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 지역 '메세나' 활동 박명용 통영 조흥저축은행 회장 "내 고향 위해 죽어서도 계속 기부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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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을 위한 일인데 죽기 전까지, 아니 죽어서도 계속해야죠."

인구 14만 명 남짓의 소도시 경남 통영시에서 '전국 1등' 금융사를 일궈낸 조흥저축은행 박명용(82) 회장. 통영 토박이인 그는 자수성가한 사업가이자 지역 '메세나' 운동의 선구자로 불린다.

사재 털어 50억 이상 이웃돕기
3년 전 팔순 때 예술인상 제정
법인 규칙에 사후에도 지원 명시

시작은 80㎏들이 쌀 1가마였다.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늘 굶주린 배를 움켜쥐어야 했던 유년의 박 회장에겐 꿈이 하나 있었다. 돈 많이 벌어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 1962년 전신인 ㈜조흥금융을 설립한 그는 꼬박 10년 만인 1971년, 마침내 꿈을 이룬다. 행정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던 도천동의 한 노부부에게 쌀 1가마를 전달했다. "보잘것없는 기부였지만 저에겐 너무나 벅찬 감동이었습니다. 모든 게 그때부터였죠." 이후 40년 넘게 이웃 돕기, 각종 민간 단체 기부, 후원 등으로 매년 1억 원 이상을 선뜻 내놨다. 지금까지 개인 재산을 털어 희사한 규모만 줄잡아 50억 원이 넘는다.

금전 지원이 전부가 아니다. 4번의 충무로타리클럽 회장과 국제로타리클럽 3590지구 초대 총재, 일본 2530지구 지구대회 RI 회장 대리를 역임하며 로타리 최고 영예인 '초아의 봉사상'을 받았다. 1975~1981년 직장새마을운동 충무시협의회장, 1982~1992년 새마을운동 충무시지회장을 거친 지역 새마을운동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또 한산대첩기념사업회 이사장 7년, 통영상공회의소 회장 6년, 통영시배구협회장 5년 등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가리지 않고 헌신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의 유혹도 상당했다. 선거철이면 시장이나 국회의원 후보에 늘 박 회장의 이름이 등장했다. 하지만 기업인으로 남고 싶어 모두 고사했다. 사심 없는 노력은 곧 사업의 성공으로 돌아왔다. 지역 금융이 줄도산했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기는 물론, 수많은 금융 위기에도 흔들림없이 자리를 지켰다. 덕분에 한 경제전문지가 선정한 국내 우수 저축은행 1위의 영예를 안았다.

박 회장의 지독한 지역 사랑은 팔순을 맞이한 2015년 방점을 찍었다. 지역 예술인 발굴과 창작활동 고취를 위해 그의 호와 이름을 딴 '통영예술인상'을 제정했다. 애초 시상과 지원금으로 조흥저축은행이 매년 5000만 원을 출연하기로 했다가 3회째를 맞은 올해부터 6000만 원으로 올렸다. 박 회장 사후에도 지원이 중단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도 만들었다. 아예 법인 규칙에 예술창작금 지원을 명시해 버린 것이다.

여기에 최근 비좁은 경로당에서 생활하는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1억 원이 넘는 부동산을 기증한 박 회장은 "어릴 적 배고픈 과정을 겪은 것이 내 인생에 오히려 약이 됐다. 내가 없어도 조흥이란 이름이 살아 있는 한 계속되길 바란다"며 "죽기 전에 딱 하나만 더 남기고 가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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