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탐식법] 여름이 톡톡 터져요
청량음료의 계절이다. 지독한 무더위와 끈적끈적한 공기 혹은 비 오는 날의 꿉꿉함을 이겨내기 위해 마시는 음료. 아이스커피를 많이 마셨는데도 마실 것을 또 찾게 되거나 상쾌한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나는 청량음료 중에서도 레모네이드를 마신다.
어릴 때는 레몬이 흔하지 않았다. 순정만화를 탐독하던 어린 시절 박희정 작가의 만화 <호텔 아프리카>를 통해 '레모네이드'를 처음 알게 되었다. 만화의 주배경은 미국 유타의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있는 호텔아프리카라는 작은 여관이다. 그곳을 운영하는 백인 미혼모 아델라이드와 그녀의 아들, 흑인 소년 엘비스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백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그 지역에서 세상의 차별과 싸워야 하는 이 모자는 호텔아프리카를 거쳐 가는 다양한 사람들(그들 또한 세상의 '마이너리티'다)과의 관계를 통해 공감과 연대를 배워나간다. 이국적인 이야기는 화려한 작화가 더해져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어른이 된 엘비스의 회상에 나오는 호텔아프리카는 라디오에서 낮게 흘러나오는 올드팝과 시원한 레모네이드가 자연스러운 배경이 된다. 여름 음료라고는 콩국이나 미숫가루만 알았는데 그 비싼 과일로 만든 청량음료를 흔하게 마신다니, 그날부터 레모네이드는 내 환상의 음료로 각인되었다.
그로부터 십오 년이 흐른 뒤 어느 여름날, 나는 '순대카페 Da'라는 가게 주방에서 손목이 나가라, 레몬을 짜고 있었다. 레모네이드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야~, 매일 마실 수 있는 양의 레모네이드를 만들려면 도대체 레몬을 얼마만큼 짠 것이냐? 아델라이드! 내 당신을 존경한다. 당신의 손목이 진심 부럽다.' 그런 말을 곱씹으며 기절할 만한 '환상의 음료'를 만들었다. 남편이 남자친구일 때 그는 카페를 운영했다. 철물점이었던 가게를 직접 뜯어고치고 꾸며 빈티지 카페로 만든 것이다. 나는 그 가게의 점원이 되어 몹시 서툰 손으로 일을 했다. 가게의 주력 상품은 '허브순대'였는데 이 허브순대와 레모네이드의 궁합이 아주 좋아서 주문이 자주 들어왔다.
요즘은 저렴한 가격의 레몬 짜는 기계가 많이 생겨났지만 그때만 해도 기계가 없었다. 부산대 앞에서 허브순대를 팔던 지인은 독일에서 공수해온 기계를 썼는데 가격이 만만찮았다. 시중에 파는 레몬스쿼시용 즙은 제대로 된 레모네이드 맛을 내질 못해서 우리는 생레몬을 직접 비틀어서 즙을 냈다. 가게에 파는 음료 중 레모네이드는 손님 입장에서 가성비 좋은 음료라 수익도 크지 않았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방과 후 수업에서 레모네이드 만들어보고 글 쓰는 시간을 마련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 중 한 형제는 한 컵을 나눠 마시고 한 컵을 가지고 있던 보냉병에 담았다. '엄마 줄 거예요.' 수줍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꼭 아델라이드가 된 것처럼 뿌듯했다. 그래서일까? 고생하며 짜던 음료인데, 가게도 오래전 문을 닫았는데, 이상하게 레모네이드는 여름이면 떠오르는 음료 1위가 되었다.
얼음이 담긴 컵에 레몬즙과 탄산수, 시럽을 적당히 담아 마신다. 새콤하고 달콤한 것이 톡톡 터지는 여름이라니! 입천장을 화르륵, 훑고 가는 탄산가스가 더위에 흐물흐물해진 뇌를 붙들어 세운다. 짜릿하다. dreams0309@hanmail.net
이정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