負傷으로「악바리」의 金꿈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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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 자유형 52㎏급서 銀딴 金鍾奎

레슬링 자유형 52㎏급서은메달을 획득한 金鍾奎선수(26·주택공사)는 각종 국내외 대회서 풍부한 실전 경험을 쌓은 백전노장.

이번 LA올림픽서는 무서운 투지를 불사르며 결승까지 진출했으나 뜻밖의 어깨부상으로 결승전을 포기,금메달 획득 일보직전에서 주저앉아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LA올림픽에 인생의 승부를 걸었다는 金鍾奎.

비록 은메달이지만 그가12년동안 갈구해온 올림픽메달의 꿈은 이룩했다.

1백63㎝의 자그마한 체구에 투지하나로 버텨온 그의집념이 LA서 개화된 것이다.

강원도 춘성군 신동면 거두리가 고향인 金선수가 레슬링에 입문한것은 72년 춘천 강원중2년때 부터.

그러나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한것은 춘천공고2년때였다.

고교시절에는 별로 두각을나타내지 못한 무명의 선수였으나 레슬링명문 동국대에진학하면서부터 전국대회서우승하는등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78년 방콕아시안게임에 대표로 출전,예상외의 은메달을 따내 일약 스타덤에올랐다.

일단 시등이 걸린 그의 기세는 이에서 멈추지 않았다.

81년 루마니아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와 82년 뉴델리아시안 게임서는 동메달을획득,명실상부한 정상급 선수로 인정받았다.

이같은 쾌거로 그는 79년에 체육훈장 기린장,82년에체육포장을 받았다.그러나그가 국제대회출전권을 따기 위해서는 국내 최대의라이벌 安勝文(현 동방생명)과 치열한 격전을 벌여야했다.

81년 유고 세계선수권대회서는 당시 한국체대의 安勝文에게 패배,탈락의 비운을맛봐야 했다.국제대회 보다安과의 예선전이 그에게는큰 부담이었던것.

이후 그는 더옥 기량을 연마,숙적 安의 추격을 뿌리치고 작년10월 소련세계선수권 11월 캐나다컵대회 대표로 선발됐다.

소련세계선수권대회는 한국의 불참으로 출전할 수 없었지만 캐나다컵대회서는 당담 금메달을 움켜쥐었다.

그에게는 선수생활중 처음으로 국제대회 우승이었던것이다.

그는 이번 올림픽에 대비,지난 1월부터 5백일 강훈을 쌓으면서 자신과 끈질긴싸움을 벌여야 했다.

가정을 가진 가장 선수였기에 그는 뼈를깎는 강훈을누구보다 열심히 받았다.

張鎬成감독등 코칭스탭은그의 열성에 감탄,모범생이라는 별명을 지어줄 정도였다.

그는 행여나『鍾奎는 노장이고 가정을 가진 선수이기때문에 체력이 달린다』는소리가 나올까봐 신경이 쓰였던 것.그러나 그는 훈련도중 시련도 겪었다.선수촌입촌 9일만에 아들 成龍의돌을 맞았으나 코칭스탭의외출허락을 받지못해 혼자서가슴을 치기도 했다.

그는 알려진 대로 악바리근성의 소유자.매트에 들어서면 지칠줄 모르는 투혼으로 싱대를 괴롭히는 근성을갖고 있다.이번대회 결승전도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기어이 출전 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그는 또 투지못지않게 기량도 뛰어난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정면태클및 사이드 태클옆굴리기가 주무기인 그는공격형.

경기초반부터 선제공격으로 기선을 제압하는 그의 게임은 시종 박진감이 넘친다.

아버지 金允燮씨(51)와어머니 池玉林씨(51)사이의 3남매중 첫째인 그는 서울 도봉구 공릉1동에서 부인 車敬順씨(25)와 2살난아들 成龍군울 두고 있다.

김종규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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