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신춘문예-단편소설] 주제넘기/이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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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노인호 기자 nogari@busan.com 삽화=노인호 기자 nogari@busan.com

정숙은 아까부터 택시기사의 퉁명스러움이 신경 쓰였다. 룸미러로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눈에서 미세한 경멸이 읽혔다. 차선을 바꿀 때는 깜박이를 틀지 않았고 핸들을 홱홱 돌려대서 정숙의 몸이 자꾸만 양쪽으로 번갈아가며 쏠렸다. 이 오밤중에 무슨 일이 있느냐는 물음에 어물쩍 넘긴 게 문제였나.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최대한 빨리 좀 가주시라’고 요청했던 게, 입 다물고 운전이나 하라는 의미처럼 들렸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그러나 정숙은 기사에게 무례하게 굴려고 했던 것도 대답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정말이지 조금도 아는 바가 없었고 또 조급한 마음이 들었을 뿐이다. 혹시나 추가로 온 연락이 있을까 싶어 정숙은 휴대폰을 꺼내들었지만 대화창은 아까와 같았다. 관리소장에게서 마지막으로 온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보았다. ‘최대한 빨리 오ㅑ주세요. 택시비는 드릴거닉가 걱정 마시고’ 오타가 두 군데나 있었다. 소장은 평소에는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었고, 그래서 그 오타가 불길하게 느껴졌다. 청소 일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오 년이 넘었고, 정숙은 별의별 일을 다 겪어봤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서 한밤중에 사람을 다급하게 부르다니. 무슨 사고라도 생긴 걸까. 자신도 모르는 새 대형 실수를 저지른 건가. 빈약한 제 상상력에 어떻게든 살을 붙여가며 골몰해보아도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고, 정숙은 괜히 초조해져서 카톡 채팅창만 수시로 들락거렸다.

관리소장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정숙은 막 잠에 들려던 참이었다. 오늘은 왠지 잠에 일찍 들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유튜브에서 본 대로 우유에 꿀을 타서 전자레인지에 삼십 초 데워 마신 게 아무래도 효과가 좀 있는 듯했다. 어느 블로그에서 읽은 조언을 따라 혈액순환에 좋다는 다리 마사지도 오 분이나 따라했다. 오전 다섯 시 반 알람이 울리기 전까지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숙면하는 것. 정숙의 바람은 그게 전부였다. 그러던 차에 전화벨 소리가 울려댔고, ‘트라비아타 소장님’이라는 글자가 뜬 화면을 보자마자 정숙은 벌떡 일어났다.

“여사님, 지금 당장 좀 와주셔야겠어요.”

늦은 시간이라 미안하다거나 잠을 깨운 건 아닌지 걱정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신속하게 요건만 전한 관리소장의 목소리는 어쩐지 격앙되어 보였다. 자세한 사정까지 통화로 설명할 여력은 없으니 일단 오기나 하라는 듯한 말투였다. 정숙은 무슨 일이냐고 눈치 없이 묻지 않았다.

오 년 동안 여러 일터를 거쳐 가며 정숙은 용역업체나 건물주, 관리소장, 아무튼 윗사람들의 공통점을 파악했다. 그들은 말 많은 직원들을 싫어했다. 입 다물고 그저 시키는 일이나 얌전하게 수행하기를 바랐다. 설령 호의와 친절이 담긴, 관심 어린 말일지라도 그랬다. 그러니 요구사항이 들어 먹힐 리는 만무했다. 정숙이 원하는 건 개인의 편의나 복지가 아니었다. 수도꼭지가 고장 났다, 온수가 안 나온다, 마포걸레 자루가 불량이다, 같은 아주 사소하고도 온당한 요구들이었다. 그들은 건성으로 네네, 대답했고 정숙은 참을성 있게 기다렸지만 한 주가 두 주가 되고, 몇 달이 넘어가도록 그대로였다. 평생 휘어진 수도꼭지로 물을 받고, 얼음장 같은 물로 걸레를 빨고, 고장 난 대걸레로 청소할 수는 없었고, 정숙은 관리소장 졸졸 따라다니며 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다. “소장님, 바쁜 거 아는데 그래도 얼른 좀 해줘요. 미화원 생각도 좀 해주셔야죠.” 심기를 거슬리게 하지 않으려 최대한 애교를 섞어가며 말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정숙을 피곤한 사람 취급했다.

트라비아타 관리소장 정도면 그래도 양반이라고 정숙은 생각했다. 떨어진 비품도 바로 채워주었고 일하며 불편한 점은 없는지 먼저 물어봤으며 꼬박꼬박 여사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주었으니까. 옮겨오기 전에 일했던 상가건물의 소장은 툭하면 정숙을 아줌마라 불렀고, 이따금은 아무렇지 않게 반말을 섞어가며 삿대질하기도 했다. 그때만 떠올리면 정숙은 자다가도 갑자기 눈이 떠졌다. 나이도 거의 아들뻘이었으면서, 싸가지 없는 놈. 잠꼬대처럼 혼잣말이 튀어나오곤 했다.

