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의 요가로 세상 보기] 61. 사랑이 들어오는 눈을, 트라타카 정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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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정화법인 ‘트라타카(trataka)’는 어떤 물체를 응시한 후 시선을 고정한 채 눈을 깜빡거리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눈을 강화하고 깨끗이 해 준다. 시연 안순흥. 눈 정화법인 ‘트라타카(trataka)’는 어떤 물체를 응시한 후 시선을 고정한 채 눈을 깜빡거리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눈을 강화하고 깨끗이 해 준다. 시연 안순흥.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사랑은 눈으로 들어오네/ 우리가 늙어서 죽기 전에 알게 될 진실은 이것뿐/ 잔 들어 입에 가져가며/ 그대 바라보며 한숨짓노라.”

이 시는 20세기 영국 시의 거장 W.B 예이츠가 노래한 ‘음주가(Drinking Song)’이다.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아서라기보다 먼저 눈으로부터 사랑이 시작된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래서 사랑은 먼저 눈으로 본 후에 그다음 가슴이 뜨거워진다는 말이리라.

‘눈이 긴장하면 몸이 긴장하고 몸이 긴장하면 마음 또한 긴장한다’라는 말이 있다. 만약 몸 상태가 좋지 않고 마음이 긴장된 상태라면 제일 먼저 눈의 건강부터 신경 써야 한다. 눈 건강은 평정한 몸과 마음 안에서 나온다.

옛말에도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며 눈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우리가 외부로부터 얻는 정보의 약 80%는 거의 눈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눈은 시각 정보를 수집하여 뇌로 전달하는 기능을 가진 감각기관이다. 눈은 시각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전기·화학 정보로 변환하여 시신경이라는 통로를 통하여 뇌로 전달하는 기관을 말한다. 한의학에서는 눈은 간과 통하는 구멍이며 오장의 정기가 모이는 곳으로 인식한다. 오장의 정명(精明)이 모두 눈에 모이기 때문에 눈을 통해 사물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견해이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중국 양나라의 장승요가 금릉(남경)에 있는 안락사라는 사찰 담벼락에 네 마리의 용을 그렸는데 눈만 그리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만약 눈을 그리면 용은 날아가 버릴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사람들이 믿지 않자 그는 그중 두 마리의 용에 눈을 그린다. 그러자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가 쳐서 담장을 부수었고, 그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날아갔다. 그렇지만 눈을 그리지 않은 용은 여전히 벽에 있었다. 이것이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고사다.

이때부터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마무리하여 일을 완벽하게 완성할 때 쓰이는 말이 되었다. 그래서 ‘동양화를 그릴 때 가장 그리기 어려운 부분이 눈이다’라고 하는 모양이다. 이 말에 반대되는 의미로는 ‘다 된 밥에 재 뿌리기’라는 속담이 있다.

‘괄목상대(刮目相對)’란 말은 ‘눈을 비비고 상대방을 대한다’는 뜻으로 상대방의 학식이나 재주가 갑자기 몰라볼 정도로 나아졌음을 이르는 말이다. ‘일목요연(一目瞭然)’이란 말도 한 번 보고 대번에 알 수 있을 만큼 분명하고 뚜렷한 걸 말한다.

‘태풍의 눈’은 폭풍 전야의 고요라는 말이 있듯이 태풍이 접근하기 전에는 날씨가 맑고 조용하다.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한다’라는 말도 있다. 눈빛이 종이를 뚫는다는 뜻으로 이해력이 뛰어남을 이르는 말이다.

조연현(1920~1981)의 대표 수필 ‘눈의 사상’은 눈에 대해 잘 기술한 명문장이란 평을 받고 있다.

“눈은 무언의 언어이며, 그 무언의 언어가 항상 설명을 초월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언제나 가장 정확한 언어이기도 하다. 눈은 인간이 그 육체 속에 가지고 있는 유일한 영혼의 창문이다. 눈은 외부로부터 자기의 영혼을 넘어다보게 하는 유일한 창문인 동시에, 자기의 영혼이 모든 외부를 바라다 볼 수 있는 유일한 창문이기도 하다. (중략) 사람은 눈이 밝아야 한다. 광명 속에서도 암흑을 볼 줄 알아야 하고, 암흑 속에서도 광명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가까운 것과 한가지로 먼 곳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의 눈만큼 그 시력의 성질에 차이가 많은 것도 없다. 보지 못한 수천 년의 지난 역사를 투시하는 것도 사람의 눈이며, 매일 같이 만나는 사람의 마음속을 보지 못하는 것도 사람의 눈이다. 눈앞에 있는 이해관계밖에는 보지 못 하는가 하면, 천년 후의 인생을 볼 수 있는 것도 사람의 눈이다.”

