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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것들] 타투에 진심인 전직 간호사 “의료행위 족쇄 풀고 예술행위로”
‘선타투 후뚜맞’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말 그대로 ‘먼저 타투’를 하고 ‘나중에’ 부모님에게 들키면 ‘뚜’드려 ‘맞’는다는 의미입니다. 부모님에게 두드려 맞더라도, 타투를 하고야 말겠다는 MZ세대의 강한 의지를 담은 말입니다. 과거와 달리 요즘 세대에게 ‘타투’란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인데요. 탄생화, 반려견, 자녀의 이름, 격언 등을 새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타투는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강합니다. 또 유사의료행위에 속해 비의료인 타투이스트의 작업은 불법으로 여겨집니다. 이 때문에 타투는 법이 인식을 따라가지 못하는 대표적 사례로 꼽히기도 합니다.
부산에는 이런 타투의 인식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간호사 출신의 타투이스트가 있습니다. 타투강사이자 타투스타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 ‘플러리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김지우(35) 씨입니다.
그는 국제타투아티스트협회 부설 타투스터디 아카데미에서 강사로 근무하면서 첫 강의 때마다 “하루빨리 타투가 예술로 인정받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하는데요. “정부에서 발표하는 유망직종에는 항상 타투이스트가 상위권에 존재한다. 하지만 현실은 의료로 분류되어 제재하는 아이러니가 바로잡혀 즐겁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길 바란다”는 말로 수업을 시작합니다.
김 씨는 타투가 ‘의료 행위’가 아닌 ‘보건 위생조치가 반드시 필요한 예술행위’로 인정받기 위해 타투산업 합법화 추진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타투이스트 대상 위생교육과 규정을 만드는 일에도 힘쓰고 있죠. 그는 올해 초 수술실 간호사 경험을 바탕으로 타투 작업의 위생, 감염관리에 대해 알려줄 〈타투, 위생〉도 출간했습니다.
그가 이토록 타투에 진심인 이유는 ‘못다 이룬 꿈’ 때문입니다. 예술가를 꿈꿨지만, 취업 때문에 예술의 꿈을 포기해야 했는데요. 5년간 병원에서 배운 위생·피부 관련 지식과 임상경험은 그를 ‘타투’라는 새로운 예술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일정 요건만 충족하면 문신 시술 자격을 허가해 줍니다. 현행법상 타투에 관해 반드시 의료인이 행해야 한다는 법 조항도 없고 타투관련 법은 무법인 상태입니다.”
타투 인구 300만 명. 반영구 화장까지 더하면 약 1300만 명. 시장 규모는 1조 2000억 원에 이르는 하나의 산업이 된 ‘K타투’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불법’의 굴레에 갇힌 타투의 합법화는 언제쯤 가능할까요?
2022-09-29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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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것들] ‘연차 사유: 친구 생일파티 참석’ MZ세대도 너무했다고 보지만…
‘연차 사유: 친구 생일파티 참석’
만약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동료나 부하 직원이 연차사유를 위와 같이 적었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최근 온라인에서 ‘MZ세대 논란’으로 화제가 된 사연입니다. 누군가는 ‘요즘 MZ세대들은 정말 할 말 다 하는구나. 내가 꼰대인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연차사유를 적으라고 해서 사실대로 적는 건데 무슨 상관? 정당하게 쓰는 연차의 사유를 물어본 게 잘못이지. 나는 역시 꼰대가 아니었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댓글창도 중장년층으로 추측되는 이들은 전자, MZ세대로 유추되는 누리꾼들은 후자의 의견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변 MZ세대 친구들의 생각을 자세히 들어보니 조금 달랐습니다. ‘저건 예의가 없는거지, 나이가 어린 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의견이 MZ세대에서 주류를 이뤘습니다. MZ세대인 저도 ‘MZ세대면 후자처럼 생각해야 하는데, 하지만 저건 너무한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현실에서 저렇게 적는 MZ세대를 보는 건 매우 드물다는 것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MZ세대 출근시간 논란’도 등장했습니다. 업무 준비를 위해 출근시간보다 15분 일찍 출근하라는 상사의 요구에 MZ세대 직원이 ‘그럼 15분 빨리 퇴근해도 되나요’라고 맞받아친 사연이었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15분 이른 출근 요구도 물론 부당하지만, 부하직원의 말의 태도도 잘못됐다’는 지적이 다수였습니다. 하지만 MZ세대의 속내와는 다르게 ‘무례한 MZ세대’라며 온라인에서 세대 간 논쟁으로 이어졌습니다.
