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계 최대 고인돌, 김해시가 원형 훼손했다니
복원 공사 중 박석 등 중요 유물 훼손
전문가 입회·검토 없이 공사하다 참사
문화재청은 경남 김해시가 구산동 지석묘(고인돌·경남도기념물 제280호) 정비 공사 과정에서 관련법을 위반한 사실을 확인하고 법적 조처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현장 모습. 연합뉴스
김해시가 세계 최대 규모 고인돌(지석묘) 복원 사업을 진행하다 유적을 훼손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김해시 구산동 고인돌 묘역(경남 기념물 280호)이 복원 공사를 벌이던 업체에 의해 훼손됐다. 김해시는 구산동 고인돌을 국가 사적으로 승격하기 위해 토목 업체를 동원해 정비·복원 사업을 진행해 왔는데 지난달 무덤의 대형 덮개돌인 상석 아랫부분의 박석을 비롯한 묘역 대부분을 갈아엎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고인돌의 사적 지정을 위한 예비 조사 차 유적지를 찾은 문화재위원회 매장·사적분과 위원들이 현장을 시찰하다 유적의 무단 훼손을 목격하고 문화재청에 신고하면서 알려졌다.
해당 고인돌은 상석 무게만 350t이고 묘역 시설이 1615㎡에 이르러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는 김수로왕의 나라인 가락국 탄생의 비밀을 밝힐 단서로 여겨지는 중요한 유적이다. 고고학자들은 이번 훼손으로 고인돌의 핵심인 묘역이 어떤 방식으로 축조됐는지 등을 밝힐 중요 자료가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특히 묘역 부석 아래층 지하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다른 청동기시대 집자리나 유물도 공사 과정에서 상당수 부서지거나 뭉개졌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지자체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 부족과 업체의 무지로 소중한 문화유산이 사라진 것이다.
김해시는 이 과정에서 문화재청에 제대로 신고도 하지 않고 전문가의 입회나 현장 검토도 없이 일개 토목업체에 공사를 맡겨 참사를 초래했다. 김해시는 묘역을 관광자원화 한다는 명분으로 시공사를 선정한 후 전문가 입회도 없이 묘역의 잔존 석재들을 대부분 걷어 내 상석과 더불어 고인돌의 핵심 부분인 상석 아래 묘역층이 원형을 잃고 날아가 버렸다. 구산동 지석묘의 경우 박석이 묘역을 표시하는 역할을 해 이를 들어내려면 사전에 문화재청의 발굴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허가는 물론이고 사전 협의도 없었다. 유적 일부 구역은 박석 등 석재를 걷어 낸 기반 위에 육중한 포클레인 3대를 가동시키면서 전문가의 현장 검토 없이 배수펌프 설치 공사를 벌인 사실도 드러났다.
김해시가 가야 유산 복원과 보존을 기치로 내걸고 가야사 복원을 국가 사업으로 진행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유적 훼손은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가야사 복원과라는 별도 부서까지 두면서 학예사에게 업무를 전담시키지 않고 토목 담당 공무원 위주로 사업을 진행했다는 자체가 문화재에 대한 한심한 인식 수준을 보여 준다. 문화재청은 김해시에 공사 중지를 요청하고 문화재 위원들을 현장에 급파해 피해 현장 조사와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한다. 문화재청은 유적 훼손 과정의 문제점을 철저히 밝히고 김해시와 관련 업체의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이를 통해 다시는 이 같은 문화재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