짭쪼름한 ‘밥도둑’ 비싼 이유 이제 알겠네…부산 명란공장에서 일해봤다 [기자니아]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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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란 유통 중심지 부산, 가공 기술 발전
세척·염지·선별·성형 등 많은 과정 거쳐
힘과 함께 섬세한 손기술 필요한 작업


[편집자주]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2위 항만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한국전쟁 시기 피란민들의 아픈 역사가 남아있는 산복도로까지. 부산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이내믹 한 풍경이 있는 만큼 부산에서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직업들도 많습니다. 이외에도 부산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환경에서 일하는 분들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부산일보는 이러한 분들을 '기자니아' 영상 콘텐츠에 담고 있습니다. ‘기자니아’는 ‘키자니아(어린이 직업체험 시설)’와 ‘기자’의 합성어로, 기자들이 직접 직업을 체험해 본다는 콘셉트입니다. 체험과 동시에 직업에 얽힌 부산만의 스토리를 발굴하고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의 노고를 담고자 합니다. 영상들은 '부산일보 유튜브' 채널 혹은 유튜브에 '기자니아'를 검색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10월 부산의 향토 기업 덕화푸드가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경매에서 미국산 명태알(명란)을 최고가에 낙찰받았습니다. 덕화푸드가 이날 낙찰받은 명란은 kg당 1738엔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만큼 품질도 뛰어난 것으로 꼽힙니다. 덕화푸드는 명란 최대 소비국 일본의 업체들을 제치고 2022년부터 3년 연속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명란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한국은 명란을 식재료로 사용한 역사가 400년이 넘은 ‘명란 종주국’입니다. 그중에서도 부산은 근대 이후 세계 명란 유통의 중심지로서 명란을 가공하는 기술이 가장 발달한 곳이기도 합니다. 덕화푸드도 장석준 명란 명장에 이어 장종수 대표가 2대째 명란을 가공하며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는 대표적 업체입니다. 지난 10월 부산 서구 덕화푸드 공장에서 기자가 직접 명란을 가공해 봤습니다.

오전 8시가 지나자 통근 버스를 타고 회사에 출근한 직원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위생복으로 갈아입은 뒤 작업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날 작업을 설명하는 간단한 조회와 함께 체조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랜 시간 서서 손목과 팔을 많이 쓰는 작업의 특성을 고려해 개발된 동작들이라고 합니다.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기 전 직원들이 체조를 합니다. 장시간 서서 작업하기 떄문에 무릎과 손목 등에 부상을 입지 않도록 고안됐습니다. 이정 PD luce@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기 전 직원들이 체조를 합니다. 장시간 서서 작업하기 떄문에 무릎과 손목 등에 부상을 입지 않도록 고안됐습니다. 이정 PD luce@

8시 30분,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이곳에서는 하루 평균 1t 가량 명란 제품을 생산합니다. 오전에는 명란을 소금, 조미액과 섞어 맛을 입히는 염지 작업이 이뤄집니다. 이를 위해 먼저 냉동 상태의 명란에서 포장을 제거하고 원산지별로 모으는 작업인 개포를 합니다. 명란이 담긴 종이상자를 거꾸로 들어 명란을 꺼내는 단순한 작업이지만 물을 머금은 상자가 쉽게 찢어졌고, 무거운 탓에 팔이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평소에 전완근 운동을 게을리 한 것에 대한 후회와 함께 금방 온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으로 명란을 세척하는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명란에 묻은 이물질을 제거해야 하므로 중요합니다. 사각형으로 얼린 채 뭉쳐있는 명란들을 세척액에 담가 낱개로 풀어주면서 씻는 과정에서 재료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점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기자의 손놀림은 느렸고, 작업이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기자는 얼마 못 가 세척 작업에서 손을 떼야 했고 곧바로 다음 작업에 투입됐습니다.

이번에는 세척을 마친 명란에 색과 맛을 입히는 작업입니다. 명란을 소금과 조미액이 들어 있는 원통에 붓는데, 잘못하면 바닥에 명란이 쏟아질 수 있습니다. 초반에는 실수 없이 명란을 곧잘 부었지만 결국 작업 도중 바닥에 명란 몇 개를 흘리기도 했습니다. 비싼 명란 가격을 생각하니 눈치가 보였습니다.

세척된 명란을 소금, 조미액이 담긴 원통에 붓고 있습니다. 명란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정 PD luce@ 세척된 명란을 소금, 조미액이 담긴 원통에 붓고 있습니다. 명란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정 PD luce@

꿀맛 같은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오후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기자가 투입된 현장은 선별 작업. 명란을 형태가 온전한 정란과 알껍데기가 파손되거나 없는 절란, 알이 막 생겨 미성숙한 가무꼬로 분류하고 흑막 등 붙어있는 이물질을 추가로 제거합니다. 절란은 초보자인 기자의 눈에도 금방 보였습니다. 하지만 알의 크기와 색을 살펴야 하는 가무꼬와 정란의 차이는 쉽게 구별하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얇은 흑막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자칫 명란이 터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했습니다. 또다시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고 작업은 그만큼 느렸습니다. 22년 경력의 반장님이 2통을 넘게 작업하는 동안 기자는 겨우 1통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명란을 정란, 절란(파손), 가무꼬(미성숙) 등 세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흑막 등 이물질도 제거하는데 명란이 찢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정 PD luce@ 명란을 정란, 절란(파손), 가무꼬(미성숙) 등 세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흑막 등 이물질도 제거하는데 명란이 찢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정 PD luce@

선별을 마친 뒤 성형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보기 좋은 명란이 먹기도 좋은 법. 100g 단위로 계량된 명란을 균일하게 모양을 다듬는 과정입니다. 이 작업 역시 터지기 쉬운 명란을 손으로 다뤄야 하므로 힘조절이 관건입니다. 처음에는 제각각인 모양 탓에 반장님의 한숨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심기일전 끝에 작업이 끝날 무렵에는 모양을 잘 잡혔다며 칭찬을 듣기도 했습니다.

오후 5시 30분, 손질된 제품을 상자에 담는 포장에 이어 작업장 청소를 끝으로 이날 업무를 모두 마쳤습니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고 하루 종일 긴장한 손가락과 팔은 얼얼했습니다. 바닥에 흘리고 손에서 터진 명란들도 떠올랐습니다. 사실 평소 마트에서 명란을 집어들었다가도 가벼운 지갑 사정에 선뜻 구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하루 명란에 들어가는 많은 이들의 정성과 노력을 생각하니 ‘제값’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마트에서 명란 도시 부산에서 만든 명란을 발견한다면 이날 흘린 짭짤했던 땀의 맛을 떠올릴 것 같습니다.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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