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민의 기후 인사이트] 섭씨 1.5도 이후의 세상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2015년 12월 파리. 각국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여 인류 역사상 최초로 반드시 지켜 내야 할 지구 온도 상승의 마지노선을 2도로 규정하는 데 전격 합의하였다. 그로부터 3년 후 우리나라에서 열린 제48차 IPCC 총회에서 세계 정상들은 점점 더해지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이보다 0.5도 낮은 1.5도 목표치를 재설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기후위기’와 ‘1.5도’라는 단어는 대중들에게 선명하게 각인되기 시작했고, 뚜렷한 목표 설정은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기후위기 대응에도 불을 지폈다. 각국은 앞다퉈 한층 강화된 탄소 감축 목표치를 유엔에 제출하며 기후위기에 대한 국제 공조 의지를 보여 줬으며, 그레타 툰베리와 같은 청소년 활동가들을 필두로 일반인들의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도 전에 없이 높아졌다.
지구 온도 억제 노력 충분하지 않아
탄소 감축 강박에 무리한 정책 추진
실정에 맞는 에너지 전환 준비해야
역사적인 파리기후협약이 체결된 지도 벌써 6년의 세월이 지났다. 이제 중간 점검을 해야 할 시기이다. 우리는 그동안 과연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묶어 놓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전혀 충분하지 못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지난 6년간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며 서로 입장이 다른 각국이 자국에 유리한 국가별 탄소 감축 목표 설정을 위해 티격태격하는 와중에도 인류의 탄소 배출량은 줄어들기는커녕 올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기후위기에 관한 정치적 합의도 온 인류를 공포로 몰아갔던 코로나 팬데믹도 인류의 탄소 중독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사회의 기후위기 대응을 더욱 힘겹게 만들고 있다. 전쟁으로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 수입이 어려워진 유럽에서부터 화석연료 감축 계획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탄소중립과 화석연료 퇴출에 목소리를 높이며 기후 행동에 선제적 역할을 하던 유럽이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에 급급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는 사이 지구의 온도는 매년 빠르게 상승하여 1.5도까지는 이제 겨우 0.3도만을 남겨 놓고 있는 암울한 상황이다. 냉정하게 보면 지구 온도 1.5도 상승을 막는 일은 이미 불가능해졌다고 보는 것이 맞다.
“1.5도를 넘으면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필자가 기후 강연을 마치고 자주 받는 질문이다. 혹자는 1.5도를 넘어서면 지구의 기후 시스템이 폭주하면서 더 이상 손 쓸 수도 없이 온도가 올라가 버려 지구가 멸망하는 것 아닌가 걱정한다. 1.5도를 넘으면 지구의 기후가 파국으로 치닫는다고 얘기한 과학자는 아직 없다. 가능성의 이야기인데 그 가능성마저도 실험으로 입증된 경우를 필자는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기후위기 극복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아니다. 필자는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지구의 온도는 바뀌고 1.5도건 2도건 인류 생존에는 지극히 위험한 일이기에 지구 온도 상승을 억제하는 노력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미 달성이 불가능한 목표치인 1.5도를 지켜내기 위해 무리하게 불필요한 국력을 낭비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국력 낭비는 이미 우리나라에서 만연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발전을 획기적으로 늘려 ‘탄소 없는 섬’으로의 탈바꿈을 꿈꾸던 제주도의 사례를 들어 보자. 최근 제주도의 태양광과 풍력발전소는 수시로 멈춰 선다. 작년에만 전력 과잉 생산으로 발전을 멈춘 횟수가 130회에 이르고 이대로 가면 2030년께는 공급 과잉으로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1년에 절반가량 멈춰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왜 이렇게 한 치 앞을 보지 못하고 신재생에너지의 양적 확대에만 혈안이 됐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근원적으로는 결국 1.5도를 지켜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루라도 빨리 탄소 감축을 통해 온실효과를 줄여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절대 근시안적으로 추진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인프라가 먼저다. 태양광과 풍력발전소를 급격히 늘려 나가기에 앞서 그에 걸맞은 에너지 저장시설과 송전망의 확충이 선행되어야 한다. 도로도 깔지 않고 자동차부터 찍어 내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이러한 사태의 이면에는 OECD 국가 중 신재생에너지 보급률 최하위권인 대한민국을 기후 악당으로 내몰며 압박하는 국제사회의 시선 등이 한몫했을 것이다. 결국 깊이 따져 들면 1.5도에 대한 지나친 강박관념이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하듯이 정부가 1.5도 이후의 세상을 내다보며 우리 실정에 맞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차분히 준비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한 사람의 국민이자 과학자로서 가져 본다. 좀 더 긴 시각에서 기후위기를 바라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