전 세계적으로 분포된 신화·전설 중에는 눈에 관한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중국의 거인 반고는 죽은 후 왼쪽 눈은 태양이, 오른쪽 눈은 달이 되었다. 또한 북방의 장미산에 촉룡이라는 신이 있어서 눈은 얼굴의 정가운데에 세로로 붙어 있는데, 이 눈을 뜨면 밝아져서 낮, 감으면 밤이 된다.(산해경)

이집트 태양신 ‘라’의 오른쪽 눈은 낮이며, 왼쪽 눈은 밤이 된다.(아멘 라 찬가)

그 눈은 세트 신의 공격으로 중상을 입었는데, 토토 신이 뱉은 침에 의해서 얼마 후에 회복 되었다.(사자의 서)

바빌로니아의 천지 창조 이야기 ‘에뉴마 에리슈’에 의하면 여신 티아모토의 두 눈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의 원천이 되었다.

이집트 신화의 호루스는 모친 이시스의 목을 친 벌로서 세트의 손으로 두 눈이 도려내졌고, 세트는 이를 산에 묻어서 두 눈이 대지를 비추도록 하였는데 두 눈은 구근(球根)이 되어서 로터스(연꽃)가 되었다.

힌두교 시바신의 세 눈 중 미간 사이의 한 눈이 불에서는 백호로 변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눈이 두 개 있는 것은 보통 사람으로, 3개 있으면 초인이나 신을 나타내고 있다.

인도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뮤즈와 비교되는 매우 아름다운 미녀 티로타마를 바라보기 위해서 인드라 신에게 1000개의 눈이 생겼다는 설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100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소가 일순간의 수면으로 모든 눈을 감은 순간에 헤르메스에게 목을 잘린다.

‘왕새요집’에는 아미타불의 눈에서 밝힌 빛은 사방에 분지해서 시방(十方)을 비추고, 푸른빛에는 푸른 불이 흰빛에는 흰 불이 있어서 초인적인 힘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이같이 고대의 사람들은 눈에 대해서 무척 관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건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싶어하는 욕구는 더하면 더했지 변하지 않은 듯하다. 진부하지만 여전히 젊은이들 사이에 작업 멘트로 알려진 ‘그대 눈 속에 퐁당 빠지고 싶다’는 소리를 들으면 ‘훗’ 웃음이 나오겠지만 그래도 심쿵한 것은 변함없을 듯.

사람이나 동물의 감각기관인 눈은 신체의 구성요소 중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총기가 넘치는 자를 가리켜 ‘눈이 빼어나다’라고 하였고, 용모가 다소 미흡한 자를 가리켜 ‘시력이 약하다’라고 완곡하게 묘사하였다.

고대로부터 여성들이 눈썹과 속눈썹, 그리고 눈 주변을 짙게 화장하여 아름다움을 부각시켰던 것은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역시 성경에도 눈에 관한 구절이 많이 등장한다. 자기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형제의 작은 티를 보는 자를 꾸중하였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향해 ‘마음의 눈을 밝히라’고 권면하였다.

‘내 계명을 지키며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켜라’ ‘이스라엘을 자기의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를 그늘 아래에 감추라’ ‘내 눈과 약속하라 눈으로 범하는 죄, 곧 안목의 정욕에 빠지지 않기를 결심하라’ 등이다.

봄날에는 도다리가 제철이다. 특히 통영 등지에서는 봄날 ‘도다리 쑥국’이 명물이다. 헌데 도다리와 광어 구분이 쉽지 않다. 그러나 우측에 눈이 있으면 광어요, 좌측에 눈이 있으면 도다리라는 뜻으로 ‘우광좌도’란 말로 깔끔하게 정리된다.

