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탐정 코남] #19. 붕괴 위험? 부산의 산토리니 흰여울마을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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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모든 궁금증을 직접 확인하는 '맹탐정 코남'입니다. 황당하고 재미있는 '사건·사고·장소·사람'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한 발짝 물러서서 들여다보겠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여러 가지. 유튜브 구독자분들의 많은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사건개요>

부산의 대표적 관광지 중 하나인 영도 흰여울문화마을이 위험하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 길 위, 이국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영도 흰여울문화마을. 부산의 핫한 관광지 중 하나다. 부산시 ‘2020 부산 관광산업 동향 분석’에 따르면 재작년 상반기에만 관광객 27만 4964명이 흰여울문화마을을 방문했다. 하루에 관광객 1527명이 마을로 들이닥친다는 이야기. 부산의 산토리니라고 전국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이곳이 갈라지고 있다니? 맹탐정이 직접 균열의 현장을 확인해봤다.


<현장검증>

겉은 알록달록, 속은 얼룩덜룩

평일 오후 영도구 영선동 흰여울문화마을을 방문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해안 절벽 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작은 카페와 식당이 자리 잡았다. 굳이 루프탑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창문을 통해 영도 앞바다가 훤하게 보였다. 또 흰여울문화마을은 영화 '변호인' 등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세트장으로 활용된 곳은 관광객을 위한 포토존으로 꾸며져 있다.


사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곪아 있는 곳이다. 주말마다 찾아오는 관광객으로 원주민은 몸살을 앓고 있다. 인근 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해버렸다. 낡은 대문, 옥상에 널린 빨랫감, 손때 묻은 생활용품은 관광객의 촬영 소품이 된다. 그들의 삶은 구경거리로 전락했다.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던 골목길은 관광객을 위한 산책길로 바뀌었다. 구석구석 외부인이 버리고 간 일회용 커피잔은 삶의 터전을 쓰레기장으로 만들었다. 또 흰여울문화마을은 영리를 목적으로 들어온 외부인이 불법과 탈법을 펼치는 투기장이 되기도 했다. 부산 경찰에 따르면 2020년 무허가, 미신고 영업장 10곳이 적발되기도 했다. 대부분 카페와 음식점이다. 부동산업체에 따르면 상가가 인접한 피란민의 '하꼬방'이 3.3㎡당 2000만 원에 육박한다. 한때 '문화'마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많은 예술인의 작업장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카페 거리'에 밀려 이제는 문화 마을이라는 정체성마저 잃었다.


영도 흰여울문화마을이 무너진다.

정확히 말하면 이미 무너진 적이 있다. 2018년 6월 기록적인 폭우로 인근 옹벽이 무너져 내렸다. 이 과정에서 도로가 유실돼 정상화에만 수개월이 걸렸다. 도로가 침하한 곳은 2송도삼거리에서 75광장까지 1.7㎞ 구간. 영도 흰여울문화마을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지나다니는 바로 그 길이다. 흰여울문화마을의 '카페 거리' 지반도 불안해 보였다. 골목길 중간중간 바닥에 금이 나 있었다. 한두 군데가 아니라 길이 굽어지거나, 경사가 있는 곳은 어김없이 갈라져 있다. 어떤 곳은 땅이 움푹 패어있기도 했다. 마을 안내표지판이 붙어있는 벽은 세로로 길게 금이 가 있다


멀리서 보면 절경이지만…

절영산책로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오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경사면이 눈에 들어왔다. 경사도가 거의 60도 이상은 되어 보였다. 길이는 절영해안산책로를 따라 800m 정도. 일부 구간은 돌과 시멘트를 발라 토사 유실 방지 작업이 되어있다. 그러나 군데군데 시멘트 덩어리들이 부서지고, 갈라져 틈이 있거나 구멍이 나 있었다. 돌로 두드려 보니 텅텅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속이 비어 있다는 뜻이다. 그마저도 옹벽이 없는 곳이 많았다. 옹벽 아래 경사면 대부분은 흙바닥이었고, 정체 모를 풀들이 시멘트 땅을 뚫고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저 위에서 바위나 돌이 굴러 산책로로 떨어진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떨어지고 부서지고 갈라지고

마을 바닥이 갈라지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시멘트 옹벽의 균열이다. 마을을 떠받치는 옹벽마저도 부서지고 있었다. 경사면 중간에 세워진 옹벽 위를 직접 걸어봤다. 마을 바닥과 마찬가지로 곳곳에 금이 가 있었다. 갈라진 틈은 계속 벌어지고 있는 듯 보였다. 성인 남성의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틈이 벌어진 곳도 있었다. 가볍게 두드렸는데 시멘트 덩어리가 부서지면서 떨어져 나왔다.


경사지 아래 절영산책로 곳곳에도 붕괴 조짐으로 보이는 현상이 많이 관측됐다. 산책로 벽면은 영도다리, 태종대 등 영도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꾸며졌는데, 각양각색의 타일을 붙여 장식됐다. 그러나 이 타일마저도 군데군데 떨어지고 있었다. 들떠있는 부분을 손으로 살짝 건드리니 타일이 곧 떨어져 나왔다. 타일이 떨어지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듯싶었다. 그림 곳곳, 마치 이가 빠진 것처럼, 원래 색과 다른 색의 타일로 교체된 흔적이 자주 보였다.


산책로 벽면에는 붕괴 위험을 알리는 표지판도 곳곳에 붙어 있었다. 영도 주민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산책로 근처에서 한 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수년간 절영산책로에서 공공근로를 하는 최 모 씨는 "이곳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진작 알고 있다"며 "비가 많이 올 때, 돌이 굴러떨어지면 사람들이 크게 다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이어 "곧 구청에서 갈라진 곳이나 무너진 곳을 긴급 보수한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건결말>

하인리히 법칙을 기억하자.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경미한 사고와 징후들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법칙이다. 흰여울문화마을 영선동 4가 일원은 2020년 급경사지 붕괴위험 지역으로 선정, 일부 구간은 최하 등급인 E등급을 받았다. E등급으로 지정된 28곳 가운데, 7대 특·광역시에 붕괴지역이 위치한 것은 부산이 유일하다고 한다.


영도구청 관계자는 “급경사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상시적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며 "산책로 주변 낙석 위험이 있는 돌은 다 제거했고, 추가로 배수로 청소와 위험 수목도 신속하게 조치 중이다"고 말했다. 또 "벽에 금이 가거나 균열 부분은 올해 장마가 오기 전까지 보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 없도록, 인기 관광지보다 안전한 관광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때다.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 정수원 PD blueskyda2@busan.com , 정윤혁 PD jyh6873@busan.com ,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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