MZ세대론으로 대표되는 생각이 현실에서는 조금 다르게 해석되는 건 MZ세대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서 비롯됐습니다. 연차 화제의 저변에는 “‘연차사유에 생일파티’라고 적어도 아무 말 하지 마”라는 무례함과 뻔뻔함보다는 “공동체와 조직만큼이나 개인도 존중해 주세요”라는 요구가 담겼습니다. 출근시간 논란도 그렇고요. 극단적인 사례를 가져온 탓에 세대 간 갈등만 커졌습니다.
해당 논란을 접하면서 MZ세대라는 용어가 ‘버릇없음’ ‘제멋대로’ 등 편향적으로 사용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많은 MZ논란을 접할수록 MZ세대인 저는 다소 불쾌하고 도리어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는 느낌이 여기서 비롯됐나 봅니다. 이런식으로 공론화 되다 보니 세대론의 주요 기능인 세대 간 소통보다는 불통만 낳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MZ세대 논란을 갈등보다는 이해의 눈으로 바라봐 준다면 비로소 ‘MZ세대’라는 용어가 세대 간 소통의 도구로 제대로 사용되지 않을까요.
2022-09-22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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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것들] ‘심심한 사과’로 다시 불거진 문해력 논란, 더 큰 문제는 ‘태도’
초등학생 때로 기억합니다. 부모님과 뉴스를 보는데, 중년 남성이 참담한 표정으로 ‘유족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상하단 걸 직감했습니다. “왜 심심하다고 하는 거예요?” 부모님께선 ‘심심하다’라는 말에 ‘지루하다’는 뜻 외에도 ‘매우 깊다’는 뜻이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20년도 지난 추억을 꺼내든 건, ‘심심한 사과’란 말을 두고 다시금 논란이 일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20일, 웹툰 작가 사인회에 예약 오류가 생기자 주최 측이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린다’며 글을 올렸습니다. 일부 고객들은 이를 ‘심심해서 사과하는 거냐’고 받아들였습니다. 이를 두고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앞서 ‘사흘’ ‘금일’ ‘무운’ 등으로 한 차례 뭇매를 맞은 터라 이번 논란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죠.
곧장 세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습니다. 한자 교육을 받지 않아서, 책을 읽지 않아서, 유튜브에만 빠져 살아서. 갖은 분석을 덧붙였지만 결국엔 ‘요즘 애들이 무식하다’는 비난과 조롱이 주를 이뤘습니다.
젊은 세대는 ‘모를 수도 있지’라며 맞섰습니다. ‘모르는 거 정상, 아는 거 정상, 지적질 하는 거 비정상’이라며 기성세대의 지적에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배우는 기회가 됐다면 좋았을 텐데, 조롱과 뻔뻔함이 맞서면서 ‘웃픈(웃기면서 슬픈)’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문해력 논란보다 더 심각한 건 어떻게든 서로를 비난하려는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문해력은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젊은 세대의 문해력은 온라인 공간에선 두각을 드러냅니다. ‘밈(인터넷 상에서 유행하는 콘텐츠)’과 ‘드립(남을 웃기려고 하는 말)’을 해석하는 능력도 뛰어나죠. 온라인에서는 ‘1도(하나도)’ ‘댕댕이(강아지)’ ‘현타(현실자각타임)’을 비롯해서 수도 없이 많은 단어들이 생겨나고, 또 사라집니다. 온라인 공간에선 오히려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월등한 셈이죠.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않으면 갈등의 골만 깊어집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온라인이 아닌 현실이기에, 일상 어휘를 모르면 곤란한 상황이 생깁니다. ‘사흘’을 ‘4일’로 착각하거나, ‘무운을 빈다’는 좋은 뜻을 ‘운이 없길 바란다’는 나쁜 뜻으로 해석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틀리기만 해 봐라’는 식으로 눈에 불을 켤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예전처럼 두꺼운 종이 사전을 뒤지지 않아도, 스마트폰 하나면 모르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문해도 좋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2022-09-0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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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것들] “교사의 암묵적 괴롭힘도 폭력”… 극단 선택한 학생이 남긴 질문, 폭력의 재정의
“요즘은 교단에서 욕설이나 폭언 못 한다.” 아동학대 가해자로 지목된 부산의 한 여자중학교 교사는 말했다. 현장을 목격했던 A 양 동급생들은 “그것은 학대가 맞았다”고 입을 모았다. 교사와 학생들의 증언은 간극이 컸다.
A 양은 올해 2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나이는 17세. 휴대전화 속 마지막 메모에는 2년 전 중학교 재학 당시 만났던 교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이의 유서를 본 부모는 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고발장에는 2년 전 교사의 만행이 나열돼 있다. 학생들 앞에서 A 양에게 소리를 지르고, 유독 A 양의 행동과 복장을 엄격히 단속하는 일들이다. 과한 부분이 있지만 교사의 말처럼 ‘욕설이나 폭언’은 없다.
