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비대위 전성시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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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이 9일 전국위를 열어 비대위 전환을 위한 당헌 개정안을 의결하면서 여야 3당이 모두 비대위 체제를 맞이하게 됐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정당 대표가 선거 패배 등의 이유로 임기가 끝나기 전에 사퇴할 경우 차기 당 대표 선출 때까지 임시로 구성하는 당 지도부다. 통상 줄여서 비대위라고 부른다. 민주당은 지난 3월 대선 패배 후 윤호중·박지현 비대위에 이어 6월 지방선거 후 우상호 비대위가 들어섰다. 정의당도 지방선거 후 여영국 대표가 물러나고 이은주 비대위로 전환했다. 우상호 민주당 비대위원장의 말처럼 이제 우리 정치는 “어느 당 비대위가 더 잘하냐”라는 이상한 경쟁이 되고 말았다.

국민의힘은 전신인 한나라당, 새누리당, 미래통합당 시절을 포함하면 이미 여덟 차례나 비대위 체제를 경험했다. 민주당 우 비대위원장은 김종인-도종환-윤호중·박지현 비대위원장에 이은 다섯 번째다. 2016년에도 제20대 국회가 출범한 지 한 달여 만에 국민의당이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으로 와해된 것을 계기로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이 민주당과 함께 모두 비대위 체제로 운영되었다. 집권 여당이 3개월 만에 비대위를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지만, 한국 정당 정치 역사에서 비대위는 관례가 되고 말았다.

민주당은 지난해 부산·서울시장 재·보선과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3연패를 당했으니 환골탈태가 필요해 보인다. 정의당은 지난 대선에서 존재감이 없었고 지방선거에서 광역·기초 의원 통틀어 9명이 당선되며 2018년(37명 당선)과 비교하면 4분의 1토막이 났다. 비대위는 이처럼 당 지도부가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없는 특별한 상황에서 가동되는 전환기적인 임시 기구다. 대통령을 배출하고 지방선거에서도 대승한 집권 여당이 비대위 체제라니 어떤 이유를 들더라도 석연찮은 게 사실이다.

민주당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이 무리하게 당 대표에 출마하려다 좌절되는 꼴불견을 본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여야 3당이 모두 비대위 체제를 맞이하게 된 것은 우리 정치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정당정치는 의회를 통한 협상 및 협의가 중심인데, 비대위는 이 같은 의회민주주의의 발전을 어렵게 만든다. 우리 정당정치가 얼마나 부실하면 여야 3당이 모두 비대위 체제라는 말인가. 국민 여론이 악화되자 보여주기식으로 일단 비대위부터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어디를 둘러봐도 국민들이 마음 줄 곳이 보이지 않는 요즘 한국 정치가 걱정이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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