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수프 넣은 국물은 감자탕이 아니무니다!"
입력 : 2012-12-06 08:04:41 수정 : 2012-12-06 15:16:39
엄궁동 '고수레'
감자탕에는 감자와 돼지 등뼈를 비롯해 여러 재료가 들어가지만 무엇보다 국물의 맛이 깊고 시원해야 한다. 사골 고듯이 오랜 시간 푹 끓여 육수를 만들어야 그런 맛이 난다. 1980년대 서울시내 도로 아스팔트에선 최루가스 매운 냄새가 진득했다. 괴로운 것은 코보다 목이었다. 뭔가 걸려 있는 듯 따끔거려 침 삼키기도 어려웠다. 거센 시위라도 마친 날이면 증세는 더 심했다. 그럴 때면 반드시 찾는 곳이 있었다. 허름한 감자탕집들. 둥근 드럼통을 이용해 만든 화로에 커다란 솥이 올려져 있고, 그 안에서는 하루 종일 감자탕이 끓고 있었다.
큼직큼직한 감자를 자르지 않고 그대로 넣어 돼지뼈와 함께 푹 곤, 뻘건, 걸죽한 탕 국물! 주욱 들이켜면 목안 점막을 괴롭히던 최루가스의 매운 기운은 말끔히 사라졌다. 말끔해진 목으로 소주가 술술 잘도 넘어갔다. 얄팍한 주머니 사정에 여럿이 둘러앉아 푸짐하게 먹기로는 감자탕만 한 것이 없었다. 실팍한 통감자는 속을 든든하게 했고, 돼지뼈 사이에 있는 둥 마는 둥 몹시도 얄밉게 붙어 있는 살점이긴 했으나 그나마 고기맛도 볼 수 있었으니까. 어쨌거나 감자탕의 옛 기억이 그렇고, 지금 몹시도 그립다.
감자가 돼지 등뼈의 이름?
감자탕 명칭 놓고 설 많지만
통 큰 감자 들어가야 제 맛
공장양념 넣고 대충 끓인 건
감히 탕이라 부를 수 없어
10시간 이상 사골 우려내
뽀얀 국물로 맛 내야 진짜
"얄팍한 수로 입맛 속이면 안 돼
망하더라도 이 방식 지켜낼 것"
■ 감자탕에 감자가 없다?
언제부턴가 들려온 엉뚱한(?) 소리. '감자탕이라는 이름에서 감자는, 식물의 감자가 아니라 돼지 등뼈의 한 부분을 일컫는다.' 어떤 이는 돼지 등뼈에 든 척수를 가리킨다고도 한다. 그래서 감자탕에 (식물)감자는 없어도 된다고 한다.
하지만 국어사전을 아무리 뒤져 봐도 돼지 뼈를 일컫는 '감자'라는 말은 없다. '감자뼈'라는 말은 더더욱 없다. 한자 조어로도 표현되지 않는다. 도축·정육 업계에서도 '감자'는 공식 용어가 아니다. 시중 정육점에서 돼지 등뼈 부위를 '감자(뼈)'라 표기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이는 감자탕 전용 등뼈임을 알리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근래에 감자탕 프랜차이즈가 유행하면서 생긴 현상이라는 설명도 있다. 어찌 됐든, 돼지 등뼈 혹은 돼지 척수 때문에 감자탕이라 이름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감자탕은 감자가 반드시 들어가야, 그것도 얄팍하게 저며 썬 것이 아니라, 씨알 굵은 놈들로 통 크게 넣어야 감자탕인 것이다. 감자가, 그것도 풍성하게 들어가지 않은 감자탕은 감자탕이 아니라 '돼지뼈다귀탕' 정도로 이름해야 할 것이다. 보통 우거지를 넣고 끓여 내니 정확하게 말하면 '돼지등뼈감자우거지탕'이라야 맞는다. 시중의 감자탕집 치고 감자탕에 감자를 조금이라도 안 넣는 집이 거의 없음은 그런 사실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유력한 전언(傳言)이 있다. 원래 감자탕의 기원이 감잣국이라는 것이다. 감자를 기름에 볶은 후 양념과 여러 재료를 넣고 소박하게 끓인 국이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특히 도시 노동자들이 하루 노고를 달래는 술추렴용으로 요구하면서 국물이 점점 진해지면서, 비싼 고기 대신 값싼 돼지뼈도 넣어 고면서…, 그렇게 탕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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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사골을 10시간 이상 고아 육수를 만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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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수에 감자탕 양념을 섞어 숙성시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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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수 만드는 데 사용되는 돼지 사골. |
■ 탕은 탕답게 끓여야!질문 하나! 국과 탕의 차이는? 국은 재료를 넣고 끓여서 단지 익혀내기만 한 국물 요리이고, 탕은 장시간 끓여, 즉 고아서 재료의 진액까지 뽑아낸 국물 요리라는 것이다. 짧은 시간 대충 끓인 것을 탕이라 불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아는 사람은 안다. 시중에 감자탕 전문점이 많지만 국물을 탕처럼 끓여 내는 집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인스턴트 라면을 생각하면 쉽다. 라면을 끓일 때 국물은 공장에서 만든 수프를 넣어 맛을 낸다. 시중 일부 감자탕 전문점에서 그렇게 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한 비밀처럼 떠돈다.