하마터면 영수증 받는 걸 깜빡할 뻔해서 정숙은 떠나려던 택시 꽁무니를 황급히 뒤쫓아 세웠다.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정숙이 넉살 좋게 웃었고 택시기사가 말없이 영수증을 뽑아 건넸다. 눈을 흘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숙은 애써 모른 체 했다. 영수증이 없다는 이유로 택시비를 지급해주지 않을지도 몰랐고 그것만큼 억울한 일이 없을 테니까. 별로 뛰지도 않았는데 콧등에 땀이 맺히고 숨이 차올랐다. 하루에 만 보 이만 보씩 우습게 걸어 다니던 때도 있었는데, 그때였다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정숙은 이 끝나지 않는 더위가, 몹쓸 체력이, 그럼에도 어떻게든 영수증을 받겠다고 헉헉대며 택시를 끝까지 따라잡은 제 스스로가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관리사무소에는 경옥 언니가 먼저 와있었다. 정숙을 발견하자 언니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정숙이 눈을 동그랗게 떠가며 무슨 일이냐는 표정을 짓자 언니는 자신도 아는 게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아, 드디어 오셨네.” 관리소장은 눈이 마주치자 기다렸다는 듯 손짓으로 정숙을 급히 불렀다.

누군가 한밤중에 배달음식 백만 원어치를 주문해 A동 계단에 테러했다고 했다.

“테러요?”

설명을 듣던 정숙이 소장의 말을 끊었다. 테러라니, 무슨 소린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음식을 주문해서는 계단에다 그걸 몽땅 뿌려댔다니까요. 지하 일 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전부 다요.”

정숙과 경옥 언니는 한꺼번에 질문을 쏟아냈다. 누가 그랬는지, 외부인의 소행인지, 혼자서 한 건지,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건지, 음식을 뿌리는 동안 아무와도 안 마주쳤는지, 어쩌다가 붙잡혔는지 하는 것들. 관리소장은 이미 너무 여러 번 설명해서 더 이상은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두 사람의 얼굴 가까이에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막았다.

“여사님들. 자세한 건 나중에, 나중에요.”

다만 소장은 범인이 누구인지만 짧게 일러주었다. A동 402호에 사는 여자라고 했다. 정숙과 경옥 언니는 동시에 눈이 동그래졌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여자는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로 이송되었다고 소장은 덧붙였다. 그러니까 이미 커다란 소동은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이후였다. 테러 현장을 빠르게 수습하고 모든 걸 이전처럼, 마치 없었던 일처럼 되돌려 놓을 것. 그게 정숙과 경옥 언니의 임무였고, 자정이 넘어 급하게 트라비아타에 호출된 이유였다.

셋은 사무실에서 나와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청소도구실은 휴게실과 합쳐진 형태로 주차장 구석 끄트머리에 마련되어 있었다. 비좁았지만 휴게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숙은 감지덕지했다. 신축건물이라서인지 심지어 쾌적하기까지 했다. 소장은 정규 근무시간이 아니니 굳이 유니폼을 입을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괜히 양념이나 국물이 옷에 튀면 어쩌느냐는 경옥 언니의 말에 정숙도 얼른 갈아입고는 앞치마에 머릿수건까지 동여맸다. 청소카트에 퇴근하기 직전 빨아 널어둔 손걸레와 세정제, 고무장갑과 빗자루, 마포걸레, 양동이를 실었다. 파란색 받이통에 봉지를 새로 갈아 씌웠고 음식물 종량제봉투도 한 움큼 챙겨들었다. 카트를 끌고서 주차장 경사를 오르려니 힘에 부쳤다. 평소에는 A동 입구 현관으로 바로 들어가면 되었는데, 혹시라도 외부인이 드나들까봐 출입문을 막아두었다고 했다. “어디서 소문이 난 건지 인터넷에 기사가 쫙 퍼졌다니까요. 에이씨, 사람 피곤해지게…….” 관리소장은 대뜸 성질을 냈다. 인터넷에 기사를 올린 기자들을 향한 건지, 402호 여자를 향한 건지, 그도 아니면 정숙을 향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입에서 욕설이 나오는 줄 알고 정숙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카트 바퀴가 보도블록에 닿을 때마다 덜덜거리는 소리가 났다. 주위가 적막하니 더욱 요란하게 들렸다. 사방을 둘러싼 높다란 건물은 몇몇 가구를 제외하고는 불이 죄 꺼져있었고, 그래서 바퀴 소리가 주민들의 잠을 깨우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매일 출근하는 곳임에도 깜깜할 때에 와보니 낮과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정숙은 낯설어서 주위를 몇 번이나 두리번거렸다. 트라비아타는 역에서 도보 오 분 거리에 떨어져있는 신도시의 신축 오피스텔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개발 중이라 입주민도 유동인구도 많지 않았고, 상가용으로 쓰이는 일 층은 유령건물처럼 비어있었다. 며칠 전 코인빨래방과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새로 생겼지만 그마저도 무인 가게였다. 오피스텔 주변엔 공사 중인 건물 골조와 크레인들로 즐비했다. 큰 장막처럼 둘러진 컨테이너 벽 너머로 건물들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갔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날림으로 짓고 있는 게 아닌가, 저러다 갑자기 와르르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들 정도였다. 정숙은 청소하는 내내 공사장 소음에 시달려야 했고, 새 건물 냄새와 페인트 냄새에 머리가 자주 아파왔다.

