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어느 가족'이 왜 그렇게 늘었을까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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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비친족 가구 5년 만에 76.4% 급증
가족 다양성 정책으로 포용 나서야

2018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이 최근 재소환됐다. 인구는 줄었지만 1인 가구와 함께 '비친족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는 통계청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가 나오면서다. 비친족 가구는 시설 등에 집단으로 거주하는 가구를 제외한 일반 가구 가운데 친족이 아닌 남남으로 구성된 5인 이하 가구를 의미한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같이 살거나,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가구 등이다. 비친족 가구 수는 1년 만에 부산에서 13.7%, 전국적으로는 11.6%나 증가했다. 비친족 가구가 이렇게 늘어난 이유와 함께 이들은 어떤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지를 살펴봤다.



영화 '어느 가족'의 한 장면. 티캐스트 제공 영화 '어느 가족'의 한 장면. 티캐스트 제공

▇ 가족이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 가족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고 나온다. 법적으로는 가족을 혼인, 혈연, 입양에 따른 사회의 기본단위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가족의 개념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4인 가족 기준'이라는 말이 지금도 입에 붙어 있지만 정상 가족의 기준이었던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4인 가족은 이미 대세가 아니다. 가구원 숫자로 가구를 나누면 지난해 1인 가구 33.4%, 2인 가구 28.3%, 3인 가구 19.4%, 4인 이상이 18.8% 순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편적인 가구는 이제 1인 가구다. 전형적인 가족상이 해체되었다는 사실은 혼인율의 두드러진 감소세를 통해서도 확인이 된다. 2021년 여성가족부 조사 결과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전제에 대해 56.3%가 동의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혼 건수까지 감소할 정도로 혼인율이 떨어지고 있다. 2021년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법적인 혼인, 혈연으로 연결되어야 가족'이라는 전제에 대해 51.1%가 '그렇다'라고 답변했다. 혈연 또는 혼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61.7%가 가족으로 볼 수 있다고 답했다. '정서적 유대를 가진 친밀한 관계라면 가족이 될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45.3%가 동의했다. '사실혼, 비혼 동거 등 법률혼 이외의 혼인에 대한 차별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76.9%가 찬성했다.





▇ 낳으면 다 엄마가 됩니까

고레에다 감독의 '어느 가족'은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다. 주인공 할머니의 낡은 집에서 서로 남남이지만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면서 가족처럼 지내는 이들이 어느 날 부모에게 학대당하는 아이를 데려와 함께 살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렸다. 아이를 유괴한 이유를 묻는 경찰의 질문에 "낳으면 다 엄마가 됩니까?"라는 반문이 가슴을 찔렀다. 혈연관계가 가족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 않은가. 포털사이트 다음의 '어느 가족' 네티즌 평점란에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영화평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실될 때 우리는 그것을 가짜라고 부를 수 있을까?" "피가 안 이어져서 더 좋은 점도 있잖아. 괜한 기대를 안 하게 되는 건 좋지." "이들이 필요했던 건 혈연으로 뭉친 가족이 아닌 진짜 가족.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다면 진짜 가족보다 낫지요." 자신도 이런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지난해 부산의 비친족 가구원 수는 5만 4796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5만 명을 넘어섰다. 2016년 3만 1067명과 비교하면 5년 만에 76.4%나 급증했다. 생물학적인 가족과 같이 살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가구가 급증하는 의미를 새겨야 한다.


▇ 두 분은 어떤 관계세요

이처럼 비친족 가구가 늘고 있지만 가족처럼 서로 돌보는 친밀한 관계의 사람들에 대한 지원 제도는 전무하다. 새롭게 구성한 친밀한 관계를 우리 사회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률상 가족관계로 인정받지 못하기에 동거인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도 도움을 주고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병원에서 요구하는 '보호자 동의'가 대표적이다(의료기관의 '보호자 동의'는 법률 근거 없이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비혼 동거 가족은 서로가 보호자지만 법적 혼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가족돌봄휴직·휴가제도도 가족의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하게 규정되어 있다. 이들은 주거 대출·주택 청약 등 법률혼 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주거 지원도 받지 못한다. 부부에게 제공하는 자동차 보험 할인이나 통신사 가족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없다. 등기 우편을 대신 받을 때도 "어떤 관계냐"라고 물으면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법률상 가족으로 칭할 사람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거나 가족해체로 가족과 교류가 없는 사람은 대체 어쩌란 말인가. 동거인처럼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보호자 자격을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가족처럼 서로 돌보는 친밀한 관계의 사람들에 대한 지원 제도는 전무하다. 가족처럼 서로 돌보는 친밀한 관계의 사람들에 대한 지원 제도는 전무하다.


▇ 외국에선 가족 개념 달라졌다

미국에서는 의료 관련 의사결정 대리인을 건강돌봄대리인이라고 부른다. 뉴욕주의 경우 건강돌봄대리인은 법정대리인, 배우자, 동거인, 부모, 18세 이상의 형제자매, 그리고 가까운 친구(a close friend)로 예시하고 있다. 건강돌봄대리인은 당사자의 평소 신념과 바람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신뢰 깊은 사람이면 자격이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선택된 가족(chosen family)'이라는 용어도 주목할 만하다. 혈연이나 법률혼으로 연결되지 않았으나 가족처럼 가까운 관계에 있는 친밀한 사람을 말한다. 미국에서 가족돌봄휴가의 대상 가족에는 '선택된 가족'과 유사한 가족 개념이 적용되는 추세다. 코네티컷주, 오리건주, 콜로라도주에서는 '가족과 같이 친밀한 관계에 있는 자'는 가족으로 인정되어 근로자의 유급 가족돌봄휴가 대상이 될 수 있다. 가족의 범위는 다른 나라에서도 확장하고 있다. 스웨덴에서 정부로부터 돌봄수당을 지급받을 수 있는 '친밀한 관계에 있는 자'에는 혈연이나 인척 관계가 없는 친구나 이웃도 포함된다. 캐나다에서는 근로자가 중병에 걸렸거나 임종을 앞둔 누군가를 돌보기 위해 근로를 하지 못할 경우 임금의 55%를 보전해 준다. 유일한 조건은 근로자가 돌봄을 제공하려는 자를 가족으로 여기고 있는가의 여부이다.


▇ 적극적 가족 선택 더욱 증가

가족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절반가량이 '가족 구성원들과의 소통과 교류를 통해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우리의 가족은 그동안 정서적 안정 역할을 제대로 해 왔을까. 허민숙 여성학 박사는 "가족이라는 개념의 변화는 이러한 정서적 안정을 획득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적극적 가족 실천의 결과일 수 있다. 가족에게 기대했던 정서적 안정을 가족으로부터 찾을 수 없었던 사람들의 적극적인 가족 선택은 앞으로도 더욱 증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행히 여성가족부도 가족을 '혼인, 혈연, 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 단위'로 규정한 건강가정기본법의 조항을 삭제하고, 가족 다양성을 포용하는 정책을 수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성가족부가 폐지된다니 어쩌면 이러한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한국교회총연합 등 교회단체는 여성가족부의 법률혼 이외 가족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정책에 대해 "전통적 가족의 해체를 가속화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기도 하다.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볼 때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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