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길 나의 삶] '책 읽는 의사' 구정회 은성의료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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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뭘 할지, 어떻게 살지를 알려줍니다"

구정회 은성의료재단 이사장이 좋은강안병원에 있는 이사장실에서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세상에 왔다'라는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와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1967년, 부산대 의과대학 예과 2학년생이면서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던 한 학생은 소설가 요산 김정한 선생을 만나게 된다. 학생이 '순리의 포식'이라는 단편소설을 '부산대 문학상' 소설 공모전에 출품, 당선된 직후였다. 문학상 심사위원이었던 요산은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순 우리말을 많이 사용한 점도 무척 좋았습니다. 좋은 문학인이 되어주세요."

하지만 그 뒤 학생의 문학 여정은 순탄치 못했다. 정식으로 등단하기 위해 '작가 등용문'인 신춘문예에 수차례 응모했으나 모두 낙선하고 말았다. 본과로 올라가면서 의과대학 공부도 만만치 않아졌다. 학생은 결국 문학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문학을 향한 그의 열망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소설가를 꿈꾸던 그 학생은 큰 의료재단의 이사장이 됐다.

의대 시절 학보사 기자하며
소설가의 꿈 키웠던 문학청년
8개 병원 둔 재단 이끌면서도
언제 어디서나 읽고 쓰고 기록
그렇게 쌓인 원고 산문집 발간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문학의 꿈 키워가는 분들
든든한 후원자 되고 싶어
"

구정회(66) 은성의료재단 이사장. 그는 좋은강안병원, 좋은문화병원, 좋은삼선한방병원, 좋은삼선병원, 좋은삼정병원, 좋은애인병원, 좋은연인병원, 좋은리버뷰병원 등 '좋은'이라는 이름을 앞에 붙인 8개의 병원을 둔 재단을 이끌며 누구보다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 그가 바쁜 시간을 쪼개 틈틈이 쓴 글을 모은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세상에 왔다'(산지니)라는 제목의 산문집을 최근 세상에 내놨다.

"지금도 못다 이룬 문학을 향한 열정은 제 가슴 속에 오롯이 살아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비록 문학청년 시절처럼 치열하게 작품 활동을 하지는 못했지만 의사 생활을 하면서도 펜을 놓지 못했습니다. 항상 쓰고 기록했습니다. 그렇게 점점 쌓여가는 원고를 모아 이번에 책으로 묶어낸 것입니다. 비록 순수 문학 작품은 아니지만 제 나름대로 터득한 인생철학을 진솔하게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구 이사장은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소문난 독서가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하던 날, 이사장실 책상 주변에는 새뮤얼 스마일즈의 '인격론', 조정래의 신작소설인 '정글만리' 등의 책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는 집무실과 집, 승용차 등 언제 어디서나 책을 읽는다.

"어찌보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것은 책입니다. 책에는 보물같은 지식들이 가득합니다. 저는 책 속에 나침반이 들어있는 것 같다고 종종 생각합니다. 제가 어디로 가야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좋은 책을 만나면 정말 행복합니다."

그는 은성의료재단의 직원 2천여 명에게도 독서를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책 읽는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함께 독서토론회를 갖기도 한다. 은성의료재단 산하 병원들이 도서관을 만드는 등 직원들과 환자들이 손쉽게 책을 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 것도 구 이사장의 이런 철학에 따른 것이다.

"독서와 글쓰기는 의료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인체를 다루는 의료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생각의 크기를 키워주는 책을 통해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고, 글쓰기를 통해 생각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환자와 지역사회로부터 언제나 사랑 받는 병원이 될 수 있습니다."

함안 출신인 구 이사장은 교사였던 부친이 마산상고에서 부산상고로 자리를 옮기면서 부산으로 전학, 부산중과 부산고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는 지난 1978년 자신의 이름을 단 구정회 정형외과를 개원, 이듬해에 부인이 운영하던 문화숙 산부인과와 합쳐 문화병원을 세우는 것을 시작으로 '좋은 병원 네트워크'를 촘촘하게 구축, 의료 경영인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부산지식서비스융합협회 회장, 부산권의료산업협의회 공동이사장, 유비쿼터스부산포럼 회장, 부산범죄피해자지원센터 이사장 등을 맡아 더 나은 지역 사회를 만드는 일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구 이사장은 "절박한 창작 의지와 엄청난 에너지를 요구하는 순수 문학 작품을 쓰기에는 어느덧 늦은 감이 있는 것 같아 때론 아쉽기도 하다"며 "하지만 환자들과 부대끼며 산 의사로서의 삶도 정말 보람있었기에 결코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문학 등 예술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분들을 지원하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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