트라비아타로 옮긴 지 어느새 육 개월 차였지만 정숙은 이곳 풍경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집에서 차로 십 분, 마을버스로 이십 분이면 닿는 거리임에도, 갑자기 펼쳐지는 신도시는 온통 별천지였다. 정숙이 사는 동네와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세련되고 쾌적한 세계. 한때 다른 누군가가 살았던 흔적이 모두 지워진 세계. 낡고 오래되고 구질구질한 것은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 세계. 풀 한 포기조차 도시계획 아래, 정해진 자리에서만 자라나야 하는 세계. 불과 일 년 전에는 허허벌판뿐이었는데, 어느새 말쑥한 고층건물들만이 원래 그곳의 주인이었던 것마냥 천연덕스럽게 서 있었다. 자로 잰 듯 네모반듯하게 나뉜 도시의 구획도, 작은 창문들이 따개비마냥 빽빽하게 수놓인 건물 외관도, 외부인은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고안된 보안 시스템도 정숙에게는 모두 기묘하게만 느껴졌다. 그 이질감에 정숙은 자주 오한을 느꼈지만, 동시에 그 세계에 편입되고 싶다는 욕망도 함께였다. 개발되기 전 이곳에 땅이든 집이든 뭐라도 샀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까. 그러나 대출과 담보를 모두 끌어다 썼어도 무리인 건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였다. 모두 부질없는 상상이었다.

A동 앞에 경비가 외부인 출입을 막기 위해서인지 입구를 지키고 서있었다. 정숙과 경옥 언니가 그를 향해 묵례했고, 경비도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그런데 민망하리만큼 건물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외부인은커녕 주민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건물처럼. 정숙은 쥐 죽은 듯 고요한 이 풍경이 의아했다. 어쩜 한 명도 밖에 나와 보지 않을 수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인데. 제 이웃의 일인데. 자신과는 완전히 무관하다는 걸까. 알고 싶지도 않다는 걸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 엽니다.”

계단실 문고리를 잡은 관리소장의 목소리가 각오를 단단히 하라는 듯 비장해서 정숙은 침을 꼴깍 삼켰다. 문이 열리자마자 온갖 음식 냄새가 섞여서 훅 풍겨왔다. 마스크가 아무 소용이 없다며 경옥 언니가 코를 쥐어 틀어막았다. 과연, 테러라는 단어는 과장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작정하고 공들여서 음식을 뿌린 듯한 풍경이었다. 정숙은 구석구석 열과 성을 다해 음식을 뿌려댄 그 마음을 짐작할 수가 없어 잠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관리소장이 떠나자마자 경옥 언니는 대뜸 미정이 얄밉다는 말을 꺼냈다. 사람이 한 명 빠졌으니 시간이 몇 배는 더 걸리겠다는 거였다. 아무리 그래도 몇 배는 과장이 심한 것 같다며 정숙이 동조하지 않자 언니는 “걘 우리보다 어리잖아. 체력이 다르지.”라며 툴툴거렸다. 미정 씨는 C동 담당 미화직원이었고, 정숙보다 두 살이 어렸다. 첫째 딸이 마침 출산 중이라 오지 못했다고, 그러니 두 분이서 해주셔야한다는 관리소장의 말을 듣자마자 경옥 언니는 입을 댓 발 내밀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못 오는 게 당연하다는 건 나도 알지. 아는데 그래도 괘씸해. 왜 하필 오늘이냐고.” 정숙은 푸념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는 않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미정 씨가 부러울 뿐이었다. 정숙도 한때는 그려보곤 했다. 결혼 후 이런 신도시에 자리 잡고 가정을 꾸릴 딸을. 아이를 낳으면 매일 미역국을 끓여가며 산후조리를 해주고, 바쁜 딸 부부를 위해 매주 손자를 돌봐주러 가는 제 모습을. 정숙이 낙지젓이며 시래기나물이며 더덕무침 따위의 밑반찬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면, 이런 걸 뭐 하러 싸왔느냐고 타박하면서도 맛있게 먹어줄 딸과 그 가족들을. 제 노년은 그렇게 평범하고 일상적인 장면들로 이루어질 거라 믿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평범함이야말로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제게는 영영 오지 않을 일이라는 걸 정숙은 받아들인 지 오래였다.

