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방언사전 붐, 방언은 살아 있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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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언 가치 재조명, 방언사전 발간 활발
‘우리말의 원천적인 보고’ 인식 가질 필요
문화, 문학, 상업 등 다양한 활용 가치
‘지방의 자존심’, 지자체도 적극 관심 가져야

“이분 강기는 숭악하다(이번 감기는 흉악하다)”, “통시서 개 부르기보담 수엃다(변소에서 개 부르기보다 수월하다).” 경남의 창녕 지역을 중심으로 사용되는 방언, 즉 사투리다. 이런 말을 알아듣거나 구사할 수 있다면 아마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일 가능성이 높지 싶다. 젊은 층은 방언 특유의 단어나 억양에 생소할뿐더러 방언 사용 자체를 기피한다. 표준어에 우월적인 지위를 부여해 온 우리나라의 오랜 표준어 강조 정책이 낳은 결과다.

그런데 최근 곳곳에서 이러한 방언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방언사전 붐이 일고 있다. 방언의 가치를 재인식하면서 더 늦기 전에 지역 방언을 사전 형태로 만들고 보존하려는 것이다.


공적 영역에 가려져 있던 지방 언어인 방언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방언은 우리말의 다양한 보고인 만큼 적극적이 육성책이 필요하다. 2019년 본보가 진행했던 부울경 사투리 인터랙티브 콘텐츠 ‘사투리의 뿌리를 찾아서’ 장면. 부산일보DB 공적 영역에 가려져 있던 지방 언어인 방언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방언은 우리말의 다양한 보고인 만큼 적극적이 육성책이 필요하다. 2019년 본보가 진행했던 부울경 사투리 인터랙티브 콘텐츠 ‘사투리의 뿌리를 찾아서’ 장면. 부산일보DB

■방언이 있어야 표준어도 있다

지난 20세기 한국의 방언은 핍박의 역사다. 지금은 거의 모든 공적 영역에서 추방됐다. 일제 강점기 때 마련된 표준어 규정이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지면서 국가에 의해 오랫동안 강조된 탓이다. 언어의 통일성에만 초점을 맞춘 표준어 정책은 국민의 결집과 사회 발전에 일정 부분 기여한 점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한 국가 안에서 사용하는 말에 따라 차별과 배제, 무시와 혐오 등에 기반을 둔 것으로 다원화 시대인 21세기와는 맞지 않는다.

게다가 표준어 개념의 모호성은 역으로 방언의 중요성을 더 잘 보여 준다. 표준어 개념은 1988년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바뀌었다. ‘교양’이나 ‘현대’와 같은 수식어가 붙으면서 규정성이 약화했고, 또 현대의 서울말은 그 자체가 많은 지방 언어, 즉 방언의 구성물이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지방의 수많은 사람이 서울에 터전을 잡으면서 인구 비중 면에서 서울 토박이를 압도했다. 서울 토박이들의 말도 정밀하게 따져 보면 표준 국어에서 벗어난 게 적지 않다는 사실을 볼 때 표준어 개념 자체는 정말 모호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표준어 대상이 되는 서울말 속에 지방 방언을 제외할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


방언의 위상은 앞으로 지방자치제의 발전과 함께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남도와 (사)경남방언연구보존회가 2017년 발간한 경남 방언 2만여 개를 수록한 사전. 부산일보DB 방언의 위상은 앞으로 지방자치제의 발전과 함께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남도와 (사)경남방언연구보존회가 2017년 발간한 경남 방언 2만여 개를 수록한 사전. 부산일보DB

■방언의 가치, 방언사전으로 보존해야

방언의 가치에 대해서는 이미 학문적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됐다. 그동안 대중의 방언 인식이 표준어 강조 정책에 의해 가려져 뒤따르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공적 영역에선 여전히 표준어 기세가 강력하지만, 사적 영역에서는 굳이 방언 사용을 배척할 필요성이 점차 줄고 있는 모습이다. 일부이기는 해도 표준어가 아닌 지방 방언을 사용하는 매스컴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방언의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방언사전 출간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1월 말에는 경남 진주시가 진주사람들 특유의 억양을 한데 모은 <진주사투리 사전>을 출간해 관심을 모았다. 1000년 이상 사용된 지역의 토박이말 1만 개를 수록했다. 진주방언은 경상도 방언 중에서도 독특한 어휘와 성조를 지녀 오래전부터 보존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았다.

경남 전체를 다룬 <경남방언사전>은 2017년에 이미 나왔는데, 2년 뒤에는 중부 경남의 창녕군 14개 읍면의 토박이말 1만 3000여 개를 담은 <창녕방언사전>이 출간돼 주목을 받았다. 광역인 도 단위에서 하위 지자체인 군 지역으로까지 방언사전 출간이 세분되는 양상이다.

이달 초에는 원로 국어학자가 자신의 고향인 강원도 강릉의 방언을 집대성한 <강릉방언 자료 사전>을 내놓아 화제가 됐다. 3400쪽에 표제어만 2만 개를 수록한 대형 사전이다. 또 2020년 3월에는 충남 예산 지역의 새로 발굴된 방언 4000여 개를 수록한 <충남도 예산말사전 제4권>도 나왔는데, 제1권부터 포함하면 총 1만 6000여 개의 토박이 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제주 방언이다. 제주 방언을 수록한 사전은 이미 몇 종류가 있지만, 광역지자체인 제주도 차원에서 <제주어대사전> 작업이 진행 중이다. 제주도는 2009년 발간된 <제주어사전>을 보완·수정해 관용어와 속담 등 어휘 4만 개 이상을 담은 대형 방언사전을 2024년 발간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두만강 지역의 방언사전도 이미 나왔는데, 2019년 11월 중국 지린성 두만강 북쪽 유역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이 사용하는 방언 3만 2000개를 풀이한 <두만강 유역의 조선어 방언사전>도 출간돼 학계 등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방언은 문화, 문학, 상업의 측면에서 더욱 다양한 활용이 기대된다. 기타와 우쿨렐레 등의 반주에 맞춰 제주 노래를 하는 제주 토박이 밴드 ‘뚜럼 브라더스’. 부산일보DB 방언은 문화, 문학, 상업의 측면에서 더욱 다양한 활용이 기대된다. 기타와 우쿨렐레 등의 반주에 맞춰 제주 노래를 하는 제주 토박이 밴드 ‘뚜럼 브라더스’. 부산일보DB

■방언은 지방의 자존심

방언의 위상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지방자치제가 지금보다 더 확실하게 뿌리 내리면 지역의 자존심과 정서를 담은 방언의 위상도 예전과는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적 영역에서는 표준어 강세가 불가피하더라도 사적 영역에서까지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방언 자체가 우리말을 다양화하는 보물 창고인 만큼 앞으로 보존·활용 대책도 적극 검토해 볼 시점이 됐다.

구체적으로 방언사전 출간은 좋은 방안이다. 제주도가 특별팀을 꾸려 28억 원의 예산을 투입한 <제주어사전>의 사례는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지자체의 방언 인식 전환이 중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독자적인 체계와 역사를 지니고 있고, 우리 정서까지 담은 방언은 우리말의 지평을 더욱 넓힐 수 있는 좋은 언어 자원이다. 앞으로 문화, 문학, 상업의 측면에서도 다양한 활용이 기대된다. 최근 일고 있는 방언사전 출간 붐이 이런 기류를 잘 보여 준다. 이제는 국가와 지자체가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해야 할 때다. 끝으로 경남 창녕 지방의 방언 속담 한마디 남겨 둔다. “질동무가 좋으마 먼질도 가죽다(길동무가 좋으면 먼길도 가깝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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