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치고 달리기] 전략적 모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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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부 기자

롯데 자이언츠 래리 서튼 감독은 야구계에서 평소 차분하고 온화한 언행을 가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 경기 중은 물론 경기가 끝난 뒤도 마찬가지다. 유머도 있다. 최근 몸살 증세로 한 경기를 휴식한 뒤에는 “무대 위 록스타(Rock-star)처럼 기운이 넘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단호할 때도 있다. 야구 규칙과 문화가 존중받지 못한 경우엔 말이다.

그런 서튼 감독이 18일 경기에서 퇴장당했다. 롯데 1군 감독을 맡은 지 1년 만에 처음이다. 서튼 감독의 모습은 평소와는 달랐다. 목소리와 몸동작은 컸다. 감정의 진폭도 큰 듯했다. 서튼 감독의 언행이 평소와 달랐던 건 경기 전 있었던 언론과의 인터뷰가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에서는 롯데 마무리 투수 최준용과 김원중의 활용 방안이 화제였다. ‘두 선수 중 누구를 마무리 투수로 쓸 것이냐’는 취재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해당 질문은 김원중 복귀 이후 거듭 됐던 질문이다. 서튼 감독은 여느 때와 같이 “우리는 KBO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 2명이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이 거듭되자 “경기 상황이나 선수 컨디션에 따라 투입한다. 두 선수는 항상 준비돼 있다”고 말했다.

취재 기자와 서튼 감독의 ‘질문-답변 줄다리기’는 한동안 이어졌다. 일부 매체는 서튼 감독의 답변에 불만족한 모습을 보였다. 서튼 감독 역시 야구와 관련한 다른 질문을 요구하며 추가 답변을 거부했다. 15분 동안 이어진 인터뷰는 어색하게 끝났다. 얼마 뒤 포털 사이트에는 서튼 감독과 롯데의 선수 운영 방식을 비판하는 기사가 다수 올라왔다.

이날 ‘줄다리기 인터뷰’는 한국 언론과 미국 출신 감독 간의 문화 차이일 수 있다. 통역이 필요한 상황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미디어들이 롯데 야구를 정확하게 보도하려는 노력도 인정받아야 할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전략적 모호함’ 역시 인정받아야 한다. 야구는 전략 싸움이다. 팀 전략이 다른 팀에 노출되어서는 안 된다. 전략이 노출되는 순간 또 다른 전략을 세워야만 한다. ‘승리’와 ‘우승’이 목표인 프로 스포츠에서 전략적 모호함은 용인돼야 할 부분이다.

선수 기용과 보직 결정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자 재량이다. ‘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가 2명 있다’는 것은 상대 팀의 타자 운용에 혼란을 줄 수 있는 전략의 일부분이다. 서튼 감독이 ‘불통’ 이미지를 무릅쓰고 모호함을 선택한 것 역시 전략의 일부다.

잘되는 집안엔 잡음도 없다. 논란의 출발은 롯데의 부진한 최근 성적이다. 서튼 감독과 구단에 필요한 것 역시 승리다. 서튼 감독과 롯데 선수들은 4월에 보였던 ‘2약(弱)의 반란’을 5월에도 되살려야 한다.

hang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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