경옥 언니는 반반씩 나누어 한 명은 위에서 내려오고, 한 명은 아래에서 올라와 5층에서 만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빨리 끝나지 않겠느냐며. 그러고는 무릎이 안 좋은 자신이 십 층에서부터 내려오겠다고 냉큼 선수를 쳤다. 정숙은 순순히 그러자고 했다. 계단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무릎에 더 무리가 간다는 이야기를 텔레비전에서 들은 기억이 났지만,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떨어져 일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먼저였다. 경옥 언니는 함께 일하면 적적하지는 않았지만 내내 붙어있기엔 힘든 사람이었다. 언니는 자신이 왕년에 얼마나 잘 나갔는지, 또 지금은 얼마나 잘살고 있는지에 대해 끝없이 늘어놓았다. 그와 동시에 타인의 사정을 캐물어가며 수집했고 제 식대로 그 사람의 생을 재단하고 평가했다. 거의 대부분이 흉이고 욕이었다. 정숙에게는 특히 딸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했다. 처음에 딸이 있다고 대답했던 것, 그리고 멀리 가 있다고 뭉뚱그려 대답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고 정숙은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랬더라면 ‘외국 사나보지?’라는 물음에 저도 모르게‘응’하고 대답할 일도 없었을 텐데. 엉겁결에 내뱉은 거짓말은 끝을 모르고 점점 커져갔다. 딸의 삶은 점점 구체적인 형태가 되어갔다. 경옥 언니가 알고 있는 딸은 파리에서 몇 년째 유학 중이었다. 부모 손 한 번 벌리지 않고 장학금을 받아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충당했으며, 대학 도서관에서 온종일 공부를 했고 저녁에는 센 강변, 몽마르트르 언덕, 혹은 샹젤리제 거리 따위를 산책했다.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에펠탑은 딸이 가장 사랑하는 파리의 모습이었다. 정숙이 가진 편협하고 미약한 지식만으로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는 그런 것뿐이었다. 왜 하필 파리였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정숙은 마침내 기억해냈다. 파티쉐가 되고 싶다며, 그리하여 프랑스로 유학을 가겠다며 방방 뛰어다니던 아주 어린 시절의 딸을.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언제까지 그 꿈을 간직하고 있었을까? 꽤 오랫동안 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뭐가 되고 싶은지는커녕 뭘 좋아하는지도 물어본 적이 없다는 걸, 정숙은 그제야 깨달았다.

경옥 언니와 헤어지고 난 뒤 정숙은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었다. 그리고는 전투를 준비하듯 비장하게 앞치마와 머릿수건을 매만지고 고무장갑을 꼈다. 왜 이런 짓을 한 걸까. 도대체 왜? 벽에 추상미술처럼 튀겨진 형형색색의 양념과 바닥에 흩어진 음식물들을 보며 정숙은 생각했다. 오싹한 기분이 들다가도 동시에 어느샌가 마음이 아파왔는데,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양가적인 감정을 들여다볼 새도 없이 당장 제 임무를 해치워야 한다는 사명감이 먼저였다. 정숙은 지하 일 층의 계단을 빠르게 훑은 뒤, 나뒹굴고 있는 플라스틱 용기와 일회용 수저, 비닐봉지부터 주워 착착 포개어 한곳에 모아두었다. 그 후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펼쳐서 음식물들을 담기 시작했다. 큰 덩어리는 집게를, 자잘하고 쉽게 흩어지는 것들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사용했다. 패대기쳐진 김치와 고깃덩어리, 뭉개진 생크림케이크, 불어터진 짜장면, 주꾸미볶음, 떡볶이, 김밥, 볶음밥과 치킨 피자가 봉투 안에 한데 모였다. 섞인 음식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남편이 떠올렸다. 오늘 밤엔 그가 뭘 먹었더라. 분명 이중 하나였을 텐데, 이상하게 조금도 기억나질 않았다. 남편은 틈만 나면 야식을 찾아댔다. 저녁이 맛없다고 시위라도 하는 건가 싶어 정숙이 신경 써서 찌개를 끓이고 고기에 생선까지 구워가며 밥상을 차려줬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듣는 척도 안 했다. 늘 다부지고 마른 체형이던 남편은 어느 순간 E.T.처럼 가는 팔다리에 배만 불룩하게 나와 있었다. 메뉴는 늘 비슷비슷했다. 닭발이나 불족발, 매운 갈비찜, 낙지볶음, 짬뽕 같은 시뻘겋고 기름진 음식들. 정숙은 매운 걸 잘 먹지 못했고 그래서 남편이 저 혼자서만 먹으려 일부러 그런 것만 고르는 게 아닐까, 의심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무슨 소리냐며 날선 대답이 돌아올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화가 많았다. 날이 갈수록 많아져갔다. 뉴스를 보면서 화를 냈고, 예능 프로그램 속 코미디언의 농담이 멍청하다며 화를 냈고, 밤에 세탁기를 돌리는 이웃에게 화를 냈고, 제 허리를 수술한 담당의사에게 화를 냈다. 정숙은 남편의 화가 종국에는 자신을 향하고 있다고 느꼈다.

오늘 정숙이 집을 나서기 전, 남편은 끝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잠들어있던 건 아니었다. 어딜 가느냐고 묻는 남편의 목소리는 잠결에 내뱉은 것치고는 지나치게 또렷했으니까. 그 또한 밤에 쉬이 잠들지 못한다는 걸 정숙은 알고 있었다. 야식을 먹고서 소화도 제대로 안 시키고 누우니 당연한 일이었다.

“관리소장한테서 와달라는 전화가 왔어. 뭔 일이 생겼는지…….”

정숙의 말에 남편은 으음, 하고 대답인지 신음인지 모를 음성을 싱겁게 내뱉었다. 그게 다였다. 걱정은커녕 급한 일이 뭔지 궁금하지도 않은 기색이었다. 정숙은 모로 누운 남편의 굽은 등과 둥글게 휜 어깨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지갑과 휴대폰을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확실히 남편은 예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너무 많이 달라졌다.

