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호구생활③] “배달앱으로 배달료 대잔치”(feat. 서울호구)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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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虎口). 이용당하기 썩 좋은 사람 또는 무모한 도전자.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자다.

게임 하다가, 혹은 현실 생활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터. 많이 무뎌졌지만, 여전히 누가 나를 호구라 하면 화가 치민다. ‘바보짓’을 한 데 대한 자책이다.

우리는 스스로 호구가 되기도 하지만, 알게 모르게 호구를 강요당한다. 돈, 사회, 직장 상사에 의해 알면서도 바보가 된다. 치열한 삶 속에서 꾹꾹 ‘속앓이’만 할 뿐이다.

‘슬기로운 호구생활’은 일종의 ‘화풀이 기사’다. 호구가 된 그들을 대신해 말한다.

“내가 니 호구가!”


■“이번 주는 뭐하노?”

‘현타’(현실 자각 타임)다. ‘슬호생’ 3탄 만에 마땅한 아이템이 떠오르지 않는다. 있긴 한데 연중 대하드라마 수준이다. 팀 회의 소집 때마다, 목덜미가 서늘했다. 초조한 티는 안 냈다.

“신에게는 아직 4일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사실 같이 고민해주던 ‘미스 스나이퍼’ 와이프가 친정으로 출산 휴가 간 게 컸다. 퇴근 후 쓸쓸히 소파에 앉았다. 뇌 활성화를 위해 ‘나는 호구다’ ‘나는 호구다’라며 스스로 세뇌했다.

10분 뒤, 네이버스포츠 손흥민 복귀 기사를 철없이 깨작댔다. 뭐한 것도 없는데 슬슬 배까지 고팠다. 괘씸했지만, 이미 손은 배달의 민족의 맛집랭킹을 연타하고 있었다.

일단 먹고 보자. 9000원짜리 ‘치돈’(치즈돈까스)을 골랐다. 리뷰 이벤트 감자 고로케까지 습득한 뒤, 결제의 순간! 저 위에 보이는 절규의 기운.

‘최소주문금액 15,000원’ ‘배달팁 1000~4000원’


■같은 건물인데 배달료 3000원

과거 원룸에서 자취하며 배달음식에 빠졌던 적이 있다. 배달앱 VIP답게 일주일에 두 번 넘게 고열량 만찬을 즐겼다. 공짜쿠폰에 리뷰이벤트까지, ‘할인 배달’ 재미가 쏠쏠했다. 500원짜리 소스 추가로 최소주문금액을 딱 맞췄을 때의 희열….

할인이 안 돼도 후회 없이 질렀다. 돈보다 입사 초기 스트레스 해소가 먼저였다.

지금은 달랐다. 최소주문금액과 배달료가 거슬렸다. 혼자 시켜 먹을 때는 배보다 배꼽이다.

상추 3장+깻잎 3장+콜라 500ml+공깃밥+1인 불족발+배달료 3000원=1만 6000원. 매운맛에 땀샘이 폭발했지만, 맛이 기가 막혔다. 상추 3장+깻잎 3장+콜라 500ml+공깃밥+1인 불족발+배달료 3000원=1만 6000원. 매운맛에 땀샘이 폭발했지만, 맛이 기가 막혔다.

‘배달의 호갱’이 되고자 삼시 세끼를 배달앱으로 때우기로 했다. 우선 배달하면 야식. 야식하면 족발. 족발하면 화끈하게 속 태울 ‘불족발’ 아닌가.

후배 결혼식 축하 모임이 끝난 뒤 오후 11시 30분께 캄캄한 집에 들어왔다. 나름 배가 불렀지만, 야식 배는 항상 남아 있다. 배달앱 족발·보쌈 코너에서 ‘♥1인족발♥’ 문구가 보였다.

첫 터치에 횡재다. 최소주문금액이 무려 7000원!! 배달료를 더해도 만 원 이하 주문이 가능해 보였다. 반대로 호구생활은 ‘조기 마감’ 위기다.

그러나 역시나였다. 이날 실제 주문 금액은 1만 6000원이다. 최소주문금액에 상관없이 가장 싼 1인 족발이 만 원이다. 거기다 공깃밥 +1000원, 콜라 +2000원. 결정타 배달료 +3000원이다.

배달의 민족답게 속도 하나는 기가 막혔다. 16분 만에 배달원이 도착했다. 그러나 소름 끼치는 대반전.

