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석 달 동안 세 번의 부음을 들었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팬데믹을 지나 엔데믹 시대가 오고 있다. 지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진행된 사회적 거리 두기는 일상생활은 물론 정치, 사회, 경제, 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포스트 코로나가 아니라 계속 변이되는 바이러스에 적응해야 하는 사회는 놀랄 정도로 디지털 산업의 성장을 앞당기고 있다. 그동안 서서히 진행되던 4차 산업혁명이 팬데믹으로 인해 급속하게 진행된 느낌이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전염병이 있었음에도 코로나와 페스트를 비교하는 이유는 둘 다 역사의 전환을 앞당겼기 때문이다. 유럽 인구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간 페스트 유행 이후 유럽의 역사는 완전히 바뀌었다. 급격한 인구 감소로 농노는 부족하고 노동자의 몸값 상승과 땅값 하락은 상공업의 발달과 화폐경제의 확산으로 이어졌다. 〈맨큐의 경제학〉에서는 중세 유럽의 붕괴 원인을 페스트에서 찾을 정도다.


팬데믹으로 사회 변화 가속화

‘인간’을 돌아보는 계기 삼아야

사색 과정에서 생각의 힘 얻어


페스트가 유럽 봉건사회의 몰락과 더불어 자본주의의 태동을 가져왔다면 코로나는 성장과 개발 일변도의 자본주의에 경종을 울리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환기와 더불어 4차 산업혁명을 가속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변화의 속도에 비해 자연과 인간에 대한 환기는 너무 느린 듯하다. 변화에 뒤처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기보다 라캉의 말처럼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기에 급급하다. 철학이 없는 시대라 하기도 하고 시대의 담론이 사라졌다고도 한다.

세상은 밝고, 이면은 어두운 이 시기, 석 달 동안 세 번의 부음을 들었다. 2월 26일 이어령 작가, 4월 25일 이외수 작가, 5월 8일 김지하 작가. 시기는 다르지만 모두 등단과 동시에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이들이다.

이어령 작가는 대학 2학년 때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가 전면에 실리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그는 2006년 신년, 중앙일보 칼럼에 그리스 신화에서 제 아들까지 잡아먹었던, 시간을 상징하는 크로노스에 빗대어 매년 설이 되면 나이(시간)까지도 먹어버리는 한국인들은 마음먹기에 따라 뭐든 먹을 수 있다며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접목을 먹는 것으로 연결한 ‘디지로그’를 전면에 내세웠다. 인문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했던 그는 죽기 전까지 자신의 사상을 책으로 엮었다.

이외수 작가는 1981년 발표한 장편소설 ‘들개’로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올랐다. 날것으로 드러나는 삶의 쓸쓸함에 더해진 그의 감성은 ‘꿈꾸는 식물’에서 “노란 꽃이 노란색인 이유는 노란 꽃은 노란색을 싫어하기 때문이다”는 문장으로 빛의 스펙트럼까지 확장시켰다. 세상의 폭력을 여린 감성의 언어로 풀어내던 그는 장편소설 〈벽오금학도〉 이후 선계를 넘나들더니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업으로 평생을 기인처럼 살다 갔다.

김지하 작가의 저항시 ‘오적(五賊)’, ‘타는 목마름으로’는 민주화운동시대의 교과서처럼 남아있다. 독재에 항거하다 투옥된 5년간 심취한 생명사상은 각종 종교를 섭렵하게 했고 증산도와 환단고기에까지 이르렀다. 1991년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조선일보 칼럼으로 변절자, 배신자로 매도되었다. 이후에도 가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가 죽을 때까지 놓지 않았던 생명사상은 새롭게 조명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살아서 어떤 권력도 만들지 않고, 권력에 영합하지도 않았다. 지성의 상징인 이어령 작가, 감성의 상징인 이외수 작가, 생명의 상징인 김지하 작가, 각각의 색깔은 달라도 이들이 닿고자 했던 곳은 ‘이즘’이나 ‘주의’가 아니라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명의 본질에 대한 탐구였다는 생각이다.

이들의 부음을 차례로 들은 후,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는 정태춘의 노래 ‘92년 장마, 종로에서’가 떠오른 건 숨 막히게 달려온 대한민국의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압축 성장의 시기에 많은 이들을 위로하고 질문하게 만들었던 그들의 삶과 사상이 당대가 아니더라도, 제대로 평가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살면서 느끼는 불안과 불만은 깊이 들어가면 모두 철학적 문제다. 철학은 철학자만 하는 게 아니다.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 더 나은 세계에 대한 갈망, 추구해야 할 가치 등을 고민하는 모든 것이 철학적 사고다. 정답은 없지만 사색의 과정에서 생각의 힘을 얻게 된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오월,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 치열하게 살았던 순수한 영혼들을 기억했으면 한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