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 학교에서는…] '노란 테이블'을 펼친 순간 묻어뒀던 마음과 마주하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지난 13일 부산 해운대구 재송여중 3학년 학생들이 '노란 테이블' 토론수업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느낀 감정과 다짐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상균 교사 제공

지난해 4월 16일, 인천을 떠나 제주도로 향하던 배 세월호가 침몰했다. 희생자 295명 중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이 246명, 교사가 9명이었다. 학생 4명과 교사 2명은 아직도 찬 바다에 있다. 대한민국 모두가 아팠으나, 또래를 잃은 학교의 상처는 유독 깊었다. 그로부터 1년, 세월호를 기억하고, 변화를 약속하기 위해 '노란 테이블'을 펼치자고 제안하는 교사들이 있다.

■노란 테이블이란

'노란 테이블'은 세월호와 사회 안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만든 토론 캠페인이다. 지난해 7월 시민단체 희망제작소가 토론 도구 박스를 개발, 제작해 '노란 테이블'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보급했다. 도구 박스는 토론의 장을 만드는 노란색 테이블보와 '감정' '발견' '상상' '과제'라는 단계별로 참가자들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카드, 그리고 각자의 요구와 실천을 적는 손자보로 구성됐다.

세월호 토론 도구 박스 노란 테이블
시민단체 '희망제작소' 지난해 제작

참사 1주기 부산 전교조 등서 운영
일부 교사 학생들과 토론 수업 진행

사고 당시 불신·분노 직접 대면하고
함께 이야기하며 상처 치유 효과

5명 이상이면 누구나 활용 가능

참가자들은 단계별 카드를 사용해 세월호 참사에 대해 각자가 느끼는 감정을 나누고, 4·16 이전과 다른 사회를 상상하고 발견하며,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할 수 있는 과제를 찾는다. 마지막으로 각자의 요구와 약속을 쓰고 참가자들과 공유한다.

전국의 시민사회단체와 학교에서 활용되던 '노란 테이블'이 세월호 1주기를 맞아 부산에도 도착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부산지부가 지난 9일 교사 39명을 모아 '먼저 노란 테이블'을 운영했다. 교사들은 참사 이후 교사로서 느꼈던 분노, 무기력, 감당하기 힘들어 회피하고 싶던 마음을 꺼내어 마주 보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무한 경쟁을 하며 사는 삶의 문제점과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들을 나누었다. 토론에 참가한 김은주 교사는 "교사들이 참사 직후에는 눈물을 쏟았다면, 이제는 가슴속 상처를 나누고 달라진 사회를 상상하면서 담담해진 마음으로 '눈물 이후'를 생각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전교조 부산지부 사무실에서 각자 쓴 다짐 손자보를 들어보이고 있는 '먼저 노란 테이블' 참가 교사들(위)과 재송여중의 한 학생이 '노란 테이블' 토론에서 쓴 요구와 다짐. 전교조 부산지부·이상균 교사 제공
■학생들과 펼쳤더니

뜻있는 교사들은 '노란 테이블'을 학생들과 나눠보기로 했다. 마침 부산시교육청은 지난 13~17일을 세월호 추모 기간으로 정하고, 자율적으로 관련 교육을 실시하도록 했다. 재송여중 이상균 교사는 지난 13일, 3학년 학급을 대상으로 노란 테이블보를 펼쳤다. 토론의 첫 단계인 '감정'을 털어놓는 데 45분 수업의 대부분이 지나갔다. 학생들은 각자 쓴 요구와 약속을 교실 뒤 게시판에 붙였다.

이 수업에 참가한 김지현 양은 모둠일기에 이렇게 썼다. '몇몇 사람들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그런 말이 들리면 내 심장을 겨냥해 쏘는 것 같다. 소중한 가족,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내 곁에서 사라져 버리면 어떨까?' 김 양은 '내가 이 시점에서 유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항상 마음에 새겨 두고 잊지 말 것,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올바르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남겼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

1년이 지났지만 학생들은 세월호를 잊지 않았다. 부산 A여고 역사 교사는 매년 3월 '나의 역사 써 보기' 수업을 진행한다. 지난달 이 수업에서 학생 열 명 중 여덟아홉이 내 역사의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로 세월호를 꼽았다. 노란 리본을 달고 새 학년 학생을 만난 B중학교 교사는 "처음에 '아직도 달고 있어요?' 하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저도 리본 하나 주세요'라고들 한다"고 말했다. 재송여중 이상균 교사는 "아이들이 1년이 지난 지금도 언니 오빠 또래를 잃은 충격과 어른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생생하게 갖고 있어 놀랐다"고 말했다.

전교조는 '노란 테이블'의 취지에 대해 "교사와 학생의 트라우마를 그냥 묻어둘 것이 아니라 직접 대면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근본적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주순희심리상담센터 주순희 센터장은 "1년이 지난 지금, 청소년들이 세월호를 이야기하고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사회와 맺고 있는 관계를 회복하고, 보다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란 테이블'은 가족이나 지역 사회 소모임 등에서 누구나 응용해 볼 수 있다. '노란 테이블'을 개발한 희망제작소 관계자는 "마지막 약속 단계에서 '내가 당장 뭘 할 수 있을까' 머뭇거릴 수 있는데, 작은 것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내용을 직접 적어 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혜규 기자 edu@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