먹고 나서 검색해 보니 족발점은 우리 아파트 1층 상가였다.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도 3분이다. 배달료 3000원에 보기 좋게 속았다.


■‘모닝 수프’도 주문…배달료 대잔치

다음 날, 난생처음으로 ‘모닝 배달’에 도전했다. 이번 주 내내 와이프는 집을 비운다. 대부분 아침을 배달하진 않겠지만, 임산부나 고시생 등 불가피한 사람들도 있을 터.

이날은 오전 6시부터 재택 당직을 섰다. 전날 ‘순삭’(순간 삭제)한 불족발이 너무 매워 속이 여전히 거북했다.

아침 식사는 분위기 있게 양송이 수프와 빵이다. 전국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의 것을 주문했다. 최소주문금액은 4100원. 그러나 배달료가 3000원이다. 판매 금액의 70% 이상이다. 그나마 가까운 우리 동네는 배달료가 제일 쌌다. 많게는 5000원까지 부과됐다.

33년 인생에 모닝 수프는 처음이다. 전날 먹은 불족발 때문인지 도저히 속이 안 받쳐줬다. 33년 인생에 모닝 수프는 처음이다. 전날 먹은 불족발 때문인지 도저히 속이 안 받쳐줬다.

두 끼밖에 먹지 않았지만, 이미 눈치챘다. 1인 배달앱 사용이 의미 없다는 것을. 첫 가입 혜택, 할인 쿠폰 없이는 가혹한 현실이었다.

한 배달앱의 1인 이용객 코너도 사실상 무용지물이다. 상위 10곳 중 9곳의 배달료가 2900원. 나머지 한 곳은 1900원이다. 음식값과 합해 만 원 이하가 불가능했다. 우리 회사 주변은 이 코너조차 뜨지 않았다.


■서울은 그나마 낫네

“승훈아~ 부산은 왜 만 원 이하 배달이 안 돼?”

최근 집 근처로 이사 온 교회 형님이 물었다. 나름 충격이다. 서울은 최소주문금액이 6000원, 7000원이라더라.

확인차 서울본부 소속 후배인 이은철 기자에게 물었다.

“선배, 확인해보고 연락드릴게요.”

5분 뒤 도착한 캡처 사진. 최소주문금액+배달료가 줄줄이 만 원 이하였다.

<부산일보> 서울본부 정치팀 이은철 기자. 여유롭게 배달앱으로 6000원 간짜장 시키기에 성공했다. 배달료도 없었다. 영상통화하며 맛없게 한 젓가락 뜬 모습. <부산일보> 서울본부 정치팀 이은철 기자. 여유롭게 배달앱으로 6000원 간짜장 시키기에 성공했다. 배달료도 없었다. 영상통화하며 맛없게 한 젓가락 뜬 모습.

마지막 한 끼 배달은 중국음식이었다. 낮에 홍합짬뽕에 후식까지 거하게 먹은 터라 간짜장 한 그릇만 먹으리.

주문 전부터 안 될 줄은 직감했다. 일단 1인 코너에는 중식이 없다. 별도 중식 코너의 상위 10곳을 뒤졌다.

최소주문금액이 작게는 1만 1000원. 많게는 무려 2만 5000원이다. 배달료는 3곳만이 무료다.

결국 최소금액을 맞추려 가장 싼 조합인 간짜장+볶음밥을 선택했다. 총 1만 5500원! 사실 찹쌀탕수육 조합을 먹고 싶었으나 3000원이 더 비싸 포기했다.


■전화 vs 앱

같은 건물의 족발집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나도 모르게 격앙된 목소리가 섞였다.

“전화 주문은 배달료가 더 쌉니까?”

“아니요. 앱이랑 똑같아요.”

‘바로 위층인데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취재원 보호를 위해 참았다.

점주들과 여럿 통화한 결과, 대부분 전화와 앱의 배달료가 비슷했다. 분명 예외는 있었다. 일정 금액 이상이거나, 배달료가 차이 나는 모호한 경계 지역의 전화 주문은 할인해주기도 했다. 앱에 없는 서비스 음식을 줄 때도 있었다.

이는 별도 앱 수수료가 없기 때문에 줄 수 있는 혜택들이란다. 그러나 일부 점주는 “바쁠 때는 오히려 전화 주문이 방해된다”고도 했다.

소비자는 관계없지만, 앱의 결제 방식에 따라서도 점주는 희비가 엇갈렸다.