헤겔 미학은 아름다운 예술의 철학을 의미한다. “눈 속에 영혼을 집중하니 오로지 눈을 통해서 볼 뿐만 아니라 눈 속에서 보이기도 한다. 눈은 영혼의 자리이며 정신을 현상시킨다”고 강조하며 예술은 이처럼 모든 것을 영혼으로 삼아 눈으로써 정신을 나타나게 한다고 말한다.

판소리에 ‘눈’이란 말은 ‘눈을 내준다’ ‘눈을 찾는다’ 등과 같이 소리꾼의 고수(鼓手)에게 지어주는 장단의 매듭과 같은 뜻이다. 근래에 들어서 ‘눈대목’이란 말은 판소리의 가장 감동적인 대목을 지칭하는 것으로 바뀌어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판소리 춘향가에서의 ‘사랑가’, 흥보가의 ‘흥보 박타는 대목’, 심청가의 ‘심봉사 눈뜨는 대목’과 같은 것이다.

매년 11월 11일은 ‘눈의 날’이다. 국민의 눈 건강을 위해 1956년 제정한 날이다. ‘눈의 날’의 날짜 ‘11’은 웃는 눈의 모양을 상징하고 있다. 이처럼 공식적 기념일이 아닌 상업적 기념일인 ‘빼빼로 데이’도 같은 날이다.

동물들의 눈에도 관심을 돌려 보면 움직임에 민감한 개구리의 눈, 포유류 중에서 시력 좋기로 유명하며 체온을 느낀다는 기린의 눈, 시야가 넓은 물고기의 눈, 사람보다 8배나 뛰어난 매의 눈도 있다. 마다가스카르 섬의 카멜레온 생태를 보면 목은 짧지만 눈을 따로따로 360도 회전할 수 있어서 주위의 물체를 더 넓게 볼 수 있다.

눈과 관련된 음악들도 많다. “그 태양보다도 더 아름다운 너의 눈동자, 오 나의 태양이여, 그것은 빛나는 너의 눈동자”의 가사가 가슴에 와닿는 ‘오 솔레 미오(O Sole Mio)’는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를 태양에 비유한 칸쵸네의 태양이라 할 수 있는 스케일이 큰 명곡이다.

‘뷰티플 브라운 아이즈(Beautiful Brown Eyes)’ 역시 아름답고 낭만적인 왈츠 풍의 노래이다. 그리고 더없이 경쾌하고 힘찬 곡인 ‘아이 오브 타이거(Eye Of The Tiger)’는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한 ‘록키’ 영화의 주제곡이다.

국내 가요로는 70년대 흘러간 곡으로 “그날 밤 이슬이 맺힌 눈동자 그 눈동자/ 가슴에 내 가슴에”로 시작되는 이승재의 ‘눈동자’가 있다.

또한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가 도입부인 박인환 작시, 박인희가 부른 ‘세월이 가면’ 곡 등은 연배 있는 분들에게는 한없이 아련한 추억의 노래이기도 하다.

네팔 스투파의 ‘몽키 템플’에서는 세 개의 눈을 가진 의인화된 불탑을 만나게 된다. 자세히 보면 미간 사이에 눈이 하나 더 있다. 제3의 눈이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눈이라 한다.

몇 년 전에는 인도에서 눈이 세 개인 송아지가 태어나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인도 남동부 타밀나두 주(州)의 작은 마을 콜라설에는 해마다 수많은 방문객이 이 송아지를 보기 위해 걸음을 재촉한다. 언뜻 보기에는 기형적인 신체를 타고난 송아지로 치부될 수 있으나 이곳 주민들 사이에는 시바의 화신으로 신성시 되고 있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우리 몸의 양 눈 사이에는(머리 뒤로 5분의 3 지점) ‘제 3의 눈’이라고 불리는 솔방울 모양의 ‘송과체(松果體)’가 있다. 소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이라고도 한다. 옴(Ohm)이라는 비자(bijja·씨앗) 만트라가 이곳을 자극하기에 최적의 음(音)이라고 하여, 예로부터 ‘옴’이란 만트라를 ‘하늘의 소리’라 하여 매우 신성시 여겨 왔다.

가톨릭 중심 바티칸 광장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솔방울 조각상이 있고, 1달러짜리 지폐에도 제3의 눈이 그려져 있다. 붓다의 이마에 있는 점 백호도 제3의 눈을 상징한다.

성경에도 “몸의 빛은 눈이니 그러므로 그대의 눈이 하나가 되면 온몸이 빛으로 가득하리라”는 구절이 있다.

