엄청난 후폭풍을 겪고 있다.

선진국일수록 바다를 가까이하며 잘 활용한다. 국민에게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해양 의식을 고취하고, 해양 경쟁력 제고에 힘써 세계 영향력과 지배력을 키웠다. 반면 우린 전통적으로 “물을 조심하라”, “물가에 가지 말라”는 둥 겁을 줘 바다를 기피하게 만드는 풍조가 있다. 해양수산 종사자들을 ‘갯가 사람’으로 얕잡아 보는 분위기마저 존재한다. 바다와 쉽게 친숙하기 어려운 사회 구조다. 수산·광물 자원이 풍부하고 가능성이 무한한 해양에서 신성장 동력과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기 위해 지양해야 할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 대선 주자들 사이에서도 해양 이슈는 안 보인다. 여야 예비후보들이 다양한 공약을 내놓았지만, 구체적인 해양수산 육성 방안과 해양 비전을 찾을 수 없어 아쉬운 심정이다. 지난 18일 국민의힘 경선 부산·울산·경남 TV토론회에서 부산을 해양특별시로 키우겠다고 밝힌 윤석열 후보의 발언이 고작이다.

지난해 7월 해양수산 업계 주요 인사들이 발족한 신해양강국국민운동본부는 며칠 전 차기 정부에 바라는 100대 해양정책 과제를 제시했다. 동·남·서해에 총선 지역구를 둬서 3명의 국회의원을 뽑고, 해운·조선 등 해양 주요 분야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제안 등이 담겼다. 정부 각 부처에 분산된 해양 관련 정책을 통합적으로 조율해 추진하며 시너지를 높일 국가해양위원회 같은 힘 있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한다. 해양수산인들의 울분 표출이자 자각인 셈이다. 국가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해양강국을 희망하는 해양수산계의 요구를 명심할 일이다. 국가 운명이 걸린 해양에서 상전벽해와 수적성해의 성과를 거두길 고대한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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