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부산을 찍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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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사진미술관 부산 프로젝트 ‘부산이바구’ - 박종우

‘아티스트 토크’는 작가에게 작품과 제작 과정 이야기를 직접 듣고, 예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7월 2일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두 미술관에서 사진가, 현대미술가와 만나는 자리가 마련된다. 오전 11시에는 고은사진미술관에서 박종우 사진가와의 대화가, 오후 2시 30분에는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이형구 작가의 아티스트 토크가 시작된다. 부산을 기록하고 몸을 탐구한 두 작가의 이야기를 지면으로 미리 들어본다.


“부산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천국입니다.” 바다와 산, 원도심 풍경, 지형의 높낮이에서 오는 입체감. 박종우 사진가는 부산이 ‘사진가에게 굉장히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도시’라고 했다. 고은사진미술관의 부산 프로젝트-박종우전 ‘부산이바구’에서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눈으로 기록한 부산을 만날 수 있다.

‘부산 프로젝트’는 2014년에 시작됐다. 박종우는 미술관에서 ‘부산에 대해 알아서 찍어달라’는 의뢰를 받고 고민했다. “앞의 작가들이 찍을 만한 것은 다 찍었더라고요. 그러면 차라리 많이 바뀌고 앞으로 없어질 것을 찍자 생각했죠.”


다큐멘터리 사진가 눈으로

원도심 골목·가파른 산비탈 등

도시 아카이빙하듯 기록


박종우의 작업은 개인의 기억에 뿌리를 둔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으로 사라지기 전에 우리가 기록해야 할 부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박종우 촬영·고은사진미술관 제공 박종우의 작업은 개인의 기억에 뿌리를 둔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으로 사라지기 전에 우리가 기록해야 할 부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박종우 촬영·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사진가는 어린 시절 기억을 소환했다. “부산을 처음 방문한 것이 1969년인데 구포다리를 건너던 기억이 납니다.” 그는 초등 5학년 때 할머니 장례식을 위해 찾은 부산을 떠올렸다. 중학교 시절에는 이모가 사는 영도에 자주 왔다. “대교동에서 배를 타고 자갈치에 나가 혼자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원도심 풍경은 사이사이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다는 점 말고는 거의 비슷한 것 같아요. 대신 예전에는 골목마다 사람으로 꽉꽉 차 있었는데, 지금은 동네에 사람이 많이 줄었어요.”

박종우는 보수동, 문현동, 서동, 영주동, 우암동, 좌천동, 중앙동 등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부전시장, 해운대 기찻길까지 흑백사진 속 부산은 마치 시계를 되감은 것 같은 모습이다. “사람들이 주로 큰길로만 다녀서 못 느낄 수 있지만, 부산은 다른 도시에 비해 원도심 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요.”

박종우는 부산을 촬영하며 목욕탕의 굴뚝 사진도 찍었다. “중학교 때 부산역에 내리면 목욕탕 굴뚝이 인상적이었죠. 다른 도시는 높이가 이렇게 높지 않아요.” 산비탈을 따라 주거지가 있어 목욕탕 굴뚝이 낮으면 위쪽에 있는 집들이 연기로 피해를 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높이가 50m가 넘는 굴뚝도 있어요. 이제는 안 쓰는 곳이 많은데 철거를 하려면 3000만 원 정도 들어가서 그냥 내버려 두고 있더라고요.” 목욕탕 굴뚝이 고층 아파트와 어우러진 모습, 건강탕·동네탕·샘물탕·약수탕… 굴뚝에 쓰인 목욕탕 이름에서 정겨움이 묻어난다. “부산시 통계를 보니 목욕탕 굴뚝이 약 500곳이 남아있다는데, 저는 200군데를 찍었어요.”

박종우에게 부산의 가파른 산비탈 ‘까꼬막’은 남다른 장소이다. “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군인으로 참전하셨어요. 할머니는 1·4 후퇴 때 혼자 피란 열차를 타고 부산진역에 내렸다고 하세요. 주변에 가장 가까운 절이 어디냐고 물어서 찾아간 곳이 좌천동 연등사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총상을 입고 후송된 곳이 지금의 경남여고 자리에 있던 제36육군병원. “서로의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던 두 분이 기적적으로 만난 곳이 수정동의 구멍가게라고 해요.”

진해에서 돌아가신 할머니 유골을 들고 찾아온 좌천동, 산비탈에 판잣집이 가득했던 기억. 사진가는 까꼬막을 부산의 역사성을 담고 있는 지표공간으로 풀어냈다. “까고막 사진을 찍어 컴퓨터로 확대해 보니 상징적인 부분이 보이더군요.” 그는 계단, 컬러풀한 집, 옥상 물탱크, 민속신앙 네 가지 키워드로 까꼬막을 재구성했다.

박종우는 부산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을 말했다. “3년간 사진을 찍으면서 부산은 전국에서 가장 변화가 빠른 도시라고 느꼈어요. 지금도 많은 분이 사진을 찍고 계시지만 원도심이 없어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겼으면 좋겠어요. 작가주의적 관점 말고 도시를 아카이빙하는 차원에서 충실하게 사진을 찍어두면 좋지 않을까요.” ▶‘부산이바구’전=8월 21일까지 고은사진미술관. 작가와의 대화 참여는 선착순 접수 50명. 051-746-0055.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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