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칠불사 아자방
지리산은 깊다. 깊어서 가야사의 마지막과 처음 얘기까지 품었다. 산청 구형왕릉은 가야 마지막 왕의 무덤이고, 하동 칠불사는 가야 시조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깨달은 곳이다. 왕자들이 외삼촌 장유 화상을 따라 3년을 수도하고 칠불사로 옮겨온 지 또 2년, 때는 서기 103년 팔월 보름날이었다. 그날 밤 장유 화상이 달빛과 바람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노라, 고 즉흥시를 읊었다. 첫 번째 왕자가 이를 받았다. "푸른 하늘 삼경, 밝은 달이 심지를 비추네." 다음 왕자는 땅 위에 그냥 동그란 원을 그린 다음에 지워 버렸다고 한다. 나머지 왕자들은 아무 말 없이 염화시중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장유 화상이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쳤고, 왕자들은 박수를 쳤다고 한다. 일곱 왕자가 칠불(七佛)이 되는 순간을 전하는 설화인데 사실인지 알 수 없으나 그 순간의 생기와 온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칠불사가 온기를 더욱 더한 건 10세기 신라 '구들 도사' 담공 선사가 전무후무하게 만든 아자방(亞字房) 때문이다. 방의 네 귀퉁이와 가장자리에 높이 70㎝의 좌선대를 놓았는데 방에 희한하게 '버금 아(亞)' 자가 그려진 모양새였다. '내가 부처에 버금가는 도를 닦겠다'는 선언 같은 글자였다. 좌선대에서는 몇 십 명이 면벽 참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서산 대사, 초의 선사가 참선을 했다. 아자방의 진짜 신비는 불을 한 번 때면 100일간 방과 벽이 따뜻하다는 것이다. 동안거 3개월간 방 온기가 유지되는 것처럼 깨칠 거라는 선승의 각오도 야물게 유지되지 싶다.
하동군이 아자방 구들 보수공사를 하면서 100일 온기의 비밀을 푸는 유력한 단서를 발견했다고 한다. 아궁이 바닥 1m 아래에 신기하게도, 도자기를 굽는 가마 형태의 아궁이가 추가로 발견된 것이다. 체계적인 조사를 한다지만 현재로선 '아궁이 속의 아궁이'가 아자방 1천 년 비밀을 간직하게 한 열쇠가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다. 아자방 건물은 조선시대와 한국전쟁 때 몇 차례 소실돼 중창했으나 아궁이만은 1천 년 동안 한번도 고친 적이 없다.
따뜻한 아랫목이 무척이나 그리운 시절이다. 아자방 아궁이를 보니 사람과 세상을 따뜻이 데울 우리 저마다의 아궁이가 필요할 것 같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아궁이 속에 더 깊은 아궁이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학림 논설위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