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해안누리 국토대장정] ⑬ 경북 영덕해맞이공원~축산항
입력 : 2014-03-20 07:52:47 수정 : 2014-03-20 14:36:36
눈앞에 펼쳐진 장쾌한 동해, 600명 긴 행렬 봄을 걸었다
아침 햇살이 눈부신 동해바다를 옆에 끼고 해안누리 국토대장정에 나선 S&T모티브 종주단과 참가자들이 영덕해맞이공원 황금대게상 앞에서 긴 여정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코스는 영덕 블루로드 코스 중 가장 아름답다는 B코스다.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닷소리가 들렸다. 웅웅거리기도 하고, 속삭이기도 하고, 귓속을 간질이기도 하는 소리들이었다. 소리는 곰솔을 지나 빗질된 것과, 매끈한 몽돌 사이를 빠져나와 잘 다듬어진 것들도 있었다. 소리 다음엔 코끝에 바다 내음이 왔다. 짭조름하고, 비릿하고, 상큼하다. 이제 고개를 든다. 장쾌하게 펼쳐진 동해 바다가 가득하다. 코발트블루의 바다는 우주가 그려낸 명화의 한 장면이다. 이번엔 반가운 얼굴들과 손을 나눴다. 같은 길을 걷는 600여 명의 도반들과 S&T 해안누리 국토대장정 13차 영덕 해맞이공원~축산항 구간을 걷는다.
■새 식구가 생겨 기분이 좋다
황금빛 대게를 거인이 번쩍 들어올렸다. 참 실하게 생겨 삶아 먹으면 맛이 정말 좋겠다. 게는 수컷이었다. 사실성이 접목된 조형물이다. 경북 영덕군 창포리 영덕해맞이공원 입구 황금대게 상이 있는 곳에서 길을 걷는다. 대열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길다. 근래 최대 인원이 참여한 것이다.
3월이고, 봄이었다. 꽃이 피는 시기이고, 생명이 움트는 순간들이다. 가슴 한구석 묵은 오래된 것들을 털어내 버리기 좋은 날이다. 이럴 때 바닷길이 제격. 긴 행렬은 힘차게 "파이팅"을 한 뒤 블루로드로 내려선다. 파도는 거셌고, 흰 포말은 끝없이 해안의 바위를 쓰다듬는다. 아이 몸체만 한 바위가 그래서 동글동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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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길에서 파이팅을 하는 참가자들. |
'행운의 사나이'를 수소문했다. 그가 획득한 복을 조금 나눠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개인적 욕심도 있었다. S&T모티브 방산팀 기술사원 장진영(41) 씨가 그다. 장 씨는 수십 명의 경쟁자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서른다섯 번째 해안누리 국토대장정 종주단원이 되었다.
김택권 사장은 "창사 34년이 되는 해에 해안누리를 시작해 34명의 종주단원을 뽑았는데 한 해가 지날 때마다 인원을 충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 약속이 실제 이루어진 것이다.
35번째 종주단원 장 씨는 "솔직히 운이 좋았다. 종주단원이 되어 더 많은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부인 설미란(37) 씨와 아직 어린 두 아들(8세, 5세)도 아빠의 행운을 축하했단다. 매달 한 번의 주말은 국토대장정에 희생해야 하지만, 가족들의 열렬한 성원으로 장 씨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이번 해안누리길에는 오랜만에 S&T중공업 사원 200명도 대거 참가했다. 덕분에 대열이 한껏 길어졌다. 어느새 대탄항을 지났다. 해국이 싹을 틔워 봄맞이를 하고 있다. 작은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는 한결 경쾌했다.
■해변의 옹달샘에 누가 살까 |
기암과 솔숲, 푸른 바다가 반기는 풍경. |
대탄항에는 거대한 방파제용 테트라포드가 제작돼 바다 투입을 기다리고 있었다. 막상 육지에 보관된 테트라포드를 보니 그 모양과 크기가 대단했다. 세 개의 발은 어느 쪽으로 바닥에 닿더라도 모양이 같다. 온전하게 파도나 조류를 다 막는 것이 아니라 흘려줄 건 흘려주면서 파도나 조류의 세기를 완화시킨다. 과학 기술에 담긴 지혜다.
