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등꽃/김뱅상(19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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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가 아닌 쉼표에 든다 평상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보라를 보는 거야 빨강이었을 때와 파랑이었을 때는 언제였는지 언제쯤에 보라에 마음을 빼앗겼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지 서로의 몸을 의지한 채 울타리 안에 가두려고 한 것인지 몰라 그의 사치스런 빨강이 싫었는지도 몰라 파랑의 공간 노래했지만 바이올렛 내음이 전해지는 향기는 견디기 어려웠지 아직 도착하지 못한 종착지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하얀 속살 보이며 아래로 매달려보는 판타지 시간들 호수의 물결 속에서 웅크린 그의 등을 본다

-시집 (2021) 중에서

오월엔 등꽃이 한창이다. 흰 꽃을 내는 등나무도 있다지만, 등꽃은 역시 보라색 꽃이 등꽃 답다. 시인은 ‘언제쯤에 보라에 마음을 빼앗겼는지’ 눈을 감은 채 보라를 느껴본다. 보라는 신비를 담당하는 색. 최근 부산에서도 이 등꽃으로 판타지 공간을 만들어내는 장소가 여럿 생겼다. 등나무는 주로 그늘막으로 쓰이고 나중에는 고급 의자로도 쓰인다. 이 등나무에 꽃이 피면 ‘웅크린 그의 등’을 불러오는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중년 사내의 마른 등이 휘어진 등나무처럼 굴곡져 보인 것일까. 웅크린 자신의 등도 식구들의 의자가 되기를 바라는 게 가장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등꽃은 왜 아래로, 아래로 제 발 디딘 땅을 향해 피는 걸까.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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