언제부터였나. 정숙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정숙이 청소 일을 시작한 직후, 그러니까 남편이 건설현장 일을 관두고 나서부터였다. 남편은 굴삭기 전복사고로 척추가 골절된 후로 몇 차례의 수술을 받았지만 끝끝내 예전의 몸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인생의 절반을 바쳐왔던 일의 마지막을 그토록 허무하게 맞이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정숙의 쥐꼬리만 한 봉급도, 그 쥐꼬리만 한 돈으로 정숙이 가장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어쩌면 남편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건 한순간에 무능해진 제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정숙은 생각했다. 그 때문에 오 년 내내 저 모양인 거라고. 남편은 정숙이 출근할 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말은커녕 수고했다는 말조차 빈말로라도 해주는 법이 없었다. 정숙은 일은 다녀와서 엉덩이를 붙일 새도 없이 남편의 밥상을 차리고 밀린 집안일을 해치웠다. 그럼에도 남편은 종일 허리를 붙잡고서 앓는 소리만 냈다.

딸을 잃었을 때에도 이러진 않았는데. 그때는 두 사람 모두 지금보다 젊었기 때문일까. 열렬히 슬퍼하고 목 놓아 울 기력이 있었기 때문일까. 그러므로 어떻게든 다른 방향으로 에너지를 돌릴 수 있던 걸까. 그 일 이후로 두 사람은 주말마다 나가서 걸었다. 올레길이며, 토지길이며, 유배길이며, 선비길……. 유래 모를 갖가지의 이름이 붙여진 전국의 길들을 찾아다니며 걸었다. 그게 유일한 유희거리인 것처럼,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처럼 걸었다. 정숙은 남편이 일을 나가지 않는 일요일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았다. 연애하던 때 이후 가장 사이가 좋았던 시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딸을 잃었다는 상실에서 파생된, 끈끈한 결속과 서로에 대한 애틋함 같은 게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남편은 몸이 아프고 노쇠했으며 예전의 다정과 총기는 사라진 지 오래다. 별것 아닌 일들에 화를 내고 매일같이 매운 음식을 먹는다. 정숙은 그런 남편을 볼 때면 제 안에서 무언가가 끓어올랐지만, 남편과 똑같이 되지 않으려 애썼다. 식탁 위에 폭력적으로 보일 정도로 가득 올라온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남편을 못 본 척하려 애썼다.

쉴 새 없이 닦다보니 얼굴에 점점 열이 올라왔다. 정숙은 쭈그렸던 몸을 잠깐 일으키고 기지개를 켰다. 벽과 바닥에 묻은 시뻘건 양념을 계속 보고 있으려니 마치 제가 다 먹은 것처럼 뱃속이 홧홧 달아올랐다. 왜인지 두통도 일었다. 식어빠진 음식 냄새를 내내 맡아서일까. 정숙은 층계참으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여전히 바람 한 점 불어오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공기가 순환되니까. 조금만 쉬자. 정숙은 잠시 창가에 몸을 기대었다. 요즘 따라 불면이 더 심해진 게 아무래도 더위 때문일 것이다. 올여름이 백 년 만의 폭염이라고 뉴스에서 그렇게들 떠들어댔으니까. 땀 때문에 목과 등이 축축해진 채로 일어나면 정숙은 거실로 나가 베란다 창을 열고 소파에 누웠다. 창문 너머로는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았지만, 엉덩이에 오래 눌려 반질반질해진 가죽이 살갗에 닿으면 얼마간은 좀 시원해졌다. 그러면 아주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소파에서 까무룩 잠이 들 때면 거의 같은 꿈을 꿨다. 초등학교도 채 입학하지 않은, 아주 어린 시절의 딸이 나오는 꿈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목욕을 하고 있었고, 딸은 건포도처럼 쪼글쪼글해진 제 손가락 끝을 유심히 관찰하더니 돌연 정숙의 눈앞에 쫙 펼쳐보였다. “엄마, 내 손이 이상해!”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이었다.


삽화=노인호 기자 nogari@busan.com 삽화=노인호 기자 nogari@busan.com

손이 왜 이렇게 된 거야? 왜? 왜? 하며 정숙에게 끝도 없이 질문을 쏟아내던 더없이 사랑스러운 얼굴. 제 어미를 세상의 전부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얼굴. 그런 딸의 얼굴을 바라볼 때면 정숙은 충만한 행복감으로 차오르는 동시에 조마조마한 기분이 되었다. 딸에게 뭐든지 해주고만 싶어서. 자라는 동안 부족한 것 하나 없이 채워주고, 살아가며 겪을 시련과 장애물을 모조리 제거해주고, 모든 질문에 알맞은 해답을 제시해주고 싶어서. 그러나 그럴 수 없으리라는 걸 너무나 잘 알았고, 덜컥 겁이 났다. 오로지 자신만을 좇는 말갛고 투명한 딸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정숙은 꿈에서 깨어났다.

삼 층 중간께 즈음 왔을 때, 누군가 갑자기 어깨를 두드려서 정숙은 하마터면 비명을 내지를 뻔했다. 아연실색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니 경비가 정숙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문을 닫고 청소하세요. 음식물 냄새가 난다는 민원이 들어와서요.”

무표정에 묘하게 명령하는 듯한 말투의 경비는 여느 때와는 사뭇 달라보였다. 피로 때문일까. 평소였다면 당직실에서 잠깐이라도 눈을 붙였을 시간일 테니까. 붉게 충혈된 경비의 두 눈을 바라보며, 정숙은 카트를 옮기느라 엘리베이터 탈 때 빼고는 문을 연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대답했다.

“그럼 이 무거운 걸 계단으로 옮기라구요?”