그러나 A 양은 교사의 잇따른 꾸중이 있던 그해 처음 자살 시도를 했다. 학생회장이었던 A 양은 일주일에 한 번 등교하는 위기관리대상 학생이 됐다. 2년 후 A 양은 숨졌다.
특이 사례일까. 다른 교실에도 A 양들이 있다. 지난해 12월 부산의 한 예고에서는 교사의 괴롭힘을 호소하던 B 양이 끝내 숨졌다. 부산의 한 여자고등학교에 다니던 C 양은 교사 괴롭힘 사건 이후 잠을 자지 못한다. 과호흡도 왔다. 현재는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다.
학생들은 하루 절반을 학교에서 보낸다. 이들에게 교사에게 ‘찍혔다’는 것은 교우관계와 학업에의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져오게 한다. 교권이 예전만큼 절대적이지 않다고는 하나, 여전히 학교 안에서 생활기록부를 쥔 사람도, 말을 현실화할 힘을 가진 것도 교사다. 10대에게 학교는 여태까지 경험한 사회의 절반이다. 좁은 세계에서 한 번의 실패가 가져오는 파급력은 생각보다 크다.
청소년인권단체 아수나로 부산지부 김찬 청년활동가는 “체벌은 사라졌지만 체벌의 동기도, 체벌하던 교사도 남아 있다”며 “상벌점제나 차별, 공개적 모욕 등 더 은밀한 방식으로 체벌은 수단만 달라진 채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교사 괴롭힘’과 A 양의 ‘극단 선택’ 사이 남겨진 질문이 많다. 교사의 괴롭힘은 증거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애초 A, B, C 양이 호소하는 괴롭힘의 종류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폭력을 설명하는 말은 교사가 말했듯 ‘욕설이나 폭언, 폭행’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학생들이 말하는 ‘폭력’은 다른 층위다. 교사가 A 양에게 폭력적이었던 순간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동급생들은 때리고 욕하는 장면을 말하지 않았다. 아래층까지 들리게 큰소리로 혼내고, 회의록을 던지고, A 양에게만 유독 복장 검사가 엄격하던 장면을 기억해 냈다. 그들에게 폭력은 공개적인 모욕, 차별, 위협으로 남았던 것이다.
폭력은 계속해서 모양을 바꾼다. 체벌이 있던 시기, 때리고 욕하는 것이 10대가 인지하는 폭력이었다면 체벌이 사라진 지금은 과거에 폭력으로 간주하지 않았던 암묵적인 위협과 공포까지 폭력에 포함됐다. 폭력의 개념이 계속해서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법에서는 새로운 폭력의 모양을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나 이미 교실에서 학생들은 그것을 ‘학대였다’고 재판한다.
폭력에 더 많은 이름이 붙어야 한다. 이제는 일상어로 자리 잡은 말 ‘가스라이팅’은, 존재하기 전에는 폭력으로 분류도 되지 않던 행위다. 이름 없는 폭력들은 증발해 버린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타인에 대한 폭력이 시작된다고 했다. 과거의 ‘폭력’ 개념은 지금, 여기서 이루어지는 폭력을 포괄하기에 비좁은 틀이 되어 버렸다. 욕설과 폭언, 폭행 말고도 존재하는 ‘폭력’들에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
2022-08-25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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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것들] 쉽게 오해를 만드는 사회… 청년은 어쩌다 ‘빚투족’ 됐을까
최근 집 천장에서 쿵쿵쿵 소리가 1시간이 넘도록 계속돼 경비실에 알린 적이 있다. 감정싸움이 될까 봐 대면이 아닌 제 3자를 통한다는 것이 결국 ‘악수’가 됐다. 이내 내려와 초인종을 누른 위층 어르신은 “얼굴 보고 얘기하면 될 것을 왜 소문을 내느냐, 요즘엔 이웃 간에 정도 없다”며 큰 소리로 따져 물었다. 하지만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어르신은 “내가 괜한 오해를 했다”며 멋쩍게 사과한 뒤 돌아갔다.
세대 갈등은 늘 ‘작은 오해’에서 빚어졌다. 육아·출산을 둘러싼 불화, 직장 선후배 간 임금피크제 갈등, 노인 혐오 등도 결국은 서로의 입장을 공감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물론 살아온 환경이 다른 만큼 가치관과 생각의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한다면 간극을 좁힐 여지는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상황을 제대로 대변해 오해를 풀어주는 믿음직한 중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국민 통합을 외치는 정부와 각 세대의 ‘진짜 현실’을 전하는 언론에 기대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정부와 언론은 오히려 세대 간 오해를 만들어 내는 모습이다. 정부는 지난달 청년특례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상자산 투자자 등 ‘빚투’(빚내서 투자) 손실을 보는 경우도 구제 대상에 포함했다. 이에 “코인 투기한 청년 빚을 왜 우리 세금으로 메꾸느냐” “중년이 더 살기 힘들다” 등 청년 빚 탕감 논란이 세대 간 갈등으로 번진 모습이다. 심지어 청년 안에서도 “성실히 사는 놈만 바보”라며 비난이 일었다.