과학자들은 최근에 눈이 없는 멕시코의 장님 물고기가 송과선을 이용하여 바깥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처럼 고대 인도의 요기들과, 로마교회에서부터 시작하여 미국 갱단에 이르기까지 ‘송과체(松果體)’를 비밀스럽게 관리해 왔다.

비밀의 샘, 영혼의 자리, 제 3의 눈(The Third Eye), 천안(天眼), 솔방울샘, 심안(心眼), 천목(天目), 산근(山根), 상단전, 시바의 눈, 아즈나 차크라, 인당혈(印堂穴), 니환궁(泥丸宮), 영안(靈眼), 도가에서는 황정(黃庭), 곤륜(昆崙)이라 부른다. 서양에서는 윗궁창 하늘 마을이라고도 부르며 우리말로는 골밑샘이라 불리는 뇌의 간뇌 부위에 위치한다.

이 송과체는 지혜의 자리로 간주되며, 제3의 눈이 각성되기 시작하면서 통찰력이나 직관력, 두뇌의 정보처리 능력 등에서 월등한 진보가 생기게 된다. 마음의 경계를 가로질러 정신체를 초월할 수 있는 곳으로 여겼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수행법이 있어 어떻게 하면 이 제3의 눈을 각성시키고 이 기관에서 얻어지는 신비롭고 초인적이며 영적인 파워를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탐구하는 많은 연구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인도 여인들의 이마를 보면 두 눈 사이에 점이나 스티커가 붙여져 있는 것을 흔히 본다. 이는 제3의 눈 빈디를 의미하는데 빈디는 힌디의 빈두에서 유래된 말로 방울을 의미한다. 이는 양미간에 제3의 눈이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요가 수행에서는 육체의 건강을 돕는 ‘정화법(사트 카르마·sat karma)’이 있다. 그중 눈의 정화법인 ‘트라타카(trataka)’가 있는데 ‘한 점 집중 수련법’이다. 트라타카는 눈을 깜빡이지 않고 촛불이나 지평선, 나무의 끝자락, 보름달, 혹은 작은 점, 눈높이로 벽에 고정시킨 검정색 등 한 가지 대상을 응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눈을 강화하고 깨끗이 해준다. 마음의 초점을 맞추고, 동요하는 경향을 억제해서 일점 집중하여 통찰력을 일깨우는 것이 목적이다. 이 방법은 어떤 물체를 응시한 후 시선을 고정한 채 눈을 깜빡거리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눈을 떴어도 눈물이 흘러내릴 때까지 집중한다. 그리고는 ‘네트라 반다(netra banda)’라 하여 눈을 크게 떴다가 꼭 감았다 하는 걸 반복하면, 눈물 등 눈 속 노폐물을 밖으로 밀어내게 된다. 이 역시 안근을 강화시키고 눈을 정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물체를 사진 찍듯이 기억하여 눈을 감고도 그 대상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눈이 가는 곳으로 마음이 가듯, 눈이 머무는 곳에 마음을 집중하는 방법이다.

나쁜 시력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인공조명에 오랫동안 노출된 생활을 하거나, 지나친 TV 시청, 장시간의 컴퓨터·스마트 기기 작업이나 게임 등은 눈 자체를 혹사시킨다. 영양실조, 긴장과 스트레스, 노화 등도 그 원인이 된다. 흔들거리는 차 안에서의 스마트폰 사용이 그렇고, 심지어 걸어 다니면서도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에서 눈을 못 떼고 있을 정도이니 보행의 안전은 물론이고 눈의 건강이 심히 우려되는 모습들이다.

그러므로 40분 정도 전자기기를 사용했다면 10분가량 눈을 쉬게 하고, 휴식 시간에는 창밖 등 먼 곳을 바라보며 눈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가까운 곳을 오래 봤다면 반대로 먼 곳을 바라봄으로써 눈 근육을 쉬게 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이 밖에 눈의 피로를 풀어주고 좋아지게 하는 지압요법도 권한다. 양 눈 사이에 있는 청명(晴明)혈, 관자놀이 부근의 태양혈, 눈썹의 안쪽 시작 부문인 찬죽혈, 눈썹의 바깥쪽 끝부분인 사죽공혈, 눈동자 바로 아래 승읍혈, 동공 위쪽에 있는 양백혈, 엄지와 인지 사이의 합곡혈, 뒷머리 아래쪽에 위치한 풍지혈 누르기 등이다.