원래는 사골 국물 내듯이 뼈 등을 끓는 물에 오랜 시간 고아서 바탕 국물을 만들고 거기에 감자를 비롯해 돼지뼈, 우거지, 들깨, 깻잎, 파, 마늘 따위 양념을 넣어 다시 한 번 진하고 맵게 끓여야 제대로 탕이 된다.
하지만 일부에선 라면 수프 같은 '공장 양념'을 받아서 물에 뿌린 뒤, 감자탕 재료를 넣어 2시간 정도 끓여 낸다는 것이다. 하기야 손님들 밀려오는데 하루 종일 사골 국물을 내는 것은 어려울 터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국물에 뼈의 진액이 제대로 빠져 나올 리 없고, 감자 속속들이 등뼈 맛이 흠뻑 배어 들어 깊고 구수한 맛을 내기도 힘든 것이다. 감자탕 참맛을 보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 망한다 해도 원칙대로 만들겠다!부산 사상의 감자탕 전문점 '고수레'의 권세윤 (37) 사장. 자랑을 했다. '고수레'는 프랜차이즈가 아닌 감자탕 전문점이라서, 자기 맘대로 감자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만드는 게 까다롭고 힘들다, 그래서 수익 내기 어렵다, 그래도 고집을 부려 원칙대로 감자탕을 만든다는 이야기다. 원칙?
그는 주방으로 데려가더니 어른 두 사람이라야 안을 수 있는 커다란 솥을 보여줬다. 그 안에서 뽀얀 국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돼지 사골을 고는 중이라 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한 번 골 때 10시간 이상 끓인다 했다. 권 사장은 고는 사골 실물을 매장 입구 냉장고에 전시해 놓고 있다. 그 사골 국물로 맛을 내지 '공장 양념' 따위는 쓰지 않는다고 했다.
"얄팍한 수로 손님 입맛을 유혹하지 않겠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 설사 가게 문을 닫게 되더라도 현재 만드는 방식을 바꾸지 않을 테다. 만드는 방법으로 보자면,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자신있다"고 그는 말한다.
실제로 그가 내놓은 감자탕은 국물이 진했다. 진하게 얼큰했다. 답답하게 막혔던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뒤끝에 찜찜함은 남지 않았다. 뼈 사이 살점도 얄밉지 않게 제법 두둑했다. 아쉬운 건 감자. 통으로 두어 개 넣었으나 씨알이 잘았다. 권 사장은 앞으로 더 큰 걸 넣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재료에 따라 감자탕을 세 종류로 나누었다. 보통의 감자탕은 '한라탕', 거기에 묵은지를 더 넣어서 '백두탕', 거기에 다시 각종 버섯류를 더 넣어서 '천하탕'이라 이름을 붙였다. 2~4명이 먹을 수 있는 큰 냄비로 나오는데, 전체적으로 가격은 2만 1천∼3만 5천 원. 부산 사상구 엄궁동 688의 4. 남태평양관광호텔 맞은 편. 051-316-9293.
글·사진=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 "집에서 만들어 보세요"
손쉽게 구하는 돼지 등뼈
하룻밤 찬물에 푹 담가
핏물·냄새 완전히 빼내야감자탕용 돼지 등뼈는 시중에서 구하기 쉽다. '고수레' 권세윤 사장은 "돼지 등뼈는 어린이에겐 성장기 발육, 남성에겐 스태미나, 여성에겐 저칼로리 다이어트, 노인에겐 골다공증 예방에 좋다"며 집에서 만들 수 있는 간단한 감자탕 레시피(5인분)를 알려줬다.
·재료=돼지 등뼈 1.5㎏, 우거지 500g, 감자 4개, 대파 2단, 버섯 150g, 된장 1큰술, 국간장 2큰술, 고춧가루 2큰술, 간 마늘 1큰술, 소금 1큰술, 소주 1컵, 생강 1톨, 마늘 10톨, 들깨가루 1큰술.
·만드는 법
1. 등뼈를 찬물에 담가서 핏물을 뺀다.
2. 핏물 뺀 뼈에 생강, 소주, 마늘, 된장, 소금을 넣고 20분가량 끓인다.
3. 끓인 뼈를 찬물로 깨끗이 씻어낸다.
4. 냄비에 뼈를 넣은 뒤 뼈가 잠긴 양 1.5배 정도의 물을 붓고 끓인다.
5. 대파, 고춧가루, 된장, 소금, 국간장을 넣는다. 고운 색깔과 맛을 내려면 태양초를 사용하면 된다.
6. 간마늘과 후추, 고추양념장(다대기)을 넣는다.
7. 감자와 우거지를 넣는다.
8. 센 불에 1시간, 이후 중간 불에서 1시간 30분 정도 끓인다.
※사골 국물로 끓이면 맛이 깊다. 돼지 등뼈는 하룻밤 정도 푹 담가 핏물과 냄새를 완전히 빼내는 것이 좋다. 양념장을 만들 때 고춧가루 대신에 고추기름을 내서 쓰면 깔끔한 맛이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