사실 이번 정책은 확대 해석된 경향이 있다. 저신용 청년의 이자 감면 폭을 확대해주는 것일 뿐 원금 탕감도 없고 세금 투입도 없다. 그런데도 비난이 거세진 데는 2030 민심을 의식하듯 현 정부가 빚투를 부각하며 정치적인 접근을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현실을 좀 더 생동감 있게 표현하다 보니 발표에 투자 손실 얘기가 들어갔다”면서 “해당 표현이 도덕적 해이 논란을 촉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다수의 언론은 ‘팩트 체크’보다는 세대 간 갈등을 부각하는 데 힘썼다.
이번 사태에 대한 일련의 반응을 보면 코인·주식 투자를 하는 MZ세대를 빚투족인 것처럼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금리와 물가 상승 여파로 청년이 코인 등 월급 이외 새로운 수입원에 관심을 두는 것은 대체적인 추세다. 그러나 기성세대의 노파심처럼 무리하게 ‘한 방’을 노린다거나 과도한 빚을 내 투자하는 경우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치열한 재테크 정보전(戰)을 벌여 암호화폐, 부동산, 펀드, 적금 등을 적절히 배분하는 똑똑한 청년도 많다. 머니S가 지난해 국내 MZ세대 43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재테크 비용이 월 수익의 30% 이하인 경우가 65.1%에 달했다. 월 수익의 50% 이상은 10.2%였다.
새 정부는 청년 문제에 남다른 의지를 보여왔다. 이번 논란은 그간 2030세대 위주 정책에 대한 반감이 쌓이고 쌓이다 터져 나온 것으로도 인식된다. 어찌 됐든 세대, 계층 간 역차별은 앞으로도 중요한 사회적 화두가 될 것이다. 정책의 본래 의도가 오해 받지 않으려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오해를 이해로 바꾸는 데는 ‘진정성 있는 소통’만큼 좋은 게 없다.
2022-08-1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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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것들] ‘열어요’ ‘쉬어요’보다 ‘Open’ ‘Day off’가 익숙한 간판… “이상하지 않나요?”
저는 요즘 아침마다 빨래방으로 출근합니다. 아, 빨래방을 창업했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 아닙니다. 〈부산일보〉에서 4년째 일하고 있는 기자니까요. 회삿돈 2000만 원을 들여 차린 이곳 ‘산복빨래방‘에서 주민들에게 돈 대신 이야기를 받고 무료로 빨래해 드리고 있습니다.
최근 산복빨래방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주목받은 이유가 특이했는데요. 바로 간판 때문입니다. 빨래방 앞에는 작은 입간판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주로 나이가 많은 이곳 주민을 위해 큼직한 한글로 빨래방 영업시간과 요일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Open’ ‘Close’ ‘Day off’ 대신 ‘열어요’ ‘닫아요’ ‘쉬어요’라고 썼습니다. 이를 본 온라인 반응을 요약하자면 ‘간판에 영어를 사용하지 않고 한글로, 큰 글씨로, 알기 쉽게 적은 게 예쁘다’ ‘외국어로 뒤덮은 간판보다 훨씬 개성 있다’ 등입니다.
고마운 마음도 잠시, ‘왜 갑자기 간판에 대한 반응이 뜨거울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답은 금세 나왔습니다. 소위 인기 카페나 맛집을 갈 때면 간판이나 안내문이 영어 일색인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CAFE(카페)’ ‘GYM(체육관)’ 같이 비교적 쉬운 영어를 간판에 써 놓은 곳은 양반입니다. 메뉴판 전체가 영어 필기체로만 쓰여 있는 곳도 적잖게 봤습니다. 요새는 영어도 흔하니, 이탈리아어나 불어로만 적기도 한다네요. 수도권 어느 카페에서는 메뉴판에 미숫가루를 굳이 ‘M.S.G.R’라고 썼다가 온라인에서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간판이나 메뉴 모두 ‘안내’나 ‘정보 전달‘이 목적인데도 외국어가 많아지는 이유가 뭘까요. 아무래도 멋 때문일 겁니다. 우리 뇌는 외국어를 문자보단 그림으로 인식한다고 합니다. 쉽게 디자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가게가 자기 얼굴인 간판과 메뉴를 예쁘게 만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문제는 본래 목적을 잃고 지나치게 디자인에만 의존한 나머지, 어르신 등 특정 계층에게 장벽을 높인다는 점입니다. 현행 옥외광고물법에서는 5㎡ 이상의 간판을 외국 문자로 표시할 때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함께 적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이를 감독하거나 실질적인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없는 실정입니다.
