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마이산 ‘말의 귀’,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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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천하던 두 신이 변해 산이 됐다’는 전설
남부주차장 쪽 시원한 산책로엔 벌써 가을
19세기 석탑만 수십 개 탑사 풍경 이색적
북부주차장 미로공원서 바라본 봉우리 절경

아득한 옛날 부부 신이 지상에 내려와 사람 틈에 섞여 살았다. 두 신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기로 했다. 그들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새벽을 등천 시간으로 정했다. 그런데 이른 새벽에 물을 길러 나온 동네 주민이 두 신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부부 신은 등천하지 못하고 두 개의 봉우리로 변하고 말았다. 멀리서 바라보면 말의 귀 같은 형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 신이 변해 봉우리가 된 산을 ‘마이산(馬耳山)’라고 부르게 됐다.


■탑사

통영대전고속도로의 장수IC에서 빠져나와 새만금포항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아주 평범한 산의 능선 너머로 갑자기 봉긋하게 솟은 봉우리 두 개가 보인다. 주변의 산은 모두 사이좋게 비슷한 높이로 솟아있는데, 유독 두 봉우리만 뾰족하게 튀어나와 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의 입에서는 ‘저게 무엇이기에 저기서 나오는 거지’라는 말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이곳은 전북 진안의 명물 마이산이다. 산 이름처럼 봉우리는 말의 귀처럼 보이기도 하고, 높이 쌓은 봉분처럼 보이기도 한다. 고속도로 방향에서 바라봤을 때 오른쪽은 암마이봉, 왼쪽은 수마이봉이다. 수마이봉은 작은 바위 두 개를 안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두 신이 하늘로 올라갈 때 데려가던 아이들이 변한 바위라고 한다.


전북 진안군 마령면에 있는 마이봉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다. 콘도 등 각종 휴양시설이 지어진 북부주차장과 개울을 따라 편안한 산책로가 잘 만들어진 남부주차장 방면이다. 마이봉 전경을 한눈에 담으려면 북부주차장으로 가야 한다. 마이산에서 유명한 탑사로 가려면 남부주차장으로 가는 게 편리하다. 두 길은 서로 연결돼 있어 어느 쪽으로 올라가더라도 반대쪽으로 내려갈 수 있다.

남부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길을 따라 걷는다. 등갈비 골목을 지나면 곧바로 숲길이 나타난다. 주변 나무들은 상당히 커서 잎이 무성하기 때문에 한여름에도 충분한 그늘을 드리워준다. 지금은 가을의 향기가 서서히 퍼지고 있지만 봄이면 벚꽃으로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숲길을 걷다보면 조그마한 저수지인 탑영제가 나타난다. 저수지 뒤로 두 마이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속도로에서 보던 모습은 푸른 숲이었지만 이곳에서는 큰 바위 덩어리처럼 보인다.


2~3m 높이의 돌탑이 나타난다. 앞에는 ‘돌탑체험장’이라는 간판이 세워져 있다. 돌탑으로 유명한 탑사로 올라가는 관람객이 미리 탑을 쌓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주변에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작은 돌탑은 한두 개가 아니다. 고작해야 돌 대여섯 개를 올린 게 전부이지만 탑 하나하나에는 모두의 정성과 기원이 담겨있을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탑사에서 내려오는 개울이 숲길을 따라 아래로 흘러가고 있다. 개울 옆에는 나무 데크가 만들어져 있다. 그늘이 많은데다 개울을 바로 볼 수 있어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시멘트를 발라놓은 산책로보다 훨씬 시원한 길이다. 서서히 갈색으로 변해가는 나뭇잎은 이제 세월이 가을로 바뀌었음을 일러준다.


숲길의 끝은 마이봉 아래에 자리를 잡은 탑사다. 많은 돌탑이 세워진 절이라고 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 천지탑, 오방탑, 일광탑, 월광탑, 중앙탑 등 큰 탑만 다섯 개다. 석탑을 쌓은 사람은 19세기 이갑룡 처사였다. 그는 부모를 잃은 뒤 인생무상을 느끼고 이곳에 들어와 채식을 하며 홀로 살았다. 원래는 120개의 탑이 있었지만 지금은 80개만 남았다. 탑사의 풍경은 특이하다. 탑이 주인인지 사찰 건물이 주인인지 헷갈릴 정도로 탑이 돋보이는 곳이다. 건물 사이에 탑이 있는 게 아니라 탑 사이에 건물이 드문드문 보인다. 경치가 독특한 덕분에 ‘내 딸 서영이’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같은 TV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대웅전 바로 아래에는 작은 샘이 있다. 앞에는 ‘섬진강 발원지 용궁’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다. 조선시대에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섬진강의 발원지를 마이산으로 봤다. 조선 중종 때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이긍익이 쓴 <연려실기술>과 <지리전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진안이지만 백운면 팔공산 자락의 옥녀봉 아래 데미샘이 섬진강의 발원지라고 한다.


■마이봉

남부주차장이나 탑사 쪽에서는 마이봉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없다. 좋은 사진을 건지려면 다시 차를 몰고 북부주차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남부주차장에서 15~20분 정도 거리여서 멀지 않다. 북부주차장 쪽에는 홍삼스파, 농촌테마공원, 진안역사박물관, 명인명품관, 가위박물관 등 다양한 시설이 있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릴 때에는 문을 닫았지만 이제 손님을 맞을 준비를 마쳤거나 준비를 하는 중이다.

북부주차장 바로 앞에 계단이 보인다. 미로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미로공원은 이름과는 달리 미로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냥 단순히 정원이다. 6~7월에 이곳에 가면 만개한 수국을 마음껏 즐길 수 있지만 지금은 모두 시들었다.


미로공원에서는 마이봉의 완벽한 모습을 가리는 것 없이 살펴볼 수 있다. 남부주차장과 탑사에서 바라본 마이봉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실제로 가지 않고 사진만 본다면 같은 봉우리인지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다. 두 마이봉은 나무와 풀로 푸르게 덮여 있다. 마이봉을 탑사에서 봤을 때에는 흙은 전혀 없고 완전한 바위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바라본 마이봉에는 어떻게 해서 나무와 풀이 자라고 있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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