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에 담은 아미동 비석마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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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동 비석마을을 다룬 이영아 작가의 그림책 <할아버지 집에는 귀신이 산다>의 한 장면. 꿈교출판사 제공

"우리도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부산 서구 아미동 산19번지. 일제강점기 일본인 공동묘지가 있던 곳. '망자들의 안식처'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산 자의 터전'이 된다. 일본인 후손들은 조상 묘를 남겨둔 채 본토로 돌아가야 했고, 전국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이 무덤 위에 하나둘 집을 지으며 마을이 생겨났다. 비석과 상석은 계단과 기둥, 가족묘의 경계석은 그대로 집 벽이 되어 든든한 보금자리 역할을 했다.

창작공동체A 지역 기획물
11권 중 이영아 작가 첫 결실

공동묘지가 삶의 공간
일본인 귀신과 피란민 할배
따뜻한 우정으로 풀어내

한일 양국의 '실향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 아미동 '비석마을'. 최근 이에 대한 이야기가 그림책으로 출간됐다. <할아버지 집에는 귀신이 산다>는 지역에서 동화와 그림 작가로 활동해온 부산 토박이 이영아(사진) 씨가 쓰고 그린 첫 창작 그림책이다.

책에는 열다섯 살 때 황해도 연백에서 피란 왔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할아버지와 조선시대 대마도에서 부산(초량왜관)으로 건너와 두부 장사를 하다 병이 나 공동묘지에 묻힌 일본인 귀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자신의 무덤 비석을 찾아달라는 귀신과 부탁을 내치려는 할아버지. 하지만 서로의 사연을 알게 되면서 둘은 점차 그리움과 아픔을 나누고 위로하는 친구가 된다.

그림책 작가를 꿈꾸는 부·울·경 청년들의 모임인 '창작공동체A'에서 활동하는 이영아 작가는 2년여 전 부산일보에 난 비석마을 기사를 보고 그림책에 옮겨보기로 마음먹었다. 역사 공부하듯 자료를 모았고, 수십 차례 마을 골목길을 누비며 주민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이 작가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실향민 기사도 많이 찾아 읽었다"며 "한·일 양국의 아픈 역사를 떠나 인간적인 안타까움과 마을 할아버지·할머니들의 따뜻한 마음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그림책은 지역 이야기를 소재로 한 그림책 시리즈 첫 작품이란 점에서 더 관심을 모은다. 2014년 가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창작공동체A는 이듬해 말 서울에서 가제본으로 전시회를 열었고, 경기도 파주의 꿈교출판사와 연결돼 멤버 11명 모두 출간 기회를 얻었다. 출판사와 함께 평화전문 복합문화공간 '평화를 품은 집'을 운영하는 명연파 집장은 "지역의 특수한 소재지만 밑자락에 깔린 내용은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어 메시지가 있는 그림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꿈교출판사는 올 연말까지 자갈치 아지매를 다룬 정희선 작가의 <끄덕 끄덕 올라간다>, 구포시장을 배경으로 한 강지원 작가의 <구포 툴툴이 할매 국시>를 펴낼 예정이다. 이 밖에 부산 민주항쟁(문가은 <집으로 가는 길>), 명지동 대파밭(배진희 <잔치>), 산복도로와 책방골목(윤경미 <아빠에게>), 영도 흰여울마을(이화정 <눈이 내리면>), 아미동 비석마을(임종목 <꿈>), 고리 원전(장재은 <고리 숲>), 해운대 난개발(정보미 <행복 도시 토끼시>, 다대포 후리소리(정정아 <후리소리>) 등 부산지역의 역사·문화와 사회문제를 다룬 다양한 그림책들이 순차적으로 출간된다.

한편, 오는 26일 오후 3시 비석마을 인근 아미문화학습관에서는 <할아버지 집에는 귀신이 산다>의 출판기념회가 열려 '디아스포라의 삶, 그림책으로 만나다'를 주제로 북토크가 진행된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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