결국 법보다는 모두의 인식이 중요하겠죠. 흘려 쓴 외국어보다도 또박또박 쓰인 한글이 더 좋다는 생각입니다. 한글로만 쓰인 산복빨래방 간판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호평을 받은 건 바람직한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서울 종로구가 멋진 한글 간판을 지원하는 것처럼 제도적 도움도 뒷받침되면 좋겠습니다. 특정 계층을 소외시키기보다 모두를 배려하는 간판이 더 ‘힙(Hip)하다’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참, 저도 이참에 ‘힙하다’는 말보다는 ‘멋지다’ ‘감각 있다’고 쓰겠습니다.
2022-08-0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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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것들] 나이도 직장도 모르고 친구 될 수 있어? 몰라서 더 친해졌어!
저는 최근 평일에 취미 모임을 나가기 시작했는데요, 이 모임에는 하나의 암묵적인 룰이 있습니다. 바로 나이와 직업을 밝히지 않는 것. 저는그런대로 MZ세대로서 트렌드를 바짝 좇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저는 ‘젊꼰’(젊은 꼰대)이 됐습니다. 자기소개 순서에서 나이를 말하려다 완곡한 제지를 당했거든요. 룰을 알게 된 순간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그럼 도대체 뭘 물어보고, 무슨 얘기를 하라는 건지’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으니까요. 저도 요즘 사람이지만, 참 ‘MZ세대’스럽게 유난이라는 생각도 잠깐 했습니다. 하지만 1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을까요. 편안해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기자 특성상 직업을 밝히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들이 생깁니다. 입사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저도 부산의 기업들이나 관공서에 아는 사람이 한두 명씩 생겼고, 친분의 가지를 타고 타고 가다 보면 불필요한 지인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지인들이 기자생활에 꽤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곤란한 상황도 생깁니다. 어떤 모임이든 이러한 불편을 감수해야 했는데, 암묵적 룰 때문에 더 편안하게 취미에 집중할 수 있더라고요.
취향·관심사 기반 소모임 활발
사생활 언급 금기 삼는 직장도
유난 떤다 싶다가도 편안해져
불필요한 질문도 함께 사라져
사람 자체 더 잘 알게 되는 경험
서로 존중하는 태도 배우기도
이름과 나이를 몰라도 이들은 꽤 친했습니다. 한 사람을 둘러싼 외적인 요소보다는, 그 사람 자체를 궁금해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었습니다. 제 옆자리에 앉았던 한 여성분은 “다른 모임에 들어갔다가 직업과 나이를 밝히는 순간 미묘한 서열이 생기고, 자연히 본인에게 부여되는 역할이 생기는 느낌을 받았는데, 여기서는 그런 게 없어서 좋다”고 말씀하기도 했어요. 이 룰 덕분인지 다른 모임에 비해 유지된 기간이 길었고, 참여자들끼리 감정이 상하거나 다투는 일도 적은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사생활’ 없는 인간관계는 직장에서도 가능합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서울에 사는 제 지인의 얘기도 들려 드릴게요. 서울의 작은 회사에 다니는데, 간부급부터 막내까지 20년도 넘게 차이가 나지만 이들은 사는 곳도 모르고 나이도 모른다고 합니다. 극단적인 예로, 집에 가는 방향이 같아 같은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쳐도 인사를 일부러 하지 않는대요. 버스에서 내릴 때 비교적 구체적인 집 위치가 노출되고 이를 상대방이 알게 되면 기분이 불쾌할까 봐 하는 배려라고 합니다.
유난스러운 문화 때문에 지인도 처음엔 여기서 어떻게 회사생활을 할지 막막했더랍니다. 하지만 나이를 안 밝히니 결혼에 대한 질문도 나오지 않고, 집을 샀느냐는 얘기도 자연스럽게 없더래요. 서로와 대화하고 알아가는 데 이러한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니, 이제는 별로 알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오히려 취향과 관심사를 기반으로 한 소모임이 활성화돼 여느 회사 못지않게 교류를 많이 한다고 하네요.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서로가 굳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또 이런 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를 배우게 됐다고요.
이를 반영하듯, ‘취향’으로만 묶인 공동체가 요즘 뜨고 있습니다. 비슷한 관심사를 매개로 ‘취향 공동체’를 만들어주는 취향 플랫폼 앱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고 합니다. 모든 모임에선 나이도 직업도 묻지 않고, 서로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를 뿐입니다.
MZ세대의 문화이지만, 사실 중장년층에서도 이러한 욕구는 있었습니다. 알고 지내던 한 50대 취재원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런 문화에 적응해 왔던 거지, 나도 종종 이런 사적인 것들로 엮이는 관계에 피로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서로에 대한 의무감을 전제로 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보다는 자유롭고 수평적이며 자신의 선택을 자유롭게 보장받고 싶은 욕구는 MZ세대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모양입니다.