민원이 들어왔다는 말에 억울해져 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경비는 고개를 젓고는, 손가락으로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로 음식물 냄새가 퍼지는 것 같다고. 아, 정숙은 민망해져서 작게 탄식을 내뱉고서 얼른 창문을 닫았다. 정숙이 창문 닫는 걸 확인한 후에, 경비는 수고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정숙이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닦아놓은 계단 위로 발자국이 찍혔다. 정숙은 경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걸레질을 시작했다.

민원이라는 단어가 위압적으로 느껴졌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다다른 정숙은 저도 모르게 402호 현관 앞에서 서성였다. 문 너머의 계단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처럼 고요하고 평온했다. 정숙은 그 평온함이 도리어 무섭게 느껴졌고, 그래서 잠시 서서 기이한 풍경을 응시했다. 음식물 냄새가 복도에 퍼지고 있다는 생각도 잊은 채였다. 그때 옆 세대에서 기척이 들려왔다. 401호인지 403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쩌면 잘못 들은 것일지도 몰랐지만, 정숙은 깜짝 놀라 황급히 계단실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402호 주민이 범인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사실 정숙은 곧바로 누군가를 떠올렸다. 청소를 하며 유독 자주 마주치던 여자였다. 마주치는 게 늘 4층 엘리베이터 앞이었으니 4층 주민이겠거니, 하고 짐작했다. 청소 일을 하며 겪는 재밌는 일 중 하나는,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정숙을 그곳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이처럼 여긴다는 거였다. 이따금 불시에 마주치면, 찰나였지만 주민들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정숙이 먼저 인사하면 그제야 친절함을 되찾고 인사를 해왔다. 마치 전혀 예상치 못한 존재를 맞닥뜨린 것처럼. 청소미화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처럼. 그들이 매일 드나드는 현관과 복도와 엘리베이터가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할 수 있는 건 정숙 덕분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여자는 달랐다. 기다렸다는 듯 먼저 다가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고, 그러면 정숙도 조금 얼떨떨해져서 예에, 안녕하세요, 하고 답하는 식이었다. 하루는 에너지드링크를 건네받은 적도 있었다. 정숙이 당황한 나머지 우물쭈물하자 먼저 다가와 손에 쥐어주기까지 했다. 정숙은 여자를 만날 때마다 놀랐는데, 명랑함과 밝은 인사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여자가 젊은데도 머리가 허옇게 새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이마 위 앞머리 부분만 뭉텅이로 하얬다. 염색한 건가, 요즘 젊은 사람들은 멋 낸답시고 별별 색을 다하던데.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일부러 물들인 것 같지는 않았다. 정숙은 여자의 머리에 시선을 오래 두지 않으려 했다.

여자의 인사는 단순히 인사말임에도 어딘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뭐랄까, 백화점 안내데스크 혹은 콜센터에서 마주할 수 있을 법한 태도였다. 전문성이 느껴지는 친절함이었지만, 동시에 애써 꾸며낸 것이 아니라, 타고난 성정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해사한 미소와 말투였다. 정숙은 여자가 눈에 밟혔고, 호감이 생겼고, 그래서 제가 먼저 살갑게 대하지 않기 위해 내면의 브레이크를 단단히 잠가야 했다. 주민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건 공공연한 금기사항이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소장에게 된통 혼난 적도 있었다. “일하러 왔지 수다 떨러 왔어요? 왜 이렇게 나대요?” 죄송합니다. 정숙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엄마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귀여워 몇 개월이냐 묻고 예쁘다, 예쁘다 감탄사를 몇 번 내뱉은 게 전부였는데. 그게 부담스러웠다고, 불편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정숙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나댄다는 말.

왜 이렇게 나대냐, 존나 나댄다…… 잊고 있던 기억이 한꺼번에 떠올라, 순간 정숙의 시야가 하얗게 지워졌다가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그 말을 마주한 건 딸의 유품을 정리하다 펼친 일기장에서였다. ‘너네 엄마 존나 나댄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칠판과 책상에 대문짝만하게 적힌 낙서를 점심시간 내내 지워야 했다고도 했다. 그런 내용이 건조하고도 짤막한 문장 몇 줄로 적혀있었다. 딸이 반에서 겉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정숙이 제 나름대로 강구한 방법은 학교에 자주 찾아가는 것이었다. 담임교사와 상담을 하고, 학부모회에 들고, 거의 모든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그리하여 교사가 조금 더 신경 써줄 거라고, 반 아이들도 함부로 하지 못할 거라고, 친구도 금세 생길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나댄다는 말과 조롱뿐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던 딸의 환멸 섞인 눈빛도, 학교에 그만 좀 찾아오라며 소리 지르던 것도 정숙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일기 마지막 줄에는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 강씨, 박씨, 송씨, 양씨, 윤씨 성을 가진 나란한 이름들. 정숙은 그 이름들을 외웠다. 외우려던 게 아니었음에도 저절로 외워졌다. 주말마다 남편과 전국을 돌아다니며 걷기 시작한 건 그 이후부터였다. 수많은 길을 걷고 또 걸으며, 처음 보는 지명과 길 이름을 눈으로 읽고 읊조려가며 모조리 외웠다. 그리하여 딸의 일기장에서 보았던 이름을 잊으려 애썼다.

