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어떻게 만든 공수처인데…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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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사주’ 의혹 등 부실한 수사 결과로 비판 초래
부정부패 감시와 권력기관 견제의 상징임은 분명
제 위상 찾기 위해선 자구 노력에 제도 개선 따라야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검사가 지난 2일 오후 구속영장이 기각돼 서울구치소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검사가 지난 2일 오후 구속영장이 기각돼 서울구치소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 11개월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을 수사하면서 실력 부족으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야권의 정치적 공세가 거세지는 양상이다. 출범 당시의 영광은 사라지고 쉽게 낫지 않을 상처만 남았는데, 심지어는 ‘빈손(空手)의 공수처’라는 비아냥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위기에 빠진 공수처

공수처는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손준성 검사에 대해 지난 10월 체포영장 이후 1·2차 구속영장까지 모두 세 차례 영장을 청구했으나 매번 기각됐다. 구속 사유와 필요성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법원은 공수처가 내민 정황 증거만으로 손 검사를 구속하는 데는 무리가 있으며, 1차 구속영장에 이은 2차 구속영장 청구 때에도 수사 상황은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공수처가 손 검사의 범죄를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손 검사는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키워드가 되는 인물이다. 지난해 4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으로 있으면서 부하 검사 등을 시켜 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을 작성한 뒤 김웅 의원에게 전달해 고발을 사주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손 검사의 윗선으로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목되는 상황이라 수사 결과에 따라 미칠 파장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 이유로 공수처는 역량을 총동원하며 강한 수사 의지를 보였지만 영장만 세 번이나 기각당하는 참담한 결과를 안았다. 3개월간 수사에 핵심 피의자의 신병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공수처의 무능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고발 사주' 의혹 사건과 관련해 정치권 창구로 지목된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지난 3일 조사를 받기 위해 공수처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발 사주' 의혹 사건과 관련해 정치권 창구로 지목된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지난 3일 조사를 받기 위해 공수처로 들어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쓸모 없다 폐지하자?

올해 1월 21일 공식 출범한 공수처가 지금까지 수사에 착수한 사건은 모두 12개이나 구속이나 기소를 한 피의자는 한 명도 없다. 그나마 수사 결과를 낸 것은 ‘공수처 1호 사건’인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해직교사 부당 특채 의혹 1건뿐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공수처에 기소권이 없어 공수처가 검찰에 기소를 요구했지만 검찰은 여태껏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

나머지 11건은 ‘현재진행형’이다. 고발 사주 의혹은 손 검사를 불구속기소 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공산이 커졌고, ‘판사 사찰 문건’ 의혹을 비롯해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사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수사 방해 사건 등 남은 사건은 언제 처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는 결국 공수처의 수사력 부족 논란으로 이어졌고, 공수처 무용론과 함께 폐지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선대위는 공수처의 수사를 대선 개입 행위로 규정하면서 “존재 이유를 상실한 개혁 대상”이라고 비난했다. 법조계에서도 “잇따른 영장 기각은 최근 경찰이나 검찰에서도 볼 수 없는 것으로, 이런 공수처는 필요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고발 사주 수사로 공수처는 신뢰와 권위를 잃었다. 자칫 피의자들에게 면죄부를 줄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인 조성은 올마이티미디어 대표조차 “대충 무마할 바에야 수사 중단을 선언하거나 문을 닫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며 페이스북을 통해 공수처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공수처의 태생적 한계

여운국 공수처 차장은 손 검사의 구속영장 실질 심사 중 판사 앞에서 “우리는 수사 경력이 없는 아마추어인데 수사 전문가인 손 검사가 수사를 방해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 책임자로서 해선 안 될 말이지만 여하튼 공수처의 수사력 부족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다.

사실 공수처의 수사력에 대해서는 출범 전부터 우려가 제기됐다. 현행 공수처법은 소속 검사의 정원을 처장과 차장을 포함해 25명으로, 수사관 수는 최대 40명으로 제한했다. 공수처가 또 다른 거대 권력 기관이 되는 걸 방지하자는 취지에서 규모에 제한을 둔 것이다.

고위 공직자가 연루된 비리 사건은 고도의 수사 역량이 필요하다. 과거 대형 공직비리 사건을 전담하던 대검 중앙수사부에 오랜 경력의 검사들이 배치됐던 건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공수처는 검찰 견제가 주요 목적이다 보니 검찰 출신은 검사 정원의 절반을 넘지 못하게 했다. 실제 현 공수처의 인적 구성을 보면 김 처장과 여 차장은 판사 출신이고 공채로 뽑은 검사 21명 중 검찰 출신은 5명에 불과하다. 공수처의 수사 역량이나 실무 경험이 현저히 부족할 수밖에 없다. 지금 공수처의 위태로운 모습은 그런 태생적 한계에 따른 결과인 것이다.


김진욱 공수처 처장이 올해 10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첫 국정감사에서 선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진욱 공수처 처장이 올해 10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첫 국정감사에서 선서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떻게 만든 공수처인데…

그렇다고는 해도 어쨌든 공수처는 권력기관 부정부패 감시의 상징임은 분명하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은 3급 이상 고위 공직자와 그 가족으로,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해 국회의원,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 장성급 장교 등이다. 우리나라에서 힘을 가진 공직자 대부분을 포괄했다. 공수처는 그런 고위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엄정하게 수사하고 비대해진 검찰 권력을 효과적으로 견제해 줄 것이라는 국민적 기대 속에 출범했다. 특히 1948년 제정된 검찰청법이 검찰에게 독점적인 수사·기소권을 부여함으로써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하게 한 우리나라 형사사법 시스템을 깨트렸다는 점에서 공수처 출범은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출범을 위한 산고의 고통은 길었다. 2019년 12월 30일 어렵사리 공수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야권의 신중론에 막혀 무려 389일이 지나서야 공수처는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공수처장 임명을 두고도 여야 간에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

무능하다고 해서 공수처의 존재 이유까지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공수처의 위상은 기본적으로 공수처 스스로 다져야 할 문제지만 그에 대한 국민적 기대까지 접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기존 사법체계에서 검사와 검사 출신 국회의원을 전격 소환하고 압수수색하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던 놀라운 일이다. 비록 아직 성과는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공수처의 가능성은 엿볼 수 있었다고 할 것이다.

일각에서 공수처가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도록 시간과 기회를 더 줘야 한다는 지적과 함께 현행 공수처법에 허점이 많은 만큼 추가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어떻게 만든 공수처인데, 흠결이 있다고는 해도 고쳐 써야지 아예 없애자고 해서야 되겠냐는 것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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