입사 4년 차 기자로 명함을 건네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는 게 몸에 밴 저지만, 이런 모임의 즐거움에 대해 알아가는 중입니다.
2022-07-2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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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것들] ‘싸이 흠뻑쇼’는 어떻게 서울 vs 지방 ‘빚쟁이 논쟁’ 불렀나?
가수 싸이의 ‘흠뻑쇼’가 그 가지 많은 논쟁의 시작이었다. 싸이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공연 한 번에 식수 300t을 쓴다고 말했다. 한 배우가 트위터에 올린 “물 300t 소양강에 뿌려주면 좋겠다”는 일침은 논쟁에 불을 지폈다. 유명 논객도 등장했다. 배우의 지적은 “정의로운 나에 대한 과시”일 뿐 가뭄과 싸이 콘서트는 무관하다는 것. 접전이 팽팽해지자, 이때다 싶어 누리꾼들이 너나 없이 참아왔던 말을 풀었다. 논쟁은 커졌다.
흠뻑쇼로 시작한 논쟁은 곁가지로 빠지다가 ‘지방 대 서울’의 구도로 흘러갔다. 소양강 가뭄이 주목받자, 강원도민들은 SNS에 말라붙은 소양강 강바닥 사진과 저수지 물이 졸아들어 생활용수를 배급받고 있다는 경험담을 올렸다. 둑 터지듯 지방살이 억울함의 ‘간증’이 쏟아졌다. 이 와중에 서울사람들은 무심결에 “우리 집은 물 잘 나오는데” 말했다가 된통 얻어맞았다. 트위터 사용자 @Dunexxx는 이렇게 썼다. “서울힙스터 ***들아 서울 도시에만 처박혀 있지 말고 당장 경기도, 강원도, 경상도 시골 농촌 한 번만 둘러봐라. 가뭄 때문에 하천 다 말랐다.”
한 번 공연에 식수 300t 사용
SNS서 소양강 가뭄 빗대 논란
지방 대 서울 구도 논쟁 확대
강원도 물·부울경 전기 쓰면서
서울이 떠넘긴 빚 인식 못 해
지방살이 빈곤한 상상력 탓도
지역민들은 서울에 물을 끊어버려야 서울사람들이 정신을 차린다고 말했다. 얻어맞다 억울해진 서울사람들은 “이럴 거면 서울에서 나오는 지방교부금도 끊어 버려라”라고 발끈했다. 물론 지방교부금은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지원하는 것으로, ‘서울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다만 이 난장에서 서울은 강원도에 물을, 강원도는 서울에 돈을 빚지고 있다는 사람들의 속 생각이 수면 위로 드러난 셈이다.
그런데, 서울이 빚지고 있는 게 어디 강원도 물뿐인가. 서울은 부산·울산·경남에 전기를, 인천에는 쓰레기를 빚지고 있다. 국내 전체 원전 24기 중 8기가 부울경에 있다. 지난해 전국이 사용한 에너지 가운데 원전이 책임진 비중은 27.4%였다. 인천 서구의 쓰레기 매립지는 인천뿐 아니라 서울과 경기도의 쓰레기 폐기물을 떠안는다.
서울과 지방 간 채권채무관계는 SNS 싸움처럼 간단하지 않다. 강원도 물이 마르면 피해는 비단 강원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강물을 끌어 키우는 고랭지 배추, 무 가격이 오르면 전국 식탁에 오르는 김치 가격이 오르고, 김치 가격 상승은 전 국민의 ‘김치 가뭄’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식탁부터 전기, 매일 버리는 쓰레기까지 생각하지도 못한 일상 곳곳에서 한반도 전역은 촘촘히 연결돼 있다. 실제로 ‘원전 도시’에서 살아본 적 없고, 가뭄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 연결을 체감하지 못하고, 그 여파를 상상하지 못한다.
지방살이에 대한 빈곤한 상상력은 지역민의 존재를 자주 지운다. 고리원전 30km 안에 사는 부산과 울산 시민은 382만 명이다. 고리원전 10km 이내 거주하는 기장, 월성, 울진 주민 618명은 2014년부터 갑상선암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들은 원전의 방사능과 297명의 몸에 생긴 암세포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려고 소송에 나섰다. 부산에서 탈핵활동을 하는 박상현 활동가는 "부산은 고리원전 반경 30km 이내에 해운대구, 수영구, 부산진구 등 주도심이 몰려 있다. 부산시민들은 중앙이 지방에 전가한 비용을 떠안고 산다"며 "보관만 10만 년 해야 하는 핵연료 폐기물 처리 방법은 논의가 미뤄지기만 하다가 결국은 지방에 책임이 넘겨진다"고 말했다.
