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과 깨침의 보금자리, 종교 건축을 보다] <33> 부산 남천성당
세계 최대 스테인드글라스 '빛과 색의 향연'
옛날 교회는 일단 커야 했다. 신에 대한 열렬한 신심을 교회 건축의 높이와 부피를 통해 과시하려 했던 것이다. 특별히 크고 높은 건물이 드물었던 시절. 그러한 방식은 확실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 도심에서 하늘을 찌를 듯한 건물들은 쌔고 쌨다. 크기나 화려함으로 따져서는 교회 건축이 세속의 건축을 능가할 여지가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오른편 종탑 '천국의 열쇠'모양, 하늘 향한 인간의 마음 표현
대담한 구조 현대적 외양, 도심 교회건축 새로운 전형 보여줘
이 때문에 언제부턴가 교회 건축가들에겐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 도대체 요즘 같은 시대에 특히 도시에서 교회를 어떻게 지어야 하나? 답은 분명했다. 교회 본래의 모습과 의미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종교적 체험이 가능한 경건한 공간, 절대자를 향한 내적 충실을 기할 수 있는 건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분명한 답을 어떤 형태로 구현하느냐였다.
부산 수영구 남천1동 천주교 부산교구 남천성당은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1988년 착공해 1991년 완공, 1992년 축성식과 함께 부산교구 주교좌 성당으로 선포된 곳. 3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성당이다.
정면에서 보는 성당의 모습은 왼쪽의 측벽이 45도 사선으로 경사져 오르는 직삼각형의 형태다. 그리 웅장한 크기가 아니면서도 장엄미가 돋보인다. 전체적으로 배의 돛 모양. 항구도시 부산을 염두에 둔 것이다. 오른편 종탑은 성전 건물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데, 직삼각형 형태의 오른쪽 변과 꼭지점을 완성하고 있다. 거대한 열쇠의 모양인데, 바로 천국의 열쇠다. 천국의 열쇠를 들고 하늘로 향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그리 표현한 것이다.
그렇게 남천성당은 하늘로 치솟은 첨탑, 혹은 우아한 아치 구조가 연이어져 있는, 교회 건축이라면 전통적으로 드러나는 그런 관습적 모습을 과감히 벗어던진 외양이다. 구조에 대한 발상이 대담해서 현대적이다.
성당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사선으로 쭉쭉 뻗은 웅장한 구조물에 먼저 압도된다. 지극히 엄숙해야 하는 신의 성전임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까닭 모를 감동이 가슴에 강렬히 밀려든다. 성당 안으로 비춰지는 빛과 색의 신비로움 때문이다. 그 빛과 색은 벽이면서 동시에 천장의 역할까지 하는 왼쪽의 거대한 유리벽,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연출된다. 가로 60m, 세로 27m로 단일 규모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스테인드글라스다.
부산교구 홍보실 이동주 팀장의 설명에 따르면 성전이 완공됐을 당시에는 평범한 유리벽으로 돼 있었다고 한다. 그랬던 것을 1994년 초에 스테인드글라스로 단장하는 작업을 시작, 이듬해 완성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유리에 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후 소성 과정을 거쳐 설치됐는데, 인천가톨릭대 조형예술학부 교수로 있는 조광호 신부의 작품이다.
스테인드글라스의 그림은 비구상적이다. 신의 존재 형식인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큰 원 세 개를 중심으로 그 안에 여러 가지 작은 형상들이 그려져 있다. 원은 신의 영원성과 완벽함을 표현한다. 원의 중심부에 붉은색으로 처리된 십자가를 안고 있다. 세 원의 주변에는 어우러지는 구름의 이미지를 표현해 놓았는데, 신의 강림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단부에는 각각의 유리창에 천지창조와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를 사건별로 형상화 해 놓았다. 빛의 창조에서 성신강림과 묵시록적 징표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으로 신의 영광에 대한 인간의 지순한 찬미의 표현이다.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성당의 바닥과 벽에 비친, 빛과 색으로 장엄된 하늘의 모습은 거룩하다. 빛이 통과될 때 성당 내부에 내려앉는 푸른빛은 하늘로 상징돼 온 신의 영광, 삼위일체의 거룩한 신비, 구원의 상징인 십자가 등 전례공간의 영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 고취시킨다.
그리스도교에서 빛은 진리와 지혜, 구원과 생명인 신의 상징이요 구세주 예수 그 자체다. 남천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그러한 빛의 의미를 극대화한 것이다. 하늘로부터 오는 빛과 인간의 적극적 관계 맺음, 신성한 빛으로 충만한 천상을 현세에서 구현한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예수는 말했다. "너희 빛이 새벽 동이 트듯 터져 나오리라. 너의 빛이 어둠에 떠올라 대낮 같이 밝아 오리라."(이사야서) 하지만 예수의 그 말에는 전제가 있었다. "너희 가운데서 멍에를 치운다면, 삿대질을 그만두고 못된 말을 거둔다면,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자에게 나누어 주고 쪼들린 자의 배를 채워준다면…."
그리스도교에서 신앙은 회개(悔改·metanoia)하는 데서 시작한다. 회개는 곧 회심(悔心)이다. 마음 한번 바꿈으로써 이전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을 돌이켜 고치는 것. 회개가 있어야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을 따를 수 있을 터이다.
남천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감동에 취해 있다보면, 문득 스스로 그런 겸손한 생각이 든다. 그 또한 신의 빛에서 얻는 축복일 테다.
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본문 2:2]-----------------------------------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으로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