B앱의 경우 ‘바로 결제’가 아닌 ‘만나서 결제’를 선택하면, 점주가 별도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Y앱은 ‘만나서 결제’도 수수료가 부과된다.


■“우리도 죽겠습니다”…서러움 폭발

비싼 배달료와 최소주문금액은 점주들도 익히 안다. 그들도 선택권이 없단다. 핑계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점주들은 우려와 달리 바쁜 저녁 시간대를 뒤로 하고 흔쾌히 기자의 취재에 협조했다. 30분 가까이 데시벨을 높이며 핏대를 세웠다.

그들은 배달앱의 무자비한 수수료, 사용료를 근본 원인으로 지적했다. B앱은 기본 결제대행수수료가 판매금액의 3.3%다. 거기에 일반 서비스 사용료가 매달 8만 8000원. 무작위 상위 노출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별도 비용이 든다. 특별 코너까지 들어가려면 또 돈이다. 점주들은 새로운 코너가 생길 때마다 죽을 맛이란다.

Y앱은 매달 내는 사용료 없이 수수료만으로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기본 수수료 요율이 12.5%에 달한다.

원하지 않는 추가 음식에 겹겹이 쌓인 일회용+음식물 쓰레기. ‘일회용 줄이기’는 커녕 ‘일회용 늘리기’ 운동이다. 일일이 흥건한 기름때 씻는 것도 고역이다. 점주들도 일회용 용기 없이는 배달 대행업체를 쓸 수 없다며 하소연이다. 원하지 않는 추가 음식에 겹겹이 쌓인 일회용+음식물 쓰레기. ‘일회용 줄이기’는 커녕 ‘일회용 늘리기’ 운동이다. 일일이 흥건한 기름때 씻는 것도 고역이다. 점주들도 일회용 용기 없이는 배달 대행업체를 쓸 수 없다며 하소연이다.

여기에 더해 배달료도 보태야 한다. 점주들은 동네 배달 대행업체에 거리에 따라 건당 3000~7000원을 준다고 한다. 음식에 책정된 배달료가 적을수록 점주들이 추가로 내는 식이다. 이렇게 점주들이 낸 돈은 대행업체와 라이더가 나눠 갖는다.

리뷰 이벤트도 할 말이 많단다. 대형 프랜차이즈의 홍보력과 자금력을 영세 상인이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앱 초창기에는 사용료가 3만~4만 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 한 번 보이소 얼만지. 월세에 인건비에 카드 수수료 등등 다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니까요. 최소주문금액이나 배달료를 낮추면 적자입니다 적자. 음식의 질도 더 떨어지겠죠.”


■갈라진 민심

여럿 웃기고 울리는 배달앱. 부산일보 DB 여럿 웃기고 울리는 배달앱. 부산일보 DB

‘배달의 민족(우아한형제들)’이 독일의 ‘요기요(딜리버리히어로·DH)’와 한민족이 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국내 배달앱 1위 업체를 외국 공룡기업이 집어삼키는 일이다. 무려 4조 7000억 원의 ‘빅딜’이다.

그들은 이번 인수합병을 ‘혁신’이라 한다. 한국과 독일의 간판 업체가 힘을 합해 아시아 시장을 주도한다는 명분이다. 수수료 인상도 없을 것이고, 배달 노동자의 근무 여건도 좋아질 거라 본다.

민심은 좀 다른 듯하다. 지금도 비싼 배달료와 최소주문금액으로 적잖은 미운털이 박힌 배달앱이다. 소상공인들은 이전부터 이들을 이 바닥의 ‘갑(甲)’으로 인정하고,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있다. 시장의 90%를 차지하는 독과점 기업 탄생이 달갑지 않은 이유다.

경쟁이 사라진 배달앱 시장. 향후 수수료, 배달료 등의 상승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굳이 1등 앱이 되려고 할인 쿠폰을 뿌리거나 이벤트를 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최근 앱으로 ‘아이쇼핑’만 하고, 전화 주문만 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독일 기업에 더는 수수료를 퍼줄 수 없다며 소비자들이 자발적 불매에 나선 것이다. 우리는 그리 호락호락한 호구가 아니다.


P.S. 슬기로운 호구생활을 응원해주시는 독자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호구생활을 하기 바라는 아이템이 있다면 lee88@busan.com이나 댓글로 남겨주세요.^^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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