중공업 유니폼을 입은 늙수그레한 사원 두 명이 추억을 이야기 한다. "이 길을 내가 만들었어." "정말? 진짜 맞아?" 옆 사람이 반문을 한다. "응. 30년 전 이곳 해안초소에서 근무하면서 만들었지. 이 길이 다 초병들 동선이었어." 추억에 잠긴 중년 사내들의 대화를 듣다 보니 지금도 곳곳에 시멘트 초소를 비롯해 초병의 흔적이 보이는 듯했다.
오보교를 지나면 노물마을이다. 그물을 정리하는 아낙을 만났다. 따사로운 풍경이라 사진을 찍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이 오셨나?" 그물 손질을 하던 아주머니가 물었다. 아주머니는 해안누리꾼들이 부산에서 왔다는 말을 듣고 무척 반가워했다. 그도 부산 광안동에서 왔단다. 김옥자 씨는 영덕 노물마을이 친정이자 고향. 동생이 바다 일을 하는데 도와주러 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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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 집게가 등대를 감싼 조형물. |
노물마을에서 석리마을로 가는 해안길을 또 걷는다. 해녀상이 있다. 해산물이 풍부한 이곳 해안마을에 유독 해녀들이 많았단다. 물질을 마치고 바다로 나오는 해녀상이 우뚝 서 있다. 그런데 그 인근 해안 절벽 아래 작은 옹달샘이 있다. 아마 해녀들이 물질을 마친 후 몸을 씻는 곳이리라.
옹달샘에는 신기한 생명들이 자라고 있었다. 꼬리치레도롱뇽이었다. 알은 부화가 임박했는지 한껏 부풀어 있었고, 어미 도롱뇽들은 부지런히 수면에 올라와 숨을 쉬며 물속에서 알을 지키고 있었다. 대부분의 계곡물은 바다로 흘러 들어가지만, 해녀들이 돌을 쌓아 만든 옹달샘 덕분에 생명이 잉태될 수 있었다. 참 고마운 인연이다.
■강풍주의보도 문제가 아니다
작은 어항인 석리마을로 가는 길은 해안길에 나지막하게 덱을 만들어 놓았다. 바람이 불자 소금기 가득 밴 짠 파도가 얼굴을 살짝 덮쳤다. 대게 원조마을인 경정마을에는 관광버스가 빼곡히 들어섰다. 오고 가는 사람들로 화장실도, 해안누리길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선두를 앞서 보낸 본대는 한참 동안 관광객들에게 길을 양보하느라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끝없이 밀려드는 사람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해안누리 종주단이 길을 통째 양보하기로 했다.
꼭 1년 만에 중공업에 다니는 아빠(천재홍 씨)와 온 현욱(창원 내동초 4학년) 군은 대열이 멈추자 솔방울을 주워 바다로 힘껏 던지며 무료함을 달랬다.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아뇨. 괜찮아요. 재밌어요" 하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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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교를 지나는 종주단. 황경욱 씨 제공 |
경정마을의 끝머리에서 도로로 올라섰다. 대열의 속도가 한결 빨라졌다. 염장삼거리를 지나 축산천변을 따라가니 커다란 밥차가 3대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에 먹은 600명분의 도시락은 자정부터 준비했단다. 종주단원들의 허기를 달래 줄 따뜻한 시락국이 가마솥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사람이 워낙 많아 대열이 길게 늘어서자 S&T그룹 최평규 회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시장한 식구들에게 밥을 빨리 드시게 하는 게 최선입니다. 왜 이렇게 줄이 길어요!"
임원들이 후다닥 나서서 배식 속도를 높였다. 최 회장은 강풍주의보가 내린 축산천 하구에 마련된 노천 식사자리에서 빈잔이 자꾸 날아가자 "막걸리를 가득 채워주세요. 속이 차야 바람을 이깁니다"라고 말했다. 덕분에 모두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강가의 메마른 갈대는 3월인데도 꼿꼿했다. 곧 새순을 올릴 것이다. 참, 알 수 없고, 또 아름다운 게 자연이다.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