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사라진 수능 엿
수능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에는 두 가지가 있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과 칼바람이 그 하나요, 주변에서 건네는 합격 기원 선물이 다른 하나다. 수능 때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수능 한파’는 오랫동안 고유명사 행세를 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해 이런 현상은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올해도 어찌 된 일인지 가을 지나 겨울로 가는 길목인데도 날씨에 매서움이 없다. 이제, 합격 기원 선물로 수능 시즌임을 가늠하는 시대란 뜻이다.
예전에는 엿가락이나 찹쌀떡이 불티나게 팔렸더랬다. 대입 시험을 치른 4050 세대들의 기억도 여기에 붙들려 있다. 어떤 이는 가락엿을, 또 어떤 이는 갱엿을 잘라 손 글씨와 함께 주기도 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선물 받아본 적 있는 엿은 당연히 시험에 ‘찰싹’ 붙으라는 의미다. 부모들이 수험장 정문에 엿가락을 붙여놓고 합격 기도를 올리는 풍경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시험 전에 엿을 먹는 우리 문화는 꽤 오랜 역사가 있다. 조선의 임금들은 공부하기 전에 물엿을 두 숟가락 정도 먹었다고 한다. 두뇌 활동에 좋고 복통 완화, 스트레스 해소 등에 도움이 되는 의학적 효능을 이미 알았던 듯하다. 〈조선왕조실록〉의 ‘영조실록’에는 ‘과거 시험을 치르는 유생들이 저마다 엿을 하나씩 입에 물고 시험장에 들어갔다’고 기록돼 있다. ‘과거장에 엿장수들이 들어와 어지럽혔으니 감독을 소홀히 한 금란관(禁亂官)을 엄히 문책해야 한다’는 내용도 나온다.
엿은 1970년대까지도 대학 입시 선물의 ‘원톱’이었다. 1980년대부터 아이디어 상품들이 나타나더니 2000년대 들어 다양한 기능이 첨가된 선물에서부터 건강과 관련된 트렌드 상품들이 시대에 따라 유행했다.
문화도 변하고 풍속도 흐르는 법. 수능 엿은 이제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 됐고, 찹쌀떡도 유사한 처지를 면치 못한다. 대신 요즘 수험생들이 바라는 건 현금이나 모바일 상품권처럼 환금성 좋은 선물이다. 달달한 먹을거리로는 초콜릿, 마카롱, 쿠키가 대세다. 의미보다는 실용성을 중시하는 젊은이들의 가치관이 그렇다. 과한 관심은 부담이 되므로 숫제 ‘무관심’을 선물해 달라고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시절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다.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과 응원하는 사람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14일 치러지는 수능에서 수험생들이 공부한 만큼 실력을 발휘해 후회 없는 결과를 얻었으면 한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