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물가 급등에 정권 퇴진 운동 '강 건너 불' 아니다
물가 급등에 따른 경제 파탄이 일부 신흥국을 중심으로 정권 퇴진 운동으로 이어지는 등 세계 경제의 충격파가 심상치 않다. 세계은행이 전 지구적 물가 상승과 성장률 둔화를 경고하고 나선 가운데 일부 국가에서 경제 파탄에 따른 정국 혼란이 현실화하면서 ‘위기의 도미노’가 시작됐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가파른 물가 상승으로 인해 서민 가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는 우리에게도 이들 나라의 상황이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초대 내각에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에 발탁된 추경호 경제팀에게 생활 물가와 민생 안정이 최대 숙제로 떠올랐다.
신흥국 중심 총리 축출 등 ‘위기의 도미노’
새 경제팀 물가와 민생 안정 최우선해야
파키스탄 의회는 10일 임란 칸 총리를 불신임 투표로 축출했다. 의회가 총리를 투표로 축출한 것은 초유의 일인데 파키스탄 경제가 치솟는 물가와 대외 채무로 파탄지경에 이른 데 따른 것이다. 칸 총리는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국가 부채에 허덕였고 치솟는 물가를 잡지 못해 결국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스리랑카에서도 지난 주말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리는 등 정국이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페루에서는 최근 치솟는 연료와 비료 가격 상승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던 중 5명이 사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우리도 가파른 물가 상승과 서민 가계의 고통이 남의 일이 아니다.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맞게 되는 물가 상승이어서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다. 국가통계포털에 집계된 3월 외식 물가는 1년 전보다 6.6% 올랐는데 1988년 4월 이후 23년 11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이다. 문제는 이 같은 물가 상승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는 데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전을 예고하고 있고 미국은 긴축의 고삐를 더욱 죄고 있어 물가 상승의 충격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새로 출범하게 될 추경호 경제팀도 이 같은 상황을 인식하고 최우선 과제로 서민 생활 물가와 민생 안정을 꼽았다. 추 후보자는 10일 “정부가 공식 출범하면 경제 장관들이 ‘원팀’이 돼서 당면 현안인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두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내외 여건은 녹록지 않아 국내 물가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고 성장률은 둔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 국면을 거치면서 가계 부채, 국가 부채가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어 거시적으로 보면 동원할 수 있는 정책적 수단도 굉장히 제약될 수밖에 없다. 새 정부가 추경을 약속한 상황에서 물가를 잡겠다고 하고, 각종 규제를 풀면서 부동산 시장 안정을 찾겠다는 엇갈린 정책적 목표들을 어떻게 조율하고 다뤄 갈지 의문이다. 윤 당선인은 내각 인선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능력이라고 했다. 새 경제팀이 그 능력을 국민들에게 보여 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