‘나댄다’는 말을 다시 마주한 후로 정숙은 스스로를 검열하고 단속했다. 일을 하는 동안 누구를 마주치든 오로지 인사만 건넸고 하고 싶은 말이 생겨도 입을 다물었다. 청소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버릇도 없앴다. 그러나 여자를 마주칠 때면 자연스럽게 궁금한 것들이 생겨났다. 정숙은 여자의 나이와 직업, 가족관계를 마음대로 상상했고, 어쩔 수 없이 딸이 떠오르곤 했다.

경옥 언니에게서 좀 쉬었다 하자는 연락이 왔다. 무릎이 너무 아파서 안 되겠다고. 정숙은 간장으로 보이는 양념이 그대로 남아있는 벽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것만 하면 되는데……. 하지만 정숙도 삭신이 쑤셔오기는 마찬가지였고, 이내 카트를 끌고 휴게실로 향했다. 경옥 언니는 두 다리를 소파 위에 나란히 올리고서 무릎을 주무르고 있었다.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고 두 뺨은 방금 사우나에 다녀온 것처럼 붉었다. 아마 제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 하고 정숙은 생각했다. 경옥 언니는 이것 좀 보라며, 아까 아들이 카톡으로 보내줬다면서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뉴스 기사가 떠 있었다. 소장의 말마따나 정말로 어느 지역 어느 동네인지, 심지어는‘트라비아타’라는 오피스텔 이름까지도 인터넷에 퍼진 것 같다고 언니는 약간 흥분해서 덧붙였다.

“우리 아들 말로는, 물류센터에서도 종일 이 얘기만 하고 있대.”

힘들어서인지 피로해서인지, 아무튼 언니는 평소 같지 않게 아들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늘어놓고 있었다. 경옥 언니의 아들은 도시 외곽의 물류센터에서 상하차 일을 했다. 언니는 남들의 사정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던 때와는 다르게, 정작 자신의 아들 이야기는 꺼내고 싶지 않은 티를 역력히 냈다. 아주 가끔씩 드러나는 파편적인 정보들로 지레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언니는 아들보다는 대기업에 다닌다는 조카 자랑을 더 자주 했다. 명절 때마다 부모며 조부모며 온갖 친척들에게까지 용돈이며 선물을 꼬박꼬박 챙겨준다는 조카. 참하고 유능한 데다 싹싹하기까지 해서 일등 신붓감이 따로 없다는 조카. 경옥 언니가 조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정숙은 괜히 애잔한 마음이 들곤 했다. 사실은 조카가 아닌 아들의 이야기를 저렇게 하고 싶을 텐데. 정숙이 딸 이야기를, 딸의 진짜 이야기를 한다면 언니가 저를 이런 눈으로 보게 될까. 그런 생각까지 미치고 나면, 얼마간의 죄책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눈이 침침해서 정숙은 미간을 찡그려가며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혼자 사는 20대 여성이 음식 백만 원어치를 한꺼번에 결제해 배달시켰다는 간략한 내용이었다. 평소 우울증을 앓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는 문장이 기사 말미에 짤막하게 덧붙여져 있었다. 무수히 많은 댓글이 달려있었고, 정숙은 그것들도 빠짐없이 모두 읽었다. 비난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간혹 원색적인 욕설도 섞여 있었다.

“근데 있지, 난 마음이 좀 그렇더라.”

경옥 언니가 입을 열었다. 그냥, 안됐잖아. 우울증이라는데……. 정숙은 조금 놀라 언니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 여자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고 욕을 쏟아낼 줄로만 알았는데. 경옥 언니는 고단해 보였고, 왜인지 슬퍼 보이기도 했다.

“나도야. ……이상하게 딸 생각이 나서.”

경옥 언니는 정숙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뜸 꺼낸 딸 이야기에 의문을 가지지도 않았다. 그래 그렇지, 다 알아, 전부 이해한다는 얼굴. 그게 전부였다. 그 얼굴을 보자 갑자기 정숙은 언니에게 모조리 털어놓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언젠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렇게 멀지 않은 시일에. 조만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에 대한 이야기도, 그리고 딸에 대한 이야기도.

얼마 전, 정숙은 퇴근길에 여자를 마주쳤다. 오피스텔 입구 앞에 쪼그려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는데도 정숙이 단번에 알아본 건 회백색의 앞머리 때문이었다. 그러다 여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담배를 땅에 내던지듯 버린 뒤 발로 수차례 비벼 끄기 시작했다. 불은 이미 꺼진 지 오래였는데도, 거기에 꽁초가 아닌 다른 게 있는 것처럼 여자는 땅을 자꾸만 짓뭉갰다. 저러다 신발 밑창이 아스팔트 바닥에 다 갈려버리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될 만큼 집요하고도 우악스러운 동작이었다. 여자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정숙은 자신이 지나치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자는 울고 있었다.

정숙은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고 가던 길을 다시 향했다.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왜 그랬지, 왜 못 본 척했을까. 괜찮으냐고 말이라도 걸어봤어야 했던 게 아닐까. 아니, 지나친 간섭이다. 어차피 별달리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마침내 버스정류장 근처에 당도했을 때, 정숙이 타야 할 버스가 마침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정숙은 평소와 다르게 달려가 잡지 않았다. 버스의 배차간격은 길었고, 정숙은 근처를 빙빙 배회하다 오피스텔로 되돌아갔다. 당연하게도 여자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납작해지다 못해 완전히 으스러진 담배꽁초만 남아있었다. 정숙은 형태만 남은 담배꽁초를 주워들고는, A동의 4층을 잠시 올려다보았다. 마치 여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기라도 하듯이.

