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해수부 표지석
어떤 사물을 다른 것과 구별하거나, 어떤 내용을 일반에 알리기 위해 세우는 돌을 표지석(標識石)이라고 한다. 대체로 기려야 할 건물이나 장소, 유명 인물의 행위 등을 기념하기 위해 설치하는 경우가 많다.
표지석 설치는 언뜻 보면 화강암 등 돌의 표면에다 글씨를 새겨 넣는 단순한 행위에 불과해 보인다. 하지만 이면으로 들어가면 그리 단순하지 않다. 밋밋한 표면에 음각의 글씨가 들어와 박히게 되면 특정한 장소나 건물을 대표하는 얼굴로 변한다. 이렇게 표지석이 되는 순간 길가의 돌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의미가 부여된다. 강한 상징성이 붙으면 정치적 함의까지 내포하기도 한다.
2013년 11월 우리 정부가 중국 정부와 협력해 헤이룽장성 하얼빈역 내에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지점을 명확하게 표시한 기념 표지석을 세우려 하자, 일본이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며 격렬한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 이 표지석이 일본 제국주의의 치부를 계속 떠올리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지난해 말 대선 정국 당시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한 이재명 후보가 묘역 입구 땅에 박힌 ‘전두환 표지석’을 밟으면서 입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 후보의 행위는 당시 치열한 대권 경쟁자였던 다른 후보와 비교돼 호사가의 입길에 오르내렸다. 표지석이 내포한 정치적 상징성을 잘 보여 준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해양수산부의 표지석이 화제다. 해수부가 부처 출범일(8월 8일) 26주년을 맞아 부산 국립해양박물관에 보관돼 있던 ‘해양수산부 표지석’을 14년 만에 부처가 위치한 정부세종청사 앞 녹지 공간에 설치했다는 것이다. 해수부의 신산했던 이력을 이 표지석만큼 잘 보여 주는 물건도 없지 싶다.
이 표지석의 신세는 해수부 존폐에 따라 창고에 처박혔다가 다시 햇빛 보기를 반복했다. 2004년엔 해수부가 서울 계동 현대그룹 사옥에 청사를 마련해 들어가면서 이 표지석도 따라 옮겨졌는데, 바로 현대그룹을 상징하던 큰 화강암의 ‘現代(현대)’ 표지석이 있던 자리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부처 해체로 해수부 표지석은 현대 표지석에 자리를 내주고 창고 신세가 됐다. 주인의 부침에 따라 비운의 표지석끼리 자리를 맞바꾼 셈이다. 해수부 직원들은 신산했던 이 표지석의 내력에 담긴 의미를 잊지 말 일이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