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임장 원정대와 지역균형발전

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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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연 경제부 부동산팀장

2020년 5월 어느 일요일. 동네에서 수십 명이 떼지어 다니는 풍경을 목격했다. 흡사 단체 관광객처럼 보였다. 특별한 관광 명소가 없는 조용한 동네에 웬 관광객인가 싶었다. 그 다음 주말에도 비슷한 행렬과 마주쳤다.

이들의 정체는 몇 달 뒤 이사를 하기 위해 부동산 중개사무실을 찾은 뒤에야 알게 됐다. 서울을 비롯해 타 지역에서 갭투자를 하기 위해 몰려든 이른바 ‘임장 원정대’ 였다. 한 유명한 부동산 전문가가 우리 동네를 부산의 대표적인 ‘저평가 지역’으로 콕 찍은 후 수도권 투자자를 중심으로 차량을 타고 수십 명씩 내려와 집을 샀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지나간 후 집값은 한 달 사이 수천 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 가까이 올랐다. 갑작스레 오른 집값이 황당했다. 이사 가고 싶은 집도 많이 올라 결국 이사를 포기했다. 그나마 내가 사는 집의 매매가도 올랐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집값 상승기에 갭투자자들 전국 돌며 매매

비정상적으로 달궈지고 식는 부동산 시장

지역균형발전으로 부작용 막을 수 있어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무주택 새댁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아이 학교 때문에 이 동네에 집을 사고 싶은데, 집값이 갑자기 올라 또 세를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방의 집 없는 사람들은 외지 사람이 올린 집값 때문에 더 힘들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당시 부산에 외지인 투자자가 대거 몰린 것은 통계로 입증된다. 부산의 아파트 매입자 중 외지인 비율은 2019년 14.6%에서 2020년 16%로 증가했다.

수도권에 사는 지인들은 지방에 사는 현금 부자들이 서울 집값을 천정부지로 올렸다고 투덜거렸다. 인구 소멸 시대에 유일하게 인구가 늘어나는 수도권으로 전국의 자금이 몰려든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서울지역 아파트 매입자 중 외지인 비율은 20%에 달한다. 2019년 18%, 2020년 19%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상당수가 인근 수도권 거주자이겠지만, 여유 자금이 있으면 서울 주택을 사는 것은 재테크 불문율이다.

수도권 지인 중에는 서울 한 중소기업에 다니며 경기도에 거주하는 친구 A도 있다. 서울 반지하 월세에서 시작한 A는 지방 소형 아파트 갭투자로 돈을 모아 서울에 번듯한 집을 사는 것이 꿈이다. 당장 월급만으로는 서울에 집 한 칸 마련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깨달은 후 부동산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시간 날 때마다 부동산 강의을 쫒아다니며 주말에는 ‘임장 원정대’ 행렬에 끼어든다고 했다. 그의 처절한 열정은 투기와 투자 사이에 불안한 데가 있었다.

직장과 가까운 서울 시내 집을 사겠다는 A의 꿈은 어찌 보면 너무나 평범하다. 이웃 새댁이 원망하던 ‘임장 원정대’의 상당수가 A와 같은 무주택자라는 사실이 씁쓸했다.

최근 집값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새댁과 A의 근황이 사뭇 불안하다. 지역 내 다른 아파트로 이사 간 새댁은 혹여나 ‘깡통전세’로 고통받고 있지는 않을런지. 집값이 떨어지면서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집주인이 최근에 늘었다. HUG가 올해 상반기 부산에서 집주인 대신 돌려준 ‘떼인 전세금’은 50억 원을 넘었다.

몇 달 전부터 연락이 뜸한 A는 혹여 무리한 대출을 받지 않았는지 걱정이다.

부산에 일자리가 없어 상경한 친구가 집 한 채 구하려다 경제적 나락에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이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전국을 돌며 갭투자 지역을 찾아다니는 ‘임장 원정대’의 순기능(?)이라면 A와 같은 무주택자들의 서울 입성을 위한 종잣돈 마련 정도가 되겠다. 하지만 그럴 경우 지방 무주택자의 부담이 비정상적으로 커진다. 시장이 좋지 않을 때는 섣부른 갭투자로 레버리지 투자에 나선 이들의 고통이 크다. 물론 이들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지방 무주택자의 어려움도 커진다.

이런 고통이 온전히 각 개인의 책임일까? 서울 내 직장 근처 집 한 채 마련하겠다며 ‘임장 원정대’가 된 무주택자가 전국의 집값을 올리고 깡통전세를 만든 투기꾼으로 변한 것은 서울 중심의 초고밀도 개발을 펼친 정책 영향도 크다.

서울이라는 공간이 대한민국의 일자리와 인구를 모두 빨아당기는 블랙홀이 되지 않았다면 집을 위한 개인들의 전투가 이렇게 치열해졌을까?

'수도권 일극주의'로 균형을 잃어버린 국토 개발의 폐해는 부동산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과열되고 식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국민들이 투자자에서 투기꾼으로 변하지 않도록 적절한 장치가 필요하다. 세금을 조정하고, 거래 장벽을 만들고 허무는 방식을 넘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부동산 정책이 논의되길 바란다. 서울에 사나 지방에 사나 평범한 사람들이 집 구하는 데에 ‘일생을 건 모험’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해법은 지역균형발전 속에 있다.


송지연 기자 sj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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