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의 스타] ③ 농구선수 김화순
'애들 가르치는 재미 쏠쏠해요'
1980년대 한국 여자농구를 이끌었던 '코트의 여왕' 김화순씨가 일산 올림픽스포츠센터에서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며 지도자로서 제2의 농구인생을 열고 있다.'LA올림픽의 영광을 후배들에게서 다시 보고 싶습니다.' 1980년대 한국 여자농구를 이끌었던 '코트의 여왕' 김화순(42)씨는 요즈음 제2의 농구인생을 열고 있다. 지난 1989년 은퇴 이후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가던 그는 1999년 생활체육 농구지도자로 코트에 돌아온 뒤 2002년부터는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경기감독관으로 활동하며 여자농구 부흥을 위해 힘쓰고 있다. 그는 자신의 선수생활 경험과 LA 올림픽의 환희를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단다.
김씨는 부산 최고의 농구스타였다. 서울 출신인 그는 중학 1학년이던 1975년 당시 최강 전력으로 전국대회를 휩쓸던 동주여중에 진학하기 위해 부산에 왔다.
어린 나이에 쉽지않은 결정이었지만 부모님의 든든한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유학길이었다. 1964년 동경올림픽에 국가대표 축구선수로 뛰었던 아버지 김홍복(2001년 작고)씨는 좋은 팀을 찾아 멀리 떠나는 딸을 격려해 주었단다.
왕년의 스포츠 스타였던 아버지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김씨의 형제들은 모두 운동선수가 됐다. 여동생은 실업배구 태광산업에서 뛰었던 김화미(41)씨,남동생은 프로야구 LG 트윈스에서 은퇴한 김원식(38)씨다. 지금은 김화순씨의 둘째딸 재영(12)양이 농구선수로 뛰며 '스포츠 가문'의 전통을 잇고 있다.
김씨는 부산으로 농구 유학을 온 이후 전국적인 스타로 성장했다. 동주여중과 동주여상을 전국 최강에 올려놓은 그는 고교 2학년이던 지난 1979년 국가대표에 선발된 이후 주전 포워드로 활약하며 아시아선수권대회 3차례 우승,아시아경기대회 2차례 동메달을 이끌었다.
1984년 LA 올림픽에서는 득점왕에 오르며 한국이 올림픽 구기종목에서 처음으로 은메달을 따내는데 일등 공신이 됐다. 81년부터는 실업팀인 동방생명(현 삼성생명)에서 뛰면서 팀을 리그 최강에 올려놓았고 1986~88년 3년 연속 최우수선수에 오르기도 했다.
언제나 정상의 자리에 서있었기에 89년 은퇴할 때는 미련도 없었다는 게 그의 말. 일본 실업팀에서 플레잉코치직 제의가 들어왔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은퇴 2달만에 신용훈씨(47·현 SKY KBS 부사장)와 결혼했고 단란한 가정을 꾸몄다.
그런 그가 농구계로 돌아오게 된 것은 우연한 인연 때문. 건강을 위해 일산 올림픽스포츠센터 수영장에 다니던 김씨를 한덕상 관장이 알아보고 농구클럽 지도를 부탁한 것이다. 미련없이 코트를 떠났지만 어린 학생들을 보자 거절할 수가 없었다는 김씨는 클럽팀이라 대회출전도 없고 운동량도 적지만 학생들의 기량이 나날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기 시작했단다.
가르치는 재미를 알게 되면서 미뤄왔던 학업에도 다시 뛰어들었다. 지난해 중앙대 사범대 체육교육과에 늦깎이 대학생으로 입학한 것. 공부에 미련을 갖고 있던 중 지난해 중앙대에서 국위선양자 특별전형제도가 도입됐고 김씨는 후보자 7명중 유일하게 합격해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대학 수업을 받으면서도 대한농구협회 이사,한국여성스포츠협회 농구담당 이사,대한체육회 선수자격심의위원으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그는 한국이 다시 한번 올림픽 결승에 오르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다.
그는 '현재의 대표팀은 80년대에 비해 체력이 월등히 좋아졌지만 조직력을 바탕으로한 세밀한 플레이는 오히려 줄어들었다'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대표팀을 맡아 한국 특유의 조직력으로 올림픽 금메달에 도전하고 싶다'고 바람을 밝혔다. 김종우기자
kjongwoo@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