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가이 포크스 가면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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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가이(guy)’는 ‘남자, 녀석, 사내’, 복수 형태(guys)는 성별 구분 없이 ‘사람들, 패거리들’이란 뜻을 지닌다. ‘멋진 사내(nice guy)’, ‘여러분 (you guys)’이라는 말로 관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단어가 원래부터 허물없는 사이에서나 쓸 만큼 좋은 뜻만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조롱하는 의미로서 ‘기이한 옷차림의 남자’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단어가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가이 포크스(Guy Fawkes, 1570~1606)가 바로 그 사람이다.

영국에서는 11월 5일을 ‘가이 포크스 데이’로 정해 기린다. 역사는 1605년 11월 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톨릭을 탄압하던 국왕 제임스 1세와 의원들을 살해하기 위해 국회 의사당 지하실에 숨긴 화약통에 불을 붙이려던 순간 음모가 발각돼 가이 포크스는 체포되고 만다. 이른바 ‘화약음모사건(The Gunpowder Plot)’이다. 애초에는 11월 5일 밤 축제를 열어 왕의 무사함을 기뻐하는 불꽃놀이를 했고, 가이 포크스의 실패를 아쉬워하는 쪽에서도 불꽃놀이를 즐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를 상징하는 짙은 콧수염의 가면을 함께 썼지만 생각은 사뭇 달랐다.

가이 포크스 가면은 예술에서 저항과 무정부주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영국에서는 1841년 소설 〈가이 포크스 또는 화약음모〉, 1905년 아동소설 〈옛 런던의 음모자인 가이 포크스의 어린 시절〉에서 가이 포크스가 긍정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1982년 만화 〈브이 포 벤데타〉의 성공에 이어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브이 포 벤데타’가 2006년 탄생함으로써 영웅적인 이미지를 완성하게 된다. 2008년 해커 그룹 ‘어노니머스’ 시위, 2011년 월가 시위에 이어 국내에서는 2018년 대한항공 등의 시위에서도 등장했다.

‘저항의 아이콘’ 가이 포크스 가면이 홍콩 시위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홍콩 정부가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복면금지법’ 시행에 들어가면서다. 복면금지법은 공공 집회에서 마스크 착용을 금하며, 집회 참여 여부와 상관없이 경찰관이 공공장소에서 시민에게 마스크를 벗을 것을 요구할 수 있다고 한다. 어기면 최고 1년 징역형이나 2만5000 홍콩달러(약 380만 원)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브이 포 벤데타’의 명대사가 생각나는 이즈음이다.

임성원 논설위원 forest@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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