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공백 줄일 최소한의 대안” 불붙은 공무원 정년 연장 논의
퇴직 후 최대 5년 연금 못 받아
연금 공백 소급 적용 공무원들
노조와 함께 최근 헌법소원 제기
정부 대안 마련 약속은 하세월
노동시간 단축 논의 전제로
정년 연장 등 현실적 대안 촉구
“평생 국가의 생계 보장을 믿고 직업 공무원을 택한 건데 연금 공백이라니 배신감이 큽니다.”
1996년 부산 남구청에 행정직 공무원으로 들어와 내년 6월 퇴직을 앞둔 박지훈(59) 씨는 울분을 토로했다. 2016년 공무원연금법이 시행되면서 1996년 이후 임용된 공무원들은 2022년부터 퇴직 연도에 따라 퇴직 후 최대 5년간 연금을 지급 받지 못하게 됐다. 박 씨 역시 마찬가지다. 내년 6월 퇴직하는 그는 2027년 3월부터 공무원연금을 수령한다.
이미 수많은 공무원이 연금 없이 퇴직해 새 직장을 찾아 다니거나 소득 없이 생활한다. 지난달 30일 박 씨를 비롯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유다.
행정안전부와 대구시의 공무직 노동자 정년 연장을 계기로 연금 공백을 맞닥뜨린 공직사회가 정년 연장을 촉구하고 나섰다. 2015년 개정돼 이듬해 2016년 시행된 공무원연금법은 2010년 이전 임용자의 연금 지급 개시 연령을 기존 60세에서 65세로 단계적으로 올리는 방안을 담았다. 2010년 이전 임용자 중 일부는 60세 퇴직 이후 연금을 바로 받지 못해, 65세까지 최대 5년의 ‘소득 공백’이 발생한다. 개정된 법에 따르면 연금 개시 연령은 △2022~2023년 61세 △2024~2026년 62세 △2027~2029년 63세 △2027~2029년 64세 △2033년부터 65세로 단계적으로 늦춰진다.
연금 공백 퇴사자 행렬은 시작됐다. 공무원 노조에 따르면 2022년부터 소득 공백 상황에 놓인 퇴직자는 3579명이다. 2032년에는 10만 명 이상의 공무원이 퇴직 후 연금을 받지 못할 것으로 추정한다.
공무원노조는 지난달 30일 “공무원연금법 소급 적용은 임용 시기에 따른 자의적 차별이자 공무원의 재산권인 연금 수급권을 박탈해 생존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명백한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노조 측은 정년 연장이 아닌 연금 공백 대안 부재가 논란의 핵심으로 본다. 정부가 2015년 공무원연금법 개정 당시 공무원의 노후 소득 공백에 대한 대안 마련을 약속했지만 이후 뚜렷한 대안은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장 정부가 퇴직자의 소득 보장안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년 연장은 최소한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석현정 위원장은 “10년 가까이 정부에 약속대로 노후 소득 공백 해소 방안을 마련하라고 투쟁에 투쟁을 거듭했고, 정부는 지키지도 않는 약속을 반복하며 상황을 회피해왔다”며 “정부가 공무원 노동자의 정년 연장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시간 단축 논의를 배제한 채 이뤄지는 정년 연장은 오히려 노동환경의 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추승진 전국공무원노조 부산본부 정책부장은 “주 4일제 등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고민을 뺀 정년 연장은 오히려 노동 착취의 연장이 될 수 있다”며 “문제의 핵심은 정부가 연금 공백에 대한 대책 논의를 회피한 데 있고, 노동자가 몸을 혹사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전제로 정년 연장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 전 영역에서 정년 연장 논의도 불붙고 있다. 최근 행정안전부와 대구시가 공무직 정년을 65세까지 연장하기로 한 데 이어,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 국민연금 의무가입 상한 나이를 59세에서 64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도 내년 1분기까지 정년 연장 합의를 끌어내겠다고 밝힌 바 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