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것들] ‘심심한 사과’로 다시 불거진 문해력 논란, 더 큰 문제는 ‘태도’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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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주니어보드 '요즘것들'

‘심심한=지루한’으로만 해석
“무식한 요즘 애들” 비아냥에
“지적질은 비정상” 세대 갈등
비난보다 이해하는 태도부터

부산일보DB 자료사진. 부산일보DB 자료사진.

초등학생 때로 기억합니다. 부모님과 뉴스를 보는데, 중년 남성이 참담한 표정으로 ‘유족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상하단 걸 직감했습니다. “왜 심심하다고 하는 거예요?” 부모님께선 ‘심심하다’라는 말에 ‘지루하다’는 뜻 외에도 ‘매우 깊다’는 뜻이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20년도 지난 추억을 꺼내든 건, ‘심심한 사과’란 말을 두고 다시금 논란이 일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20일, 웹툰 작가 사인회에 예약 오류가 생기자 주최 측이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린다’며 글을 올렸습니다. 일부 고객들은 이를 ‘심심해서 사과하는 거냐’고 받아들였습니다. 이를 두고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앞서 ‘사흘’ ‘금일’ ‘무운’ 등으로 한 차례 뭇매를 맞은 터라 이번 논란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죠.

곧장 세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습니다. 한자 교육을 받지 않아서, 책을 읽지 않아서, 유튜브에만 빠져 살아서. 갖은 분석을 덧붙였지만 결국엔 ‘요즘 애들이 무식하다’는 비난과 조롱이 주를 이뤘습니다.

젊은 세대는 ‘모를 수도 있지’라며 맞섰습니다. ‘모르는 거 정상, 아는 거 정상, 지적질 하는 거 비정상’이라며 기성세대의 지적에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배우는 기회가 됐다면 좋았을 텐데, 조롱과 뻔뻔함이 맞서면서 ‘웃픈(웃기면서 슬픈)’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문해력 논란보다 더 심각한 건 어떻게든 서로를 비난하려는 ‘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문해력은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젊은 세대의 문해력은 온라인 공간에선 두각을 드러냅니다. ‘밈(인터넷 상에서 유행하는 콘텐츠)’과 ‘드립(남을 웃기려고 하는 말)’을 해석하는 능력도 뛰어나죠. 온라인에서는 ‘1도(하나도)’ ‘댕댕이(강아지)’ ‘현타(현실자각타임)’을 비롯해서 수도 없이 많은 단어들이 생겨나고, 또 사라집니다. 온라인 공간에선 오히려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월등한 셈이죠.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않으면 갈등의 골만 깊어집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온라인이 아닌 현실이기에, 일상 어휘를 모르면 곤란한 상황이 생깁니다. ‘사흘’을 ‘4일’로 착각하거나, ‘무운을 빈다’는 좋은 뜻을 ‘운이 없길 바란다’는 나쁜 뜻으로 해석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틀리기만 해 봐라’는 식으로 눈에 불을 켤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예전처럼 두꺼운 종이 사전을 뒤지지 않아도, 스마트폰 하나면 모르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문해도 좋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서유리 기자 yo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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