눈 건강을 위해서는 음식 역시 소화가 잘 이루어지고 배설을 순조롭게 하는, 즉 장에 체류하는 시간이 짧고 가스를 많이 발생시키지 않는 자연식의 섭취가 요구된다. 따라서 장에 머무는 시간이 긴 육식이나 지방이 많이 함유된 식단, 화학조미료가 많이 첨가된 음식 등은 피하고 가능하면 섬유질을 많이 함유한 야채식을 할 것을 권한다. 한의학에서는 눈을 간의 상태가 나타나는 부위로 본다. 따라서 간 기능을 높이는 식품 섭취도 눈 건강에 도움이 된다.

이 밖에 눈의 피로를 덜고 안근을 강화시키는 눈 운동, 눈 요가로는 손바닥을 뜨겁게 문지른 후 눈에 대기, 수시로 눈 깜빡거리기, 눈동자 빙글빙글 굴리기, 고개를 고정한 채 양쪽 측면 보기, 고개를 고정한 채 회전하는 것 보기, 고개를 고정한 채 위아래 보기 등도 눈 건강에 도움이 된다.

사람에게는 3개의 눈이 있다. 제1의 눈은 ‘육체의 눈’이다. 이 눈으로 형체와 색깔·빛을 본다.

제2의 눈은 ‘마음의 눈’이다. 이 눈으로 생각하고 추리하고 상상한다. 마음은 눈은 곧 이성의 눈이기 때문이다.

제3의 눈은 ‘영(靈)의 눈’인데 아무런 움직임 없이 그저 지켜보고 아는 눈이다. 아무런 모양도 빛깔도 소리도 맛도 냄새도 느낌도 움직임도 없으면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아는 관조(觀照)의 눈, 영(靈)의 눈이다.

달마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 하여 직접 손으로 사람의 천안(天眼) 즉 천목혈(天目穴)을 열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방법을 전한 바 있다.

제3의 눈을 열게 되면 직관력, 예지력, 천리안, 통찰력 등으로 불릴 수 있는 기능들이 발달한다. 제3의 눈은 우주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해부학적으로는 송과선과 연결되어 있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송과선을 육체와 정신이 만나는 점이라고 생각하였다. ‘영혼의 의자’라고 호칭하기도 했다.

요가에서 이곳을 ‘아즈나 차크라’라고 한다. 이곳은 특히 질서를 상징한다. 단 두 장의 연꽃잎으로 그려진 얀트라이다. 이는 시바와 삭티라는 남성적 원리와 여성적 원리가 따로 떨어지지 않고 완벽하게 결집된 모습을 나타낸다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제3의 눈’이란 문화와 수행체계에 따라 명칭은 다를지라도 전 세계적 공통적으로 영성(靈性)을 깨우치는 눈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 ‘트라타카 촛불 명상법’으로 이 신비의 블랙홀, ‘제3의 눈’ 속으로 깊이 침잠해 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아니면 ‘뷰티플 블랙 아이즈’의 그대 눈동자에 ‘트라타카, 한 점 응시 수련법’으로 눈물나게, 눈물 쏙 빠지게 눈 맞춤 한번 해볼거나.

헌데 그 님은 어디 계실까? 멀리서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 님이 아니면 못산다 할 것을~”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 노래 소리가 나른한 봄날에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한데 말이다.



[트라타카 촛불명상 / 최진태]


붉디 붉은 열정 담아/ 숨죽인 어둠 속으로/ 너풀너풀 걸어와/ 헌화하는 그대

일렁거리는 아픔의 눈물/ 안으로 안으로 삼키며/ 제 한 몸 사르는구려

양 눈 치켜뜬 채/ 그대와 힘겨운 눈싸움 할 때/ 흐르는 눈물 방울 방울들

그대의 희생적 사랑에 대한/ 감동의 진주 이슬 이려니,/ 지치고 힘든 피로한 눈에게는 영약이려니,/ 깊디 깊은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는/ 한줄기 빛과 소금이려니

눈물 닦으며 그대의 헌신과 노고/ 오래 오래 기억하리라



최진태 부산요가지도자교육센터(부산요가명상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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