서울 '토박이'에게 지방은 주거지가 아닌 방문지다. 여행을 위해 방문만 하는 지방에서 생계로 이뤄지는 일이 서울로도 연결돼 있다는 것을 서울사람들은 잘 떠올리지 않는다. 서울사람이 보는 잠깐의 지역 풍경은 대부분 한가하기 때문이다. 또 주로 소비하는 지역은 서울, 만드는 지역은 서울 바깥이기 때문이다. 소비하는 동안에는 만드는 과정을 굳이 상상하지 않는다. 서울사람이 지방살이를 경험하지 않았다고 없는 셈 치기에는 지방에 너무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멀어진 거리만큼 연결돼 있다는 감각이 희미해진다 해도 상상력은 남겨야 한다. 부산, 강원도에서 살아본 일은 없다 해도 밥상 위에서, 켰다 끄는 에어컨에서, 내다 버리는 쓰레기에서 이것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갈 것인지는 그려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물과 돈을 서로에게서 '확' 끊어 버리겠다는 말이 쉽게 나오진 않을 것이다. 어차피 다들 서로에게 빚지며 지내는 것을 아는 이상, 누구도 떳떳한 처지는 아니다.
2022-07-14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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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것들] ‘양날의 검’ MBTI… 잘 쓰면 위로의 도구, 잘못 쓰면 차별의 잣대
몇 년 전부터 부쩍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성격유형검사)’를 묻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심리학 학부생 때 배운 용어가 전국을 넘어 세계적인 관심을 받을 줄이야. ‘반짝 유행’에 그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MBTI를 다루는 만화와 웹드라마도 등장했죠. 정치 시즌에는 출마자의 MBTI를 검사하는 콘텐츠도 나왔습니다. 요즘 인플루언서들의 Q&A 시간에 빠지지 않는 질문이 MBTI를 묻는 것이기도 하죠.
MBTI란 심리학자 카를 융의 심리유형론을 근거로, 마이어스와 브릭스가 개발해 낸 성격 유형 검사입니다. 자신이 타고난 심리적 선호 경향을 파악하는 검사죠. 4가지 지표를 제시하고, 다양한 질문으로 어느 쪽인지 묻습니다.
“넌 MBTI 뭐야?” 익숙한 질문
심리유형론 기반 16개 성격
나와 타인 알고 싶은 마음에
젊은 세대 중심으로 큰 유행
자신을 잘 이해할 기회
무작정 맹신하거나
평가 수단 악용 금물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릴 때 에너지를 얻는지, 혼자 쉴 때 에너지를 얻는지에 따라 E(외향형)와 I(내향형)로 나뉩니다. 실제 경험과 현재 상황을 중시할 때 S(감각형), 직감과 가능성 등을 중시하는 경우는 N(직관형)에 가깝다고 봅니다. 사실과 논리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는 T(사고형), 사람과의 관계와 상황에 중심을 둔다면 F(감정형)에 가깝습니다. 또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분명한 목적을 따르는 경우는 J(판단형)에 가깝고, 상황의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는 P(인식형)에 가깝다고 봅니다. 이를 조합하면 ENFP, ISTJ 등 16개 유형이 나오게 되는 거죠.
이 결과는 심리 상담을 할 때 참고 자료로 활용됩니다. A라는 사람에게는 ‘혼자 쉬는 시간’이 필요하고, 논리적이기보다 마음을 다치지 않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거죠. 이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장점을 찾고 또 보완할 점도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유형은 강점을 갖고 있습니다.
MBTI는 2년 전쯤, ‘무료 성격유형검사’ 웹사이트가 알려지면서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유행에 쉽게 질려하는 젊은 세대가 MBTI에 이토록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나와 타인을 알고 싶은 마음’이라고 분석합니다.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젊은 세대가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로 MBTI를 쓰고 있다는 거죠. 또 상대를 더 이해하고 싶어서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MBTI를 통해 위로 받는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 지인은 “어릴 때부터 낯가리는 성격을 고쳐야 하는 줄 알고, 오래도록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으로 살아왔다”면서 “내가 잘못된 게 아닌 것을 알고,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이라는 걸 알고 나니 위로받는 느낌이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MBTI를 다루는 콘텐츠에는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는 댓글들이 달리기도 하죠.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이 되기도 합니다. 나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도입된 MBTI의 본질과는 달리, 사람을 평가하고 속단하는 잣대로 쓰이기도 한다죠. 급기야 채용 시에 ‘MBTI를 적어 내라’고 요구하거나 ‘특정 MBTI는 지원할 수 없다’고 명시한 아르바이트 공고문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MBTI는 수많은 심리 검사 중 일부일 뿐입니다. 전문가들은 ‘참고 자료 정도여서 절대 맹신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16가지 유형으로 인간의 복잡한 성격을 다 설명할 수도 없고, 해당 유형이 자신과 꼭 맞아떨어지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게다가 인터넷에서 무료로 실시하는 검사는 대부분 MBTI를 흉내 낸 검사로, 신뢰도도 상당히 떨어집니다. 검사 기관에서 전문가와 함께 검사하고, 해석을 듣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은 건 인간의 본성일 겁니다. 한때 심리학도였던 기자로서 MBTI가 평가와 잣대를 위한 구별의 도구가 아닌, 자연스러운 내 모습을 찾기 위한 여정의 도구가 되길 바랍니다.
