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조금 불편해도, 대화할 수 있는 세상으로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주영은 청년 인터넷 언론 ‘고함20’ 기자·공모 칼럼니스트

할아버지도 최근에는 휴대폰으로 뉴스를 본다고 했다. 돋보기를 쓰고 1면부터 지면을 읽어 내리던 모습도 이제는 옛날 일이다. 소비자가 능동적으로 기사를 찾고, 공유하고, 댓글을 달면서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다. 기사 링크를 꾹 누르기만 하면 복사할 수 있고 다른 톡방으로 전달할 수도 있다. 이런 변화를 이끈 건 다름 아닌 포털 사이트이다. 포털은 뉴스를 단순 제공할 뿐 아니라 ‘독자 맞춤형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포털은 자체 알고리즘으로 독자의 취향에 맞는 뉴스를 추천해 준다. 카카오는 ‘루빅스(RUBICS)’를 도입했고, 네이버도 인공지능(AI)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 ‘에어스(AiRS)’를 적용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0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7명 이상이 '다음과 네이버 등의 포털에서 뉴스를 본다'(75.8%)고 답했다.


포털 사이트 AI 알고리즘으로 뉴스 추천

한쪽에 치우친 정보 편협한 사고 부추겨

다양성 사회 향한 시스템 다 함께 고민해야


AI가 제공하는 알고리즘은 인간의 주관이 개입된 기사 편집보다 객관적일 것 같다는 환상이 있다. 그러나 최근 AI의 알고리즘이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도록 하는 ‘확증 편향’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AI의 알고리즘이 이용자의 정치적 성향이나 취향에만 맞추어 뉴스를 추천하도록 자동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별된 정보에만 둘러싸이는 현상을 ‘필터 버블’이라고 한다. 필터 버블은 여과 기능을 약화한다. 정보의 사실 여부를 가를 수 있는 힘이 약해지고 편협한 사고방식만 커진다.

필터 버블이 문제인 이유는 정상적인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한 토론과 합의가 사라지고 갈등과 분노만 남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생각 조종자들>의 저자 일라이 파리저는 필터 버블로 인해 “심각한 정치적 문제의 공공 토론이 점점 힘들어진다”고 염려했다. 편향된 정보가 강화된 영국에서 브렉시트가 일어났고 트럼프 정부 당시 미국 극우 세력이 의회를 점거했다. 한국도 다르다고 할 수 없다. 양극화를 해결하지 못한 채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가 위협당할 가능성이 높다. 대선을 앞둔 지금, 우리나라는 확증 편향을 해소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 앞에 서 있다.

필터 버블을 터뜨릴 만한 대책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포털 사이트의 결단이 필요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에 출연한 구글 디자인 팀장과 핀터레스트 전 CEO는 그들이 만든 서비스들이 이용자들을 감시하고 그것을 데이터로 활용하고 있음에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표 포털인 네이버와 다음은 필터 버블의 위험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네이버와 다음은 뉴스 채널의 객관성을 확립하기 위해 ‘언론사 숨김’ 기능과 ‘언론사 선택’ 기능 등을 추가했지만, 이는 오히려 확증 편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할 뿐 독자가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듣고 사고할 수 있는 흐름을 방해한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포털이 최소한의 도덕적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려면 다양성을 확보한 새로운 추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미국 사회의 공론장에서는 알고리즘에 대한 불신이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9월 <월스트리트 저널>은 ‘페이스북의 알고리즘이 사람들의 분노를 부추기고 있다’고 보도했고, 켄 벅 하원 의원 등은 알고리즘에서 이용자의 개인 정보를 배제하는 내용의 ‘필터 버블 투명성 법안’을 발의했다. 이용자가 맞춤형 뉴스 화면을 선택하지 않으면 모두 같은 메인 화면을 볼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국내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비슷한 법안을 마련했지만 업계의 반대에 부딪혀 철회했다. 영향력에는 책임이라는 것이 따른다. 포털과 SNS의 영향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지금, 플랫폼 기업도 확증 편향 문제에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맞춤형 콘텐츠 서비스는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를 자극한다. 뉴스 소비자들 역시 현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성향을 거스르는 불편한 이야기라도 들어 보고 판단하는 과정을 감내해야 한다. 콘텐츠를 의심하고 점검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질 때, 스스로 확증 편향의 늪에서 벗어날 힘이 생길 것이다. 필터 버블을 터뜨리기 위해서는 포털과 개인의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개별 의사가 중요하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국민들이 더 이상 대화할 수 없게 된다면 무엇이 좋은 정책인지, 어떤 대통령이 필요한지에 대한 합의는 사라질 것이다. 가능한 많은 사람의 의사를 대변하고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공론장을 만들려면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 모두의 결단이 필요하다. 서로 대화할 수 있을 정도의 합의가 이뤄질 때 더 많은 민주주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