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청와대 이전 후, 빈자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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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태 부산대 명예교수 전 한국도서관·정보학회장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의 선거공약인 청와대 용산 이전 문제가 그동안 항간의 큰 관심사였는데 다행히 잘 처리되었다. 이 일이 끝나면 다음 남아있는 과제는 무엇일까? 용도가 사라진 시설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며, 그곳을 뭐라고 부를 것 인가에 대하여 누구나 관심 있게 살펴볼 것이다.

그간 알려진 내용은 당선자의 의견이 ‘대통령기념관’ 또는 ‘대통령기록관’으로 점지해 둔 듯하지만, ‘겸손하게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고 하니,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폐기되는 청와대 시설물의 사용 방안과 명칭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그의 명저 <코스모스>에서 인류가 생존에 필요한 정보는 유전자나 뇌가 아니라 인간이 공용저장소를 만들어 보관하는 기억의 대형 창고, 즉 도서관에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 다시 설치하려는 시설이 도서관이든 기념관 또는 기록관이든 여기에 기록을 저장하는 기억장치를 설립한다는 데는 주저할 이유가 없다.

다만 이 자리만은 정치적 색채를 지워버리고 ‘대통령’이라는 지엄한 명칭까지 추방해 버리자는 의견을 제시해 본다. 이미 전국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는 이미 세 분의 이름을 가진 대통령도서관이 설치되어 있다. 김대중도서관(2003), 박정희도서관(2012), 김영삼도서관(2020)이다. 그리고 세종특별자치시에는 열 분의 대통령기록물을 담은 최첨단 시설의 대통령기록관(2016)이 설립되어 있다.

그 때문에 이 자리에는 대통령 말고,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일반시민, 곧 이름 없는 백성들 속에서 자신의 영혼과 몸을 바친 분들을 찾아 그 안에 순수한 기념관 또는 기록관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어린 생명 한 사람 살리려고 자기 몸을 바친 사람, 남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던져 희생한 분, 사는 동안 이웃과 사회를 위해 자신의 마음과 온 재산을 아낌없이 내준 인물 등등을 찾아서 오래오래 기억해 보자는 것이다.

이 거룩한 자리에 시민 영웅들의 기록물과 신문기사, 시청각 자료, 관련 도서 등을 한곳에 설치해 우리가 쉽게 만나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해질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설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쓸모 있게 이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기억은 단순히 사라져 가는 시간을 저장해 둔 창고가 아니다. 역사는 기억의 싸움이고 기록은 기억을 기반으로 성립한다. 그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록물과 소품들 그리고 관련 도서자료를 모아 한곳에 보관, 관리하는 기관을 조성해 보는 것이다. 이런 기관을 전문용어로 라키비움(Larchiveum)이라고 부른다.

라키비움은 일종의 기억을 관리 보존하는 도서관 같은 장치로, 세계적인 캐나다 국립기록관 도서관과 프랑스 퐁피두센터가 몇 해 전부터 이런 형태로 운영하고 있고, 2022년 3월 31일 새로 개관한 국회부산도서관도 같은 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금 여기에는 별도의 시설물이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있는 그대로의 건물을 약간 리모델링하면 그만이다. 서민들의 삶 속에 들어가 소박하게 꾸미면 된다. 중요한 것은 이곳에 등록될 수 있는 영웅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영웅은 풀뿌리 시민 속에서 무명의 용사가 되어 자신을 희생하여 살신성인한 참다운 사람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예부터 이런 분들이 많고, 이러한 전통은 대대손손 이어오고 있다. 이런 사람을 찾아보면 대한민국 수립 후 70여 년 동안 숱하게 많아 그 수는 차고 넘칠 것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참다운 국민적 영웅을 찾아 그들의 삶과 언행을 담은 기록물을 여러 건물에 나누어 사안별로 구분, 주제에 따라 보존, 전시하고 때마다 기념하는 공간으로 만든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은 어제의 대한민국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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