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기장군 장안요의 신경균 도예가가 지난 14일 오후 지은 지 20년 된 사기 가마 앞에서 도자기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경현 기자 view@부산 기장군 장안사 인근에 장안요를 짓고 도자기를 빚으며 사는 도예가 신경균(50). 그가 큰일을 내고야 말았다. 게다가 "그럼 그렇지, 신경균이 그럴 줄 알았다!"는 것이 그 '일'을 접한 문화판의 대체적인 반응이 아닌가.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가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네스코(UNESCO)에서 개인전을 열기로 한 것이 실은 그 '큰일'이다. 내년 3월 31일부터 4월 4일까지 유네스코 본부의 전시실(400㎡ 규모)에서 '신경균 개인전'을 갖기로 확정되었고, 프랑스 한국문화원이 작품을 이어 받아 한 달 동안 전시할 예정인 것이다.
조선사발 재현 고 신정희 사기장 3남
APEC 정상회담장 그릇 채택되며 주목
인도 여행길 만난 영국인 첫 전시 제안
현지 전문가와 함께 한국 찾아 '자격 심사'
190개국 치열한 문화 전쟁 펼치는 현장
중국·일본 작가도 단독 전시회 못 열어
문화계 "신경균, 사고 제대로 쳤네" 반겨
유네스코 본부는 세계 190여 개국 대표부 관계자들이 모여 일하는 곳으로, 자국의 문화를 홍보하는 데 그만한 장이 없다. 그러니 각국이 전시와 공연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유치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곳이다. 보통 3년치 전시가 예약돼 있을 정도.
유네스코 한국대표부가 주최하는 신경균의 유네스코 전시는 사실 '사건' 수준이다. 도자기로 자존심을 세우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 그 누구도 유네스코에서 도자기 개인전을 연 적이 없어서다. 한국에서도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화가 몇몇이 한 차례 전시를 했을 뿐이다.
지난 14일 오후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장안요를 찾았을 때, 문밖까지 나와 맞이한 그는 하얀 전통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그 옆에 선 스무 살 아들의 옷은 온통 흙투성이다. "전통 의상을 하시는 선생님께서 고증해서 만들어 주신 거예요. 자주 입진 않지만, 멋지지 않습니까? 허허."
곧장 구들장이 깔린 차실에서 그와 마주 앉았나 싶었는데, 음식 솜씨 좋기로 소문난 부인 임계화 씨가 차와 비자강정, 곶감을 내왔다. 장안요 사람들은 가마 근처에 곶감과 굴비를 매달아 그렇게 정성을 들여 직접 만든 온갖 음식들로 손님맞이를 즐기고 있었다.
그는 내년 유네스코 전시에 도자기 50여 점을 프랑스로 공수한다. 더 나은 작품을 가져가기 위해 연일 작업에 땀을 쏟고 있었다. "저는 큰 작업을 끝내면 오지 트레킹을 즐깁니다. 재작년에 인도의 라다크에 갔다가 호수에서 우연히 만난 영국인 여성과 친해졌는데, 이분이 지나가는 말로 유네스코 전시를 제안하더라고요. 농담인 줄 알았는데, 그분이 어느 날 유네스코에서 일하는 프랑스인 전문가와 갑자기 한국을 온 겁니다." 겉으론 '친선 방문'이었으나, 사실상 '자격 검증'이었던 셈이다.
유네스코는 냉정하고 철저했다. 두 사람은 각종 자료를 철저히 조사하고 장안요와 고흥군 작업장, 작업하는 모습 등 구석구석을 일주일 동안 세밀하게 조사한 뒤 돌아갔고, 얼마 뒤 전시를 해도 좋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후 프랑스를 몇 차례 오가며 전시를 준비 중인 신경균은 "그들이 저를 정말 정확하게 파악하고 왔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며 혀를 내둘렀다.
20년 된 가마와 작업장을 두루 둘러본 뒤 다시 앉은 그가 이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힘든 여건 속에서 유네스코 전시를 강행한 건, 오로지 세계적으로 존재감이 없는 우리 전통 도예가 싸구려가 아니라는 걸 보여 주어야 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방식으로 제대로 만든 도자기를 국제 무대에 꼭 선보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시회 때 한국의 차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맥이 끊겼던 조선사발을 재현한 사기장 고 신정희 선생의 3남인 신경균은 나이 열다섯에 발물레를 차기 시작했다.
그는 도예가의 길에 물음표를 던진 적이 없었다.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20대였던 어느 겨울, 그는 출가를 꿈꾸며 문경 봉암사로 달려간 적이 있다고 한다. 도를 깨치고 싶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서암 스님은 "너는 도자기로 도를 구하는 게 낫겠다"며 그를 돌려세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