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만 쓱 보고도 무게·신선도 척척… ‘수작업의 달인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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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 당신이 모르는 수산 아지매

명란 작업 기술자
알 고르고 성형까지 고도의 노동 필요
숙련된 여성 기술자들이 현장 작업 참여

덕화푸드의 작업자들이 명란을 분류하는 모습. 덕화푸드의 작업자들이 명란을 분류하는 모습.

명란의 고향은 일본 후쿠오카가 아닌 부산이다. 4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명란의 이러한 역사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잊혀가는 명란의 역사를 연구해 최근 한 부산 기업이 원형에 가까운 명란을 복원해 냈다. 바로 부산에 본사를 둔 덕화푸드인데, 회사는 숙련된 여성 작업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전한다. 덕화푸드에서 일하는 현장 작업자 44명 중 여성노동자는 36명에 달한다. 대부분 경력 10년이 넘은 숙련된 기술자들이다.


명란은 섬세하게 알을 고르고 막을 걷어내고 성형까지 모두 손으로 하는 고도의 수작업이 필요하다. 수산물 가공이 모두 기계화돼 있을 것이라는 일반 상식과는 조금 다르다.

먼저 3가지 등급으로 분류되는 명란을 선별해야 한다. 1차로 조미작업을 거치면 육안으로 ‘정란’ ‘전란’ ‘가무꼬’로 분류한다. 정란은 최상급 명란으로 색이 밝고 알이 상하지 못한것, 전란은 토막난 것, 가무꼬는 껍질이 단단한 것을 말한다. 색도 봐야하고 껍질도 살펴 분류해야 한다. 크기와 상태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정란은 알 그대로 조미 등을 통해 소비한다. 전란은 완전히 으깨서 앙념해서 상품화된다. 가무꼬는 단단한 식감때문에 탕 요리 등에 들어간다. 13년 동안 이곳에서 근무한 조영희(53) 씨는 “명란선별은 숙련된 노동자들만이 할 수 있다”며 “100g, 200g 등 정해진 무게로 또 나눠야 하는데 명란을 오랜기간 만져 본 사람만이 빠르고 정확하게 많은 명란을 선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알을 감싸고 있는 검은색 얇은 막을 제거하는 것도 엄청난 집중을 요한다. 조미하기 전에 먼저 명란을 세척하고 알에 까맣게 있는 막을 제거해야 한다. 껍질이 얇고 알이 작은 명란이 식감이 좋아 상급으로 꼽히는데, 막을 잘 걷어내지 못하면 터지거나 알이 상하게 된다. 조 씨는 “조금만 잘못해도 알이 터져 버리고 만다”며 “이는 즉각적으로 알의 가격과 연관된다”고 말했다.

추위도 어려움에 한몫한다. 가공되지 않은 생물을 다루다 보니 명태 알이 적합한 온도에 사람이 적응해 야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온도를 15도로 맞춰야 한다. 사시사철 이 온도에 적응해야 하고, 여름에는 공장 밖은 덥고 안은 춥다 보니 작업복을 갈아입는 데도 애를 먹는다.

명란의 선별부터 성형까지 모든 공정에 능숙하지만, 현장 작업자들이 존중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줌마’라는 호칭으로 불리다 최근에서야 회사에서 작업자들을 ‘여사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조 씨는 “이 회사의 전신 회사에 다니셨던 시어머니의 소개로 여기서 일하게 됐다. 그만큼 세대를 거쳐 수산업에 여성이 많이 종사했다. 하지만 가공공장 여성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비록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좋은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과 비교한 적도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일본여행을 다녀온 딸이 일본 명란보다 엄마가 만든 명란이 더 맛있다고 말해 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양한 명란식품이 개발되면서 회사의 인지도가 올라감에 따라, 조 씨는 이제는 당당하게 공장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린다. 그는 "단순 공장 아줌마가 아닌 명란 대중화에 작업자로서 앞장서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마트에 깔려있는 제품을 보면 자부심을 느낀다"고 전했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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