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는 보이지 않는 것 향해 사람들 이끄는 리더”
지휘의 발견/존 마우체리
음악은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악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작곡가에 따라서 아주 불친절하게 설명해놓는 경우도 있고 악보의 지시어가 상세하다고 하더라도 그 음악의 전부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클래식’이라 불리는 서양 고전음악은 음반으로 기록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며, 따라서 당대에 그 음악이 어떻게 연주되었는지, 작곡가는 어떤 음악을 상상하고 그 음악을 만들어냈는지 우리로서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그렇다면 고전음악을 연주한다는 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그대로 흉내 낼 만한 모범이 없는 소리를,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소리를 존재하게 하는 데에는 무슨 마법이 숨어 있는 것일까.
그런데 이런 의문에 해답을 줄 열쇠가 있다. 악보의 행간을 읽고, 작곡가와 그 시대를 들여다보고,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다양한 악기 소리를 이해하는 한 사람. 자신이 가진 온갖 지식과 경험과 통찰, 순발력을 동원해 과거의 작곡가와 지금 바로 눈앞에 있는 무대 위 음악가들과 청중을 이끌고 가는 사람. 그가 바로 지휘자다.
지휘자 존 마우체리의 ‘지휘의 일대기’
번스타인 등 선배들의 발자취도 담아
성악가 등과의 ‘힘겨루기’도 재미있어
지휘 세계 탐험하는 길잡이 역할 톡톡
마에스트로의 삶과 예술이라는 부제를 단 은 세계적인 지휘자 존 마우체리(1945~)가 50여 년에 걸친 자신의 경력을 진솔하게 되돌아보고, 꼼꼼히 기록한 ‘지휘의 일대기’다. 번스타인과 카라얀, 스토코프스키, 토스카니니 등 선배 지휘자들의 발자취도 함께 담았다.
‘지휘란 결국 일종의 연금술이다.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유일한 예술 형태다. 음악은 일련의 변신을 거쳐 시간을 통과하게끔 설계된 통제된 소리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라면 소리를 내지 않고 오로지 동작으로만 그렇게 하는 것이 어쩌면 타당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지휘자를 가리키는 말은 다양하다. 이탈리아인들은 ‘대가’ ‘거장’을 뜻하는 마에스트로(maestro)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고, 때론 ‘오케스트라의 수장’을 뜻하는 카포 도케스트라(capo d’orchestra)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프랑스인들은 ‘우두머리’를 의미하는 셰프(chef)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그러나 이들 단어로는 지휘자를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있다. 저자 마우체리는 지휘자를 뜻하는 영어 컨덕터(conductor)가 본래 ‘전도체’를 의미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지휘자의 일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작곡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소리를 생산하는 많은 사람들과의 협업에 힘입어 그 에너지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지휘는 테크닉만으로 이뤄지지 않으며, 결국엔 테크닉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필요해진다. ‘오토 클렘퍼러와 제임스 러바인은 몸동작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져 휠체어에 앉은 채로도 주요 작품들을 성공적으로 지휘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휘 박사 학위를 따고 바통 테크닉을 마스터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연로한 지휘자는 필경 얼마간의 청력 상실을 겪을 수밖에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소리를 주무르고 균형을 유지하는 그들의 통찰력은 해가 가면 갈수록 날카로워지기만 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휘는 운동으로 치자면 마라톤인 까닭이다.’ 이 책은 그런 불가해한 지점에 관한 경험들이 어떻게 빚어졌는가를 풍부하고도 섬세하게 들려준다.
하지만 ‘생계 수단’이라는 면에서 놓고 보면 지휘도 일종의 비즈니스다. 지휘자는 어쨌든 부름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기에, 오케스트라 경영진을 비롯한 여러 단체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성악가, 연출자와의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 등 지휘자의 비밀스러운 고충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여행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 고단함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지휘자의 호텔방은 침실일 뿐만 아니라 자기만의 사무실이자 스튜디오이며 연구실이자 연습실이다. 그런 면에서 지휘자는 사업가보다는 운동선수에 가까우며, 누가 뭐래도 관광객은 아니다.’
이 책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문 지휘의 세계를 탐험하는 길잡이 같은 역할을 한다. 저자는 뉴욕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프랑스 국립관현악단, 도쿄 필하모닉, 이스라엘 필하모닉 등의 교향악단과 오페라단을 이끌었다. 존 마우체리 지음/이석호 옮김/에포크/552쪽/2만 원.
천영철 기자 cy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