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교회를 기억하십니까
1987년 연세대 시위 중 최루탄을 맞고 사망한 고 이한열 열사 추모식에서 발언하는 고 최성묵 목사. 산지니 제공당시 전도사로 있던 김형기가 아이디어를 처음 냈다. 당국 감시와 탄압이 심해 공개 강연이나 모임이 어렵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협동조합이란 형태는 '공개적, 합법적이며, 도덕적이고 온건'한 조직체로 문화운동과 시민운동을 한 그릇에 담을 수 있었다. 뒤이어 최준영 김희욱 등이 가세했고 드디어 1977년 말 부산양서협동조합(이하 양협)이 만들어졌다.
양협은 이내 독재의 부당함을 일깨우고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통로가 됐다. 재야인사나 지식인 강연도 들을 수 있었다. 2년 만에 회원만 600여 명으로 늘었고 대학생 시민 주부에 고교생까지 가입할 정도였다. 그렇게 양협 운동은 부산 민주화운동이 확산되는 구심점이 돼 갔고, 이후 참여 인사들은 부마항쟁을 비롯한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
최성묵 목사 '평전' 발간
70·80년대 민주화운동 대부
양서조합 정신적 지주 역할
이 양협 운동이 싹 트고 퍼져 나간 곳이 바로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의 중부교회였다. 또 그 중부교회가 부산의 명동성당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부산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평가되는 고 최성묵 목사가 정신적 지주로 버티고 있어서다.
최 목사의 삶을 집중 조명한 '최성묵 평전'(산지니)이 나왔다. 최 목사가 타계한 지 20주기가 지나고 2년을 더 넘기고 난 후다.
십자가를 지고 민중과 민주주의에 헌신한 최 목사의 삶을 통해 '실천하는 종교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자 기록이다. 부산에서는 민주화 인사들의 삶을 조명하는 저술이 많지 않은 풍토여서 뒤늦은 감이 있지만 그 의미는 적지 않다. 평전은 차성환 부산민주공원 전 관장이 5년에 걸쳐 종교인과 재야 지도자, 가족 등 최 목사 주변 인물 30여 명의 증언과 자료를 모으고 정리해 펴냈다. 차 전 관장은 "'6월 항쟁' 주역의 한 명, 기독교 단체인 KNCC 설립 주도 등 민주화 운동은 물론 다양한 사회사업을 펼친 목사님의 삶이 타계 후에는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해 평전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평전에는 현대사의 모순과 질곡의 한가운데를 지나온 최 목사의 생애가 고스란히 담겼다. 10대 때인 1930년대부터 신사 참배를 거부한 저항 교회 목사였던 부친과 함께 산에서 숨어 살고, 한국전쟁 때는 학도병으로 빨치산에 붙잡혀 총살형에 처해졌다 살아남기도 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남은 생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맹세하며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삶을 조망한다. 그런 종교인의 자세가 굳건했기에 연고도 없는 부산에 내려와 부산의 민주화 운동을 이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생은 나그네처럼 살아야 한다." 늘 주변에 했다는 말 그대로 최 목사 스스로 청빈의 삶을 살았다. 저자는 "주머닛돈은 언제라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줘 버렸다. 그 때문에 목사님은 물론이고 사모님과 가족도 고생했지만 전혀 내색을 안 했다. 민주화운동에 몸 담은 사실뿐 아니라 삶 자체도 모범이 되는 종교인이었다"고 평가했다.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