정숙은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누가 감시하는 것도 아닌데, 농땡이를 치고 있는 것마냥 괜히 조마조마했다. 경옥 언니에게 먼저 가있으라고 말한 뒤 잠시 짬을 내어 나온 거였다. 카운터 뒤쪽에 나란히 진열되어 있는 담배들이 보였다. 뭐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어서 정숙은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종류가 저렇게나 많은지도 생전 처음 알았다. 젊은 여자들이 보통 뭘 많이 피우냐고 물었더니 직원이 이상하다는 듯 정숙을 쳐다보다가 몇 가지를 꺼내 내밀었다. 정숙은 그래도 여전히 모르겠어서 골몰하다가 개중 하나를 집었다. 케이스에 에펠탑이 그려져 있었다.

계산까지 하고 있으면서도 정숙은 제 행동에 확신이 서질 않았다. 어쩌겠다고 여길 들어와 담배를 사고 있는지, 도대체 어떻게 전해줄 심산인지, 그 여자가 402호 주민인지 확실하지도 않은데 이래도 괜찮을지, 만약 맞는다 하더라도 자신을 황당하게 여기지 않을지, 애당초 왜 담배를 사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는지조차도. 그냥……. 이것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고, 그렇게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여자가 정숙을 주제넘게 여기더라도, 설령 주제 넘는 행동이더라도 말이다.

실은, 사실은 담배는 핑계였다. 정숙은 그날 여자의 우는 얼굴 너머로, 담배를 들고 있던 손목 안쪽에 난 상처를 보았다. 여러 줄로 그어댄, 스스로 만든 자국. 정숙이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정숙은 딸의 양 허벅지에서 피멍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심장이 떨어지는 줄로만 알았다. 당장 딸을 불러다가 어떻게 된 거냐고 윽박지르고 몰아세웠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울면서 빌기도 했다. 그래도 딸은 묵묵부답이었다. 도대체 왜 그러냐고, 뭐가 문제냐고, 세상에 힘든 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고, 그렇게 나약해서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느냐고, 너만 힘든지 아느냐고. 언제까지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그런 말들을 쏟아내었다. 딸은 정숙의 말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듯 내내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마침내 대답했다.

“……미안해.”

정숙은 그제야 붙들고 있던 딸의 팔을 놓아주었다. 그 말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미안하다는 말. 그러나 돌이켜보면 체념이었다. 정숙은 자신이 계속해서 몰아세우지만 않았어도, 그런 말들만 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영정사진이 되리라고는 일말의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딸의 증명사진을 앞에 두고, 정숙은 그날의 대화를, 딸의 표정과 말투를 곱씹었다. 더 읽어내지 못했던, 읽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행간을 뒤늦게나마 자꾸 더듬어보았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딸의 목소리와 얼굴만이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딸의 그 얼굴은 여자의 것과 꼭 닮아 있었다고, 담배꽁초를 버린 후 세면대에서 오래도록 손을 씻으며 정숙은 생각했다. 주제넘게도.

A동으로 되돌아가며 정숙은 평소만큼 덥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건물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아직 습기가 남아있기는 했지만 비교적 선선하게까지 느껴졌다. 정말 열대야가 끝이 나기는 하는구나. 정숙은 폐 안쪽까지 공기가 들어오도록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이제 눈 깜짝할 새에 서늘한 공기가 코끝에서부터 느껴지기 시작할 것이다. 개수대에서 걸레를 빠는 게 두려워지는 계절이, 아무리 고무장갑을 끼고 일해도 손가락 끝이 나무껍질처럼 쩍쩍 갈라지는 계절이 무섭도록 빠르게 찾아올 것이다. 바로 그 무렵이 딸의 기일이기도 했다. 올해로 어느덧 십 년째였다. 십 년이라니, 십 년. 정숙은 입으로 내뱉어가며 십 년이라는 말을 반복해보았다. 몇 번을 내뱉어도 그 세월은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실감할 수 없을 것이었다. 딸의 얼굴은 해를 거듭할수록 차츰 희미해졌지만, 잊으려 해도 도무지 잊히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딸의 체념 섞인 얼굴과 목소리. 강씨, 박씨, 송씨, 양씨, 그리고 윤씨 성의 이름들. 그런 것들은 아무리 잊으려 해도 시도 때도 없이 불쑥 튀어나와 정숙을 괴롭혔다.

정숙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는 눈앞의 오피스텔을 올려다보았다.

A동 402호의 불이 켜져 있었다.

동시에 카톡 알림음이 울렸고 정숙은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경옥 언니였다.

―그 여자가 돌아왔어.

그게 어떤 신호라도 되는 듯이 정숙은 걸음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카트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402호 여자와 테러범이 정말로 동일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서 정숙이 완전히 착각하는 것일 수도, 주제넘게 구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정숙은 한 걸음씩 내딛으며 여자에게 건넬 말들을 골랐다. 카트 바퀴가 보도블록에 달달거리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오피스텔의 모두를 깨울 만큼 크고 시끄러운 소리였다. 그러나 정숙은 더 이상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모두가 깨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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