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페란토'로 우리 문학 세계화에 한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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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번역 출간 장정렬 거제대 교수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에스페란토로 첫 출간됐다. 시 119수, 산문 4편이 담긴 116쪽짜리 포켓판 시집이다. 3년에 걸친 지루한 번역 손품으로 완성된 에스페란토 시집은 그러나 국내보다 해외에서 그 진가를 먼저 알아차렸다.

특히 일본 애독자들은 일부러 부산을 찾아와 수 십권을 사갔고 내달 후쿠오카에서 열리는 규슈에스페란토대회에 번역자를 특별강사로 초청했다. 그 화제의 인물은 장정렬(50) 거제대 조선과 초빙교수. 한국에스페란토협회 전 교육이사 겸 부산지부 기관지인 '테라니도' 편집장이기도 하다.

"고맙지요." 그는 특유의 웃음으로 화답했다.

사실 출간도 일본 에스페란티스토(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의 제안에 의해서였다. "번역은 지난 2005년에 일찍 끝났습니다. 하지만 출판을 망설였지요. 비용이 만만찮았거든요." 이 사실을 뒤늦게 안 일본 에스페란티스토들이 책을 사줄테니 출판하자고 제안했다. 그가 특강할 후쿠오카는 시인이 일본 경찰의 고문을 이겨내지 못하고 순국한 곳이다. 지금도 시인을 추모하고 매달 그의 시를 애송하는 모임이 있다.

"윤동주를 흔히 저항시인으로만 이해하는데 그의 죽음에 따른 각인이 너무 강했던 까닭이 아닌가 싶어요. 오히려 그의 119수 시를 찬찬히 읽으면 20대의 젊은 감수성이 더 돋보입니다."

장 교수의 시 번역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3년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에스페란토로 옮겨 책으로 펴냈다. 당시 이를 본 뉴질랜드의 한 에스페란티스토는 "한국인의 사랑 표현에 감탄했다"며 호의를 보내 왔다. 지난 2007년 10월 출간한 김훈의 소설 '언니의 폐경'도 당시 서울에서 열린 세계에스페란토대회에 출품해 전 세계 에스페란티스토들의 심금을 울렸다.

에스페란토를 한글로 바꾼 역번역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5월 국내에 출간된 율리오 바기(헝가리 작가)의 소설 '초록의 마음' 등이 그랬다. 중국 근대작가인 바진의 '봄 속의 가을' 한글판은 에스페란토 번역서로는 처음으로 문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됐다.

그동안 10여 권 이상의 번역서를 냈지만 인세 수입은 거의 없다. 다른 언어와 달리 수요층이 두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번역과 출간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번역을 끝내고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 작품도 수십 편에 달한다. 크로아티아 동화인 '견습공 흘라피치의 놀라운 모험'과 '침대 아래 이야기들', 헝가리 작가인 이스트반 네메레의 소설 '열정'과 '살모사', 폴란드 오제슈코바의 여성소설 '마르타'가 그런 경우다.

에스페란토에 빠진 지 벌써 30년. "지난 1981년 부산대 기계공학과 1학년 때 처음 배웠습니다." 그는 앞으로 춘향전, 흥부전 등 고전문학을 에스페란토로 옮겨보고 싶다고 했다. 또 부산에 살고 있는 만큼 동래야류와 같은 지역 문화상품도 번역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출판비다. "출판비만 지원받을 수 있다면 번역의 손품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 에스페란토=유대계 폴란드인 안과의사 L L 자멘호프 박사에 의해 1887년 공표된 국제 보조어.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60여 국에 지부가 결성돼 있다. 사용자는 80만 명에 달한다.

백현충 기자 cho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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