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인구 대위기 시대의 도래
초의수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70세 사망법안, 가결〉. 70세가 되면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법안이 가결되면서 벌어지는 내용을 담은 일본 소설가 가키야 미우의 소설 제목이다. 올해 개봉된 일본 하야카와 신치 감독의 영화 ‘플랜 75’에서는 75세 이상 국민 누구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국가가 노인들에게 죽음을 권유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늙어서 부담스러운 노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이들 픽션은 고령화율 30%를 목전에 둔 일본 사회에서 겪는 고민의 엽기적 표현이기도 하다. 2040년 우리나라 고령화율은 33.9%로 세계 1위 일본과 비슷해지고, 2050년에는 39.8%가 되며 1위로 올라선다.
2021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84명(OECD 평균 1.61명)으로 세계 꼴찌이며, 1.0 이하의 출산율 자체가 홍콩 등 도시국가를 제외하고는 세계 어느 나라도 경험 못한 초유의 현상이다. 2020년 인구의 자연 감소가 시작되어 2117년에는 100년 만에 현재 인구의 70.6%가 사라지고 1516만 명으로 급격히 쪼그라든다. 총인구뿐 아니라 생산가능인구도 2020년부터 2030년까지 부산 인구에 해당하는 320만 명이 사라지게 된다. 더 심각한 것은 고령화 진행이다. 고령화율은 2021년 16.5%에서 2030년 25.0%로 급상승하여 동 기간 OECD 국가 29위에서 9위로 무려 20단계 상승한다. 세계 어느 나라도 경험해 보지 못한 빠른 고령화로 국민연금, 보건의료, 노인돌봄 등 국가나 가계 모두 막대한 비용 지출이 불가피하다. 고령화에 따른 재정 지출은 꼭 해야 하는 경직성 비용이고 상대적으로 경제적 승수효과도 떨어져 그만큼 사회적 부담을 초래한다.
합계출산율 0.84명 세계 꼴찌
2040년 고령화율 40% 1위
국가·가계 막대한 비용 불가피
수도권 인력 증설 목매지 말고
비수도권 혁신성장도시 육성
전 국민 참여 인구정책 추진을
인구 감소는 생산인력 부족과 더불어 소비감소, 생산감소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세금을 납부할 인구층도 감소시켜 재정위기를 촉진한다. 2020년까지 인구 보너스 혜택을 본 한국은 이후 ‘인구 오너스(부담)’ 시대로 전환하고 잠재성장률이 감소하며 세계 10위의 GDP 순위도 금세기 내 추락하여 필리핀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저출산으로 인해 적정 군사력 유지 불가, 인구 및 사회서비스 사막화 지역 확대, 지방 붕괴, 사회지출 급증 등의 문제를 야기한다. 국제사회는 특정 피해가 일상적 대처 능력으로 감당이 되지 않을 때 재난으로 규정하는데 인구 위기가 제대로 대처되지 못한다면 재난이 될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우리나라 저출산의 원인은 무엇일까? 작년 7월 발표한 감사원 자료는 수도권 인구집중, 지방 청년인구의 수도권 유출, 지방의 인구 과소화와 수도권 과밀화, 수도권 주거비 급등에 따른 청년층의 결혼과 출산 포기 등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 첫째는 사람 중심의 포용적 정책 추진이다. 재난연구가인 존 머터는 재난 크기가 불평등과 비례한다는 것을 입증한 바 있다. 사회적 재난이 되지 않으려면 격차와 불평등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늦은 나이에 비록 가정 형편이 좋지 않고, 설사 실직하더라도 아이들을 낳기만 하면 차별 없이 우리 사회와 국가, 우리 시와 구·군, 나의 이웃들이 더불어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와 연대가 출산을 높이게 할 것이다. 둘째는 혁신정책의 강화이다. 수도권 반도체 학과에 국한된 인력 증설에 목을 맬 것이 아니라 비수도권 중심으로 20~30개의 혁신성장도시(K 테크노폴리스)를 만들어 세계적 발전거점으로 육성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더 좋은 전략이 된다.
셋째, 역량 중심의 사회발전이다. 현재 질 낮은 일자리임에도 가장 빨리 은퇴하는 나라에서 질 높은 일자리를 통해 가장 오래 직업에 머무는 나라로 바꿔야 한다. OECD에서 가장 두툼한 베이비부머 신중장년들을 포함하여 전 국민의 교육 및 평생직업훈련의 체제가 잘 기능하도록 재편할 필요가 있다. G10 위상의 우리나라지만 비반복 고급기술인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OECD 22위로 매우 낮은 상황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현재의 연공서열 임금 체제를 직무급으로 전환하고 과학기술 및 이공계 인력의 급여 인상 및 연구개발 역량 향상을 위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전 국민 참여에 의한 인구정책 추진이다. 임기 100일의 윤석열정부는 청와대 개방,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탈원전정책 전환 등 대부분 정책에서 국민참여 과정을 생략하여 일방적이다. 저출산 등 인구문제, 교육, 지역균형발전, 사회보장 정책 등은 가급적 정치적 이해로부터 자유롭게 국민 일반의 이익에 충실하도록 접근해야 한다. 인구 재난 시대 대응을 위해 우리 사회의 고질화한 파편적 부족주의를 넘어 연대에 기초해 온 국민이 참여하는 공동체주의가 절실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