2022-07-07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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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것들] 배불러 알바 안 한다고? ‘취준준생’에겐 장시간 알바도 사치
얼마 전 우연히 읽은 기사 하나가 생각납니다. 일상회복 기대감에 부풀었던 자영업자들이 정작 아르바이트생을 구하지 못해 가게 문을 닫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습니다. 기사는 갑작스레 많아진 구인 공고, 청년인구 감소 등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현상을 분석하고 있었습니다.
“힘든 일 꺼리고 보조금 기대”
‘알바 구인난’ 기성세대 편견
인턴 경력은 기본인 취업시장
스펙 맞추려면 알바 ‘언감생심’
하지만 글을 읽어 내려가다 멈칫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힘든 일을 싫어하는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 세대) 특성이 알바 구인난의 원인이라는 뉘앙스가 글에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자 대학생들이 술을 마시고 동아리 활동을 즐기느라 일을 하지 않는 것 같다”는 한 호텔 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죠.
아니나 다를까, 댓글에는 청년을 향한 여러 부정적인 평가가 이어졌습니다. 주로 정부가 청년구직활동지원금 등의 보조금을 퍼 주기 때문에 청년이 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였죠. 그 속에는 “요즘 것들은 항상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기 때문에 배가 불렀다”는 식의 원색적인 비난도 섞여 있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청년의 이야기가 궁금해진 저는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대화를 나눈 이들은 돈은 없지만 취업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습니다. 토익 학원, 대외활동 등 대학 입학과 동시에 시작되는 ‘스펙 쌓기 마라톤’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장시간 이어지는 아르바이트를 중단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였죠. 몇 달 전 식당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취업준비생 후배는 “알바를 하면 당장의 생활비는 벌 수 있지만 취업 준비를 할 시간이 없어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든다”면서 “돈을 최대한 아껴 쓰다 돈이 떨어질 때쯤 일당을 받을 수 있는 초단기 아르바이트를 찾는 편이 낫다”고 말했습니다.
혹시 ‘취준준생’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취업준비 준비생을 일컫는 이 용어는 취업 준비에 필요한 여유자금을 모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을 뜻합니다. 과거에 비해 취업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진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생긴 씁쓸한 용어죠.
취준준생들은 일자리를 찾을 때도 자기소개서에 한 줄 덧붙일 수 있을 만한 곳을 필사적으로 찾는다고 합니다. 알바도 일종의 양극화를 겪고 있는거죠. 다른 한편으로 자기소개서에 경험을 풀어내기는 어렵지만 각종 공부를 할 수 있는 독서실 아르바이트의 경우 최저임금을 못 받더라도 엄청난 인기로 금방 마감된다고 합니다. 기업이나 정부 기관에서 일해 볼 수 있는 기회에 지원자가 많이 몰리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최근 대화를 나눈 한 대학교의 취업 상담사는 면접관들이 지원자에게 “왜 인턴을 1개밖에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종종 한다고 전해줬습니다. 인턴이 ‘금턴’이라고 불릴 정도로 귀해진 상황에서 청년들은 두 개 이상의 인턴 경력을 요구하는 면접관의 기대를 맞춰야 한다는 뜻이죠. 이 때문에 같은 기관에서 인턴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다음 인턴을 준비한다는 ‘인턴 갈아타기 모임’ 이야기도 이상하지 않게 들립니다.
살아온 경험을 모두 끄집어내 자신을 포장해야 하는 현실에서 큰 고민 없이 아르바이트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시절이란 요즘 청년들에게는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주 전 한 공기업에서 면접을 본 친구는 “내가 말하고 있는 사이 한숨을 쉰 면접관 때문에 면접장을 나오자마자 눈물이 났다”고 털어놨습니다. 서른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까지 취업 준비에만 매달려 온 그는 “‘지금까지 경력도 없이 뭐 했느냐’고 묻는 면접관의 눈초리가 따가워 아무 말도 못 했다”면서도 “그 말에 나 스스로도 공감하고 있는 내 모습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고 애써 담담한 듯 말했습니다.
청년들이 정말 배가 불러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것일까요. 배부른 청년들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2022-06-30 [1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