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디지털자산거래소, 아직도 '좌고우면'?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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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열 경제부 차장

1년 넘게 검토한 거래소 운영 방식
사업자 공고 앞두고 전격 '뒤집기'
금투협 대체거래소 유사기능 추진
뜸만 들이다가 '적기' 놓칠까 우려


부산시가 추진하는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가 지지부진하다. 6월로 예정됐던 최종사업자 모집 공고가 8월이 돼도 무소식이다. 공고가 한두 달 늦어지는 걸로 뭘 그리 발싸심이냐 탓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간의 사정을 살펴보면 기자의 걱정이 과하지만은 않다는 것에 동감할 테다.

부산시는 올 5월에 ‘부산 디지털자산거래소 설립을 위한 정보제공요청서’를 공고했다. 정보제공요청서(RFI·Request For Information)는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관심 기업들로부터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동향이나 다양한 정보, 의견 등을 취합하는 절차를 뜻한다. 보통 최종 사업자 모집 공고를 의미하는 ‘사업제안요청서’(RFP·Request For Proposal)에 앞서 진행되는 절차다. 부산시는 6월께 최종 RFP를 공고할 방침이었다. 일정에 맞춰 업체들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RFP는 계속 미뤄지고 있다.

그러는 동안 여기저기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RFI 당시 부산시가 제시했던 거래소 청사진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는 거다. 당초 거래소는 다양한 기능을 맡을 여러 업체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사업자 신청도 컨소시엄 단위로 받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거래소 참여를 희망하는 여러 업체를 모두 회원사로 끌어안는 방식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거래소 운영도 컨소시엄 사업자가 직접 상품을 매매하는 방식에서, 각 회원사가 각각의 시스템으로 상품을 거래하고 거래소는 중계만 맡는 방식으로 바뀐다. 현재 한국거래소의 주식 거래 방식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부산시는 “빨리 만드는 것보다 제대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여러가지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미 1년 이상을 심사숙고해 내린 결정을, 그것도 RFI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내용을 완전히 뒤집는 것은 이례적이다.

게다가 일각에서는 야릇한 소문도 들린다. 이례적인 ‘막판 뒤집기’가 부산시 ‘윗선’의 몇 마디로 갑자기 진행됐다는 내용이다. 기존 컨소시엄 방식으로는 마음에 품고 있는 특정 기업들을 모두 데리고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윗선’의 우려가 그 이유란다. 해당 특정 기업들은 현재 제각각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있다. 어느 컨소시엄이 되든 탈락하는 업체는 나올 수밖에 없다.

이전 방식이든 새로운 방식이든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새로운 방식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항간에 들리는 말처럼 1년간의 고민 끝 결정이 이처럼 손쉽게 바뀌는 거라면 문제다. 부산시는 ‘재검토’라고 말하지만, 결국 ‘막판 뒤집기’ 이후 ‘벼락치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당장 늘어나는 수수료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도 궁금하다. 새로운 방식대로라면 회원사가 한 번 수수료를 떼고, 다시 거래소가 수수료를 떼야 한다. 기존의 가상자산거래소는 직접 매매를 하기 때문에 수수료는 한 번에 그친다. 아무리 공공성을 강조한다 하더라도 수수료 경쟁에서 뒤진다면 후발주자인 부산 거래소가 기존 거래소 영역을 비집고 들어가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최근 다른 곳에서 부산 디지털자산거래소의 사업 영역을 넘보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전 금융투자협회는 그들이 추진하는 대체거래소(ATS)에 기존 주식 거래 외 STO(증권형토큰)나 NFT(대체불가능토큰) 등의 거래도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다. STO·NFT 거래는 부산 디지털자산거래소가 기존 가상자산거래소와는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내세우는 부분이다. ATS가 해당 기능을 가질 때 부산 거래소의 차별성은 사실상 사라진다. 해외에서는 다수의 ATS가 이미 해당 디지털자산을 거래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업계 일부에선 부산 디지털자산거래소 참여에 한 발 물러서는 분위기다. 부산 거래소든 ATS든 자신들이 만든 상품만 거래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부산시가 좌고우면하고 있는 동안 부산 거래소는 기존에 없던 차별적인 거래소가 아니라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되고 있는 셈이다.

좌고우면(左顧右眄). ‘앞뒤를 재고 망설이며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태도’를 지적하는 의미로 읽히지만, 이를 처음 쓴 조식(조조의 셋째아들)은 ‘좌우를 바라보면서 자신만만해 하는 모습’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부산 디지털자산거래소 추진 과정을 보고 있자니 ‘좌고우면’의 두 가지 의미가 겹쳐 떠오른다. 자신만만하게 시작하더니 갈수록 이것저것 재고만 있는 부산시의 태도가 딱 그렇다. 부산시는 더이상 좌고우면하다 적기(適期)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bell10@busan.com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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