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대신 회화로 포착한 일상의 순간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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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아 개인전 ‘휴먼라이트’
12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점
스냅사진 속 사람들 움직임 재조합
전환의 가능성 품은 시·공간 표현

박진아 ‘공원의 새밤 10’(2021). 국제갤러리(사진 안천호) 제공 박진아 ‘공원의 새밤 10’(2021). 국제갤러리(사진 안천호) 제공

연출되지 않은 일상의 순간을 회화로 ‘포착’했다.

박진아 개인전 ‘휴먼라이트(Human Lights)’에서는 카메라를 대신해 찰나의 순간을 담아낸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부산 수영구 망미동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12일까지 이어진다. 박진아 작가는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런던 첼시미술대학에서 순수미술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박 작가의 그림은 마치 스냅사진을 보는 것 같다. 그에게 사진은 그림을 위한 ‘스케치’이다. 눈으로 잡을 수 없는 우연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바탕으로 인물과 공간을 재구성한다. 박 작가는 오래 전 로모 카메라의 네 컷 이미지를 회화로 옮겨 ‘그리는 과정이 보이는 그림’ 작업을 했다. 지금은 네 장으로 나눠 그리던 것을 한 화면에 합친 형태로 보여준다.

박진아 ‘문탠 04’(2007). 국제갤러리(사진 김상태) 제공 박진아 ‘문탠 04’(2007). 국제갤러리(사진 김상태) 제공

박 작가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순간을 담은 스냅사진 여러 장을 조합해 하나의 장면을 만든다. 2007년 작 ‘문탠’에 등장하는 4명의 사람은 서로 다른 사진에서 이미지를 가져와 무대에 인물을 배치하는 것처럼 그려냈다. 일산호수공원의 밤 풍경을 담은 이 작품은 작가가 인공조명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시작점이 되기도 했다.

“미술관, 무대, 쇼윈도 등 인공성이 강조되는 공간들을 그려왔던 것 같아요. 밤 시간대에 그 공간들을 찍은 사진들을 재료로 하다보니 인공조명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나중에는 인공조명 자체가 제게 큰 주제로 떠올랐던 것 같아요.” 이번 전시에서는 인공조명을 주제로 한 신작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공원의 새밤’이라는 그림의 영어 제목은 ‘Happy New Night’이다. 독일에서 폭죽을 터트리며 새해맞이를 하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2019년부터 이어지는 시리즈 작업이다.

박진아 ‘공원의 새밤 09’(2020). 국제갤러리(사진 안천호) 제공 박진아 ‘공원의 새밤 09’(2020). 국제갤러리(사진 안천호) 제공

박 작가는 “과정 중의 시간이나 성격이 전환되는 순간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공원에서 새해맞이를 하는 사람들을 비롯해 패션 화보 촬영장이나 갤러리에서 일하는 스태프, 공공조각을 설치하는 모습, 클래식 공연 리허설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유다. “역할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전환이 가능한 공간과 순간들을 그리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변화까지 가는 과정의 시간을 그림에 담아내는 것. 박 작가는 앞과 뒤가 있는 시간들을 사람들의 움직임을 통해 캔버스 위에 표현한다. 각기 다른 사진에 찍힌 동일 인물의 다른 모습이 한 장의 그림 안에 들어가 있는 것에서도 박 작가만의 ‘시간성’을 확인할 수 있다.

박진아 ‘무대 정리 02’(2021). 국제갤러리(사진 안천호) 제공 박진아 ‘무대 정리 02’(2021). 국제갤러리(사진 안천호) 제공

박 작가의 그림은 한 컷 한 컷의 사진들이 가진 수많은 순간을 품는다. 그 순간은 움직임으로 그림에 담긴다. 그림 속 사람들의 얼굴에서 표정이 빠져 있다. 특정의 감정 대신 관람객이 자신을 투영해 각자의 방식으로 그림을 받아들인다. “고정된 것, 정해진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아요. 시간이든 공간이든 전환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상태를 담아내려 합니다.” ▶박진아 개인전 ‘휴먼라이트’=12일까지 국제갤러리 부산점. 051-758-2239.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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