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향파와 소파
근대 아동문학의 기반을 닦은 향파 이주홍은 요산 김정한과 함께 부산 문단을 대표하는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향파는 청마 유치환과 함께 부산의 휴머니즘 문학 사조를 이끌기도 했다. 1906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향파는 1945년 광복 전후 서울에 머물다가 1948년께 부산으로 내려와 부산수산대학(현 부경대) 등에서 후학을 지도하면서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198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부산에 머물며 지역 문단을 지켰다.
향파는 동화와 동시뿐만 아니라 그림, 서예, 수필 등에도 능했다. 다양한 분야에 해박했던 참지식인이었다. 특히 향파를 기억하는 문단의 후인들은 부산 동래에 있던 그의 집은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고 회고한다. 향파는 원고료를 받으면 선후배를 집으로 불러 맥주 등을 대접하는 일이 잦았다는 것이다. 부산 문인들을 지극하게 보듬었던 그의 따뜻한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오는 23일은 이주홍 선생이 세상에 온 날이다. 이주홍문학재단은 그를 기리는 이주홍문학축전을 진행 중이다. 21회째로 접어든 이주홍문학축전의 프로그램은 풍성하다. 특히 어린이날 100주년을 기념해 ‘향파가 사랑한 어린이’라는 특별전을 이주홍문학관 홈페이지를 통해 개최 중이다.
특별전에 마련된 ‘향파와 소파’라는 코너는 향파와 소파 방정환 선생의 남다른 인연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1922년 한국 최초의 어린이날 기념행사를 개최했던 방정환 선생은 이주홍 선생보다 8살 많다. 특별전에 소개된 기록에 따르면 향파와 소파가 처음 만난 때는 1929년. 당시 24세였던 향파는 동화 ‘배암 새끼의 무도’로 등단한 신인 작가였고, 아동문학가인 소파는 어린이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었다. 어린이 사랑이 각별한 두 사람의 교유는 그렇게 시작됐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31년 방정환 선생이 귀천하면서 끊어진 듯했다. 하지만 향파는 소파의 장남 방운용의 부탁을 받아 ‘방정환 전집’ 편집위원을 맡는 등 고인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갔다.
이와 관련, 동래구 온천동에 자리한 이주홍문학관은 코로나19 때문에 2020년 초부터 최근까지 2년 2개월가량 개관하지 못했다. 거리 두기 방침이 해제되면서 향파가 집필하던 서재, 만년필 등 필기구, 1만여 권의 장서와 유품, 전국의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비치된 향파의 장서를 빌려 갈 수도 있다. 관람과 대여는 모두 무료다. 거리 두기가 해제된 요즘, 이주홍문학관을 찾아 향파와 소파가 삶을 바쳐 일군 아동문학의